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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DUIRO' 발행인 이도진

성소수자의 삶과 연애, 안정성에 대하여

2018-07-25


서울퀴어문화축제(Seoul Queer Culture Festival)가 열아홉돌을 맞았다. 미국에 이어 대만에서도 동성혼이 법제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미디어에 드러나는 형태를 중심으로 보면 여전히 무지와 편견, 혐오의 영역에 머물러있다는 인식을 받게 된다. 성소수자의 삶에서 연애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이성애자의 연애와 어떻게 다를까. 성소수자 매거진 'DUIRO'의 이도진 발행인을 만나 편견을 내려두고 있는 그대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도진


Q. 제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지난 7월 14일(토) 서울광장에서 있었습니다. 지난 2015년 이후 올해로 네 번째인데요. 올해 다녀오셨나요?

A.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의 아시아 최초 전시에 진행으로 참여했어요.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는 제가 참여하는 작업이 있었어요. 광장에 설치된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의 아티스트 4명이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해 구금이나 사형 등의 처벌을 하는 75개국의 국기로 만든 드레스입니다. 이 드레스의 아시아 최초 전시를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하게 되었는데요, 이 작품을 전시할 때 항상 현지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기록 사진을 남깁니다. 저는 팀을 꾸려 전시와 사진의 아트 디렉팅, 디자인 등으로 참여했어요.



Q. 정치인들도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하는 등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는 있지만, 아직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인데요. 성소수자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사회적 제도와 관련 법의 제정입니다. 



한국 성소수자의 현실을 정치인들은 이미 인식한 지 오래되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결단력 있는 누군가가 앞으로 나설 때입니다. 정치인이라면 제도 안에서 차별이나 혐오 발언에 대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성혼 법제화나 군형법 개정, 차별금지법 등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주요 요구사항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아주 오래된 이슈거든요. 저처럼 문화 기획 등의 방향으로 활로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실질적인 제도의 변화가 잘 발맞추었으면 합니다.



Q. 연애 담론이 넘치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연애’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나 기사화가 되지 않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A. 그래서 퀴어들의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 'DUIRO'를 시작했어요.


사람은 처음 겪거나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사례를 먼저 찾아보죠. 이성 연애의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모든 드라마, 영화, 음악 등 콘텐츠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이성애 중심적이잖아요. 하지만 퀴어들의 연애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모르는 것을 욕망할 수는 없잖아요. 우산 하나도 봐야 갖고 싶은 법인데 말이죠. 퀴어가 욕망할 수 있는 상황을 자주 보여주자고 생각한 게 'DUIRO'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였어요. 'DUIRO'는 게이 매거진으로 시작했거든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한 거지만, 이제는 다른 성소수자들의 욕망도 차차 조명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매거진 Duiro

▲ 매거진 'DUIRO'


Q. 연애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알고 싶을 때는, 관계가 좋을 때가 아니라 나쁠 때일 텐데요. 동거하다가 헤어질 때 보증금은 어떻게 할 것인지, 생활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찰서에 신고했을 때 정당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죠. LGBTQ 커뮤니티 안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통로가 있나요?

A. 그런 통로, 그런 안전망을 'DUIRO'에서 제시하고 싶어요.


오프라인 모임이나 온라인 게시판이 이런 문제를 나누는 장이었어요. 어떤 사례는 인권단체에 접수되어 실질적인 구제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커뮤니티라고 할만한 것이 대부분 사라졌어요. 다음 카페 같은 게 십 년 전만 해도 매우 컸거든요. 이게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면서 완전히 하락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커뮤니티와 연결 없이 스마트폰으로 가벼운 관계만을 누리는 개인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들을 탓할 수 없어요. 커뮤니티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지만, 이런 수고 없이 당장 쾌락만 좇아도 된다면 누구나 솔깃하죠. 하지만 이런 방식이 쿨하고 현대적인 퀴어의 모습으로 제시될 때는 어쩐지 씁쓸하고 아쉬워요.


성소수자가 연애를 이유로 법적 다툼이나 공론화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어요. 아마도 커밍아웃의 부담이 크게 작용하지 않나 싶어요. 저는 우리 안에 안정성이라는 것이 하나도 없는 현실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도 이런 안전망이 있어, 라고 제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동성혼이나 시민 결합 등이 가능하다면 제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더 많았겠죠. 현재로선 동거 계약이나 후견 계약 작성이 최선인데, 저는 이런 콘텐츠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DUIRO'를 만들고 있습니다.



Q. 현대 사회에서는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 개인의 경험보다는 세상의 인식, 혹은 기준에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애도 스펙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의 눈치도 많이 보고요. 성소수자들의 연애는 어떤가요?

A. 스마트폰의 보급화로 성소수자들 간의 만남도 계층화되기 시작했어요.


이성연애는 이미 계층화되어 있잖아요. 결혼을 염두에 두는 경우일수록 끼리끼리인 경우가 많죠. 그런데 성소수자는 그럴 수가 없었거든요. 서로 만나기도 너무 힘든데, 이것저것 따질 수가 없었던 거예요. 과거로부터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교차에 큰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보편화는 이 힘을 와해시키고 계층화를 가속화시켰어요. 키, 몸무게, 체형 등이 이제는 학벌, 직업, 재력, 라이프 스타일 등의 기준으로 확대되었으니까요.


동성혼이 법제화되자 미국에서는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보수화되고 있다는 말이 나와요. 제도 안에 진입하자마자 계급이 나뉜다는 것은 전과는 달리 다른 계층의 문제의식을 공유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해요. 퀴어 커뮤니티 내에도 굳이 제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오래된 질문이 있어요.


이도진


Q. 'DUIRO' 1, 2호는 군대와 결혼에 대한 이슈였는데요, 다음 호는 무엇이 주제인가요?

A. 반려동물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3호는 8월 초쯤에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하고 9월에 발간합니다. 주제는 반려동물로 제목이 ‘룸메이트’라고 나갈 거예요. 반려동물과 사는 인구가 천만이라고 하는데, 성소수자 중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경우도 대략 그 정도 되더라고요. 특히나 성소수자의 반려동물 사랑이 소수자 스트레스나 자녀 입양의 이슈와 연결된 것은 아닐지 궁금했어요. 이에 관해 인터뷰, 기획 화보, 소설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창간호를 만들면서 'DUIRO'가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요. 군대, 결혼, 반려동물 순이었어요.



Q. 이성 간의 연애와 동성 간의 연애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퀴어들은 자신들의 연애를 공개하지 않아요.



사랑은 사랑일 뿐이라 다른 것은 없어요. 다만 비퀴어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들이 남아있죠. 이성애자들은 연인과의 관계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노출할 때 대체로 반응을 예측할 수 있지만, 퀴어 커플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들죠. 그리고 그에 앞서 커밍아웃이 중요한 이슈로 자리하고 있고요. 저는 파트너와 함께 찍은 사진을 꽤 올리는 편이지만 많은 퀴어 커플들은 자신들의 연애를 잘 공개하지 않아요. 특히 레즈비언 커플의 경우, 폭력이나 가십에 더 쉽게 노출될 우려가 있어서 관계를 알리는데 더 조심스럽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세상의 편견 때문에 좋아하는 이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A. 내가 상대에게 아픔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다음을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편견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동시에 개인을 돌아보는 시간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저는 파트너와 6년 정도 연애를 지속하고 있는데요. 오래 연애하는 퀴어 커플은 드물어요. 그 이유를 계속 고민해왔는데, 소수자 스트레스가 큰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같은 종류의 스트레스에 수십 년 노출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이유는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 때문이고요. 몸을 묶어놓고 이마에 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린다는 고문이 있어요. 사람들은 ‘너는 왜 남자 같아?’ 혹은 ‘너 왜 여성스러워?’라고 쉽게 내뱉지만 그걸 수년간, 수십 년간 들어온 사람의 스트레스를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에요. 온몸이 날카로운 사람이 누군가를 꼬옥 껴안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개인 상담도 받고 파트너와 함께 상담을 받기도 했어요. 저는 연애를 앞둔 사람들에게 내가 상대에게 아픔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다음을 바라보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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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다혜
이다혜

작가. 지은 책으로는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등이 있다. 라디오 <책으로 행복한 12시>,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등의 프로그램에서 책과 영화에 대해 말하는 일을 한다. <씨네21>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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