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인문 사업 아카이브

[멘토에세이] 이연철 멘토, “귀촌 3년차, 어린이들과의 인생나눔”

2024-01-03

 

귀촌 3년차, 어린이들과의 인생나눔 인생나눔 교실 멘토에세이 이연철멘토웬걸, 손자와 달랐다. 첫 시간부터 아이들의 눈빛이 싸아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말해주어서 알았지만 내가 너무 늙은이였던 것 늘 젊다고 나이와 달리 젊게 생각한다고 자부해왔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내 생각이고 아이들은 달랐다. 아무리 낮춰 보아도 자기네 꼰대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으니 얼마나 더 꼰대겠느냐고 생각했던 것이다.지아동에서 많은 아이를 만났지만 지금도 칼을 들었던 아이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동생에게 맞으면서도 괜찮다고 얼마든지 맞아줄수 있다고하던 누나도 사랑도 내리사랑이듯이 폭력도 내려간다. 엄마의 고단한 삶으로 아이에게 생긴 폭력성 안타깝게도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아이들의 폭력성, 거친 언어,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어휘 부족 등을 자주 보았다. 인생나눔인데 충분히 나눠주지 못해 지금도 아쉽다.

 

 

 

 

 

 

귀촌 3년차.
뭔가 지역을 위해 해보고 싶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을에서 떨어진 주택이라 지역 주민이라고 부를 사람이 없었다. 사람도 몰랐고,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막연한 생각으로 인터넷을 뒤지다가 인생나눔을 우연히 알게 되고, 용케 합류하게 되었다.
지역아동센터(지아동) 어린이들과 어울렸다. 원래는 지역 청년이나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과 인생나눔을 하고 싶었으나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뜻대로 되지 않고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손자와 놀아본 경험이 있으니까 잘 어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웬걸. 손자와 달랐다.
첫 시간부터 아이들의 눈빛이 싸아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말해주어서 알았지만, 내가 너무 늙은이였던 것.
늘 젊다고, 나이와 달리 젊게 생각한다고 자부해왔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내 생각이고 아이들은 달랐다. 아무리 낮춰 보아도 자기네 꼰대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으니 얼마나 더 꼰대겠느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듬해 지아동 2년차. 오누이가 있는데 이들을 따로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코디가 제안했다. 사전 답사 중에 내가 상담을 오랫동안 했다고 하자 상담 겸 오누이 지도를 부탁해온 것이었다. 1년차를 잘 보냈기에 자신감이 있었던가. 제안을 쉽게 받아들였다.
누나가 6학년, 남동생이 2학년. 엄마는 식당에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있어 아이들을 보살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엄마는 술을 자주 마셨고, 남편도 벌써 세 번째며, 늦은 저녁에 들어오면 아이들을 폭력으로 다스린다고 한다. 그 영향 탓으로 남동생 또한 폭력이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봤자 아이들 아니겠느냐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다.
누나는 뭐든지 동생 위주였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동생의 폭력성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누나 그림이 좋아 보이면 누나가 쓰던 색연필을 빼앗았다.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리고 주겠다고 하면 곧바로 주먹으로 누나를 쳤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안 된다고 하면 들은 척도 안 했다.

어느 날, 동생이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꿈을 그리라고 했더니 귀신이 피 흘리는 내용이었다.

"이게 왜 재미있니? 나는 무서운데?"

 

"아니요, 재미있어요, 나는."

동생이 삐딱선을 탔다. 기왕 그리는 것, 색깔을 다양하게 써보라고 조언하며 “여기는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내가 연필로 선을 하나 그었다. 순간 동생의 눈이 획 돌아갔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가서 부엌칼을 가져와서는 나를 노려보았다. 눈에서는 분노가 지글지글 끓었다. 이럴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아마도 이때 내 얼굴은 흰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지나가던 직원이 달려와 사태가 수습되기는 했으나 지금도 그때 분노 가득한 아이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직원의 말에 따르면 남동생은 걸핏하면 112에 전화해서 누나가 때렸다고 신고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가 때렸으면서.
남매와의 만남은 그 후에도 계속됐지만 동생은 그날 왜 그랬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짐작하건대 내가 그 아이의 그림에 허락 없이, 무심코 손댄 것이 ‘자기 것’의 침범 혹은 무시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지아동에서 많은 아이를 만났지만 지금도 칼을 들었던 아이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동생에게 맞으면서도 괜찮다고, 얼마든지 맞아줄 수 있다고 하던 누나도. 사랑도 내리사랑이듯이 폭력도 내려간다. 엄마의 고단한 삶으로 아이에게 생긴 폭력성.

안타깝게도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아이들의 폭력성, 거친 언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어휘 부족 등을 자주 보았다.
인생나눔인데 충분히 나눠주지 못해 지금도 아쉽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멘토에세이] 이연철 멘토, “귀촌 3년차, 어린이들과의 인생나눔”' 저작물은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COPYRIGHT (C)2015 Arts council Korea. ALL RIGHT RESERVED.

 

■  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생나눔교실 블로그 http://blog.naver.com/arko2010

■  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의  지역협력부 02-739-3946

 

  • 인생나눔교실
  • 멘토에세이
  • 에세이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아르코
  • 인문정신문화
  • 인문정신문화 온라인서비스
  • 일상이풍요로워지는보편적문화복지실현
공공누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멘토에세이] 이연철 멘토, “귀촌 3년차, 어린이들과의 인생나눔”'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댓글(0)

0 / 500 Byte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