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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소개 청년, 오래된 미래의 낙관적 이정표

“해방된 세계에 사는 새로운 젊은이들을 받아들이려면, 세계는 변화해야 할 것이다.”

-알랭 바디우, 『참된 삶』(글항아리, 2018)

‘청년’은 오래되고 불분명한 이름입니다. 그 정체성은 너무 좁거나 너무 범박한 호명입니다. 또한 모순적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변화와 미래의 가능성을 견인하리라 기대받는 세대,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불안정한 삶의 조건들을 견뎌야 하는 세대. 빛나는 젊음의 이면에서 ‘먹고사니즘’이라는 치열한 문제와 전력으로 맞서야 하는 청년들에게 오늘날의 인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쇄신해야 하는 과거와 다시 써야 하는 미래의 시나리오가 언제나 달라지기 마련이므로, ‘청년’이라는 기표의 내용 역시 시대와 함께 변화하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청년은 나름의 특수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 어떤 예외 없이 누구나 한 번쯤 청년일 것이며 청년이었다는 점에 있어서, 이것은 우리 삶의 보편적으로 일시적인 이름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고, 누군가에게는 안타깝고, 누군가에게는 미지이고, 누군가에게는 무한한.

따라서 청년을 호명한다는 것은 그 호명 아래 누락 없이 우리 모두를 소환하는 일이며, 청년을 사유한다는 것은 부와 명예의 추구가 아닌 ‘참된 삶’을 인문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 선보이는 『켜켜진』 10월호에서는 오래된 미래의 낙관적 이정표로서, 청년인 자들과 청년이었던 자들의 대화와 글쓰기를 통해 청년을 통과할 모두를 위한 인문의 형상을 질문합니다.

집담회에서는 각지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는 청년 3인과 함께 정책적으로 분별되는 청년 세대에 관한 담론, 그리고 그들을 위한 인문사업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하는 수다를 담았습니다.

대담에서는 청년들이 일상에서 사회 문제를 직접 발굴하고 인문적 관점으로 다뤄볼 수 있도록 실험을 지원하는 ‘청년인문실험’ 사업에 대해 되짚어봅니다. 초기 참여자였던 ‘변방의 북소리’ 이경렬과 필자의 대담을 통해, 청년인문실험이 거닐어온 여정의 의의와 앞으로의 가능성을 논합니다.

취재에서는 춘천의 작은도서관caru에서 인문활동이 누군가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킨 신비로운 일화를 따라갑니다. 함께 모여 버지니아 울프를 읽고, 쓰고, 나누던 이들이 어떻게 감자를 심어 영국까지 문학 기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살펴봅니다.

칼럼에서는 출판사 전기가오리의 운영자 신우승이 청년에게 보내는 서간문을 실었습니다. 많은 이들을 위해 문턱 없는 배움의 조건을 구축하며 청년기를 보낸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청년을 위한 낙관의 근거로서 인문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부록으로는 인문정신문화와 관련된 용어의 개념과 의미를 익힐 수 있는 십자말풀이 게임을 마련했습니다.

지금 청년들은 전례 없는 자유와 그로부터 기인한 방랑, 그리고 소외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우리의 세계가 이들을 위한 “꿈의 경작지”가 되기 위해 재발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토대를 가꾸기 위해 우리에게는 인문의 삽이 필요합니다. 일상의 무감해진 사유에 작은 빛을 밝힐 『켜켜진』이 매월 펼치는 네 개의 레이어가 부디,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던 낡은 삽을 새삼스레 돌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