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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으로 허무는 이곳과 저곳 사이의 경계,
영화 <기생충> 영문 번역가 달시 파켓

사이에 있는 이의 역할과 행복

2019-06-26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 100년사 최초의 일이다. <기생충>의 수상이 발표된 후, 새삼스럽게 대중의 주목을 받는 이가 있다. 올해로 한국 생활 23년째인, 번역가이자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Darcy Paquet). 

그는 지금까지 100여 편이 넘는 한국영화를 번역하고 한국영화를 영어로 소개하는 웹사이트, ‘koreanfilm.org’를 20년 이상 운영하며 자타공인 한국 영화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왔다. 수년 전부터는 ‘들꽃영화상’ 집행위원장을 맡아, 주류 영화 외곽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기생충 포스터와 들꽃영화제 포스터 기생충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2019 봉준호 감독 작품 5월 30일 대개봉 제6회 들꽃영화상 Wildflower Film Award 2019.4.12 문학의 집 서울

▲ 영화 <기생충> 포스터(좌), 들꽃영화상 포스터(우) 



그는 스스로를 ‘중간자’, 그러니까 '사이에 있는 이'로 표현했다. 직업과 국적을 떠나 ‘중간자’로서 보통 사람이 쉬이 가질 수 없는 입장과 관점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해석하며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일에 자신의 행복이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이 지속적으로 발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밝혔다. ‘번역이 잘 되었을 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역량 있는 감독에게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말에선 그의 선한 인품이 느껴졌다. 이제 그의 관심은 번역가로서 단순히 한국과 세계를 잇는 일을 뛰어넘어, 한국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잇는 작업을 향해 있다.



복촌에서 포즈를 잡은 영화 <기생충> 영문 번역가 달시 파켓

 

 

Q. 한국을 찾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A. 1997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2년 정도만 머물 생각이었죠.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러시아에 살았던 경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이 생각만큼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아시아에서 좀 더 경험을 쌓고 싶어서 일본행도 고려했는데, 당시 다니던 대학원에 한국 친구들이 많아 최종적으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 1997년은 한국 영화사 전체를 놓고 봐도 상당히 특별한 시기입니다. 한국 생활을 시작한 시점이 한국 영화가 급격히 성장하는 시기와 맞물린다는 면에서 파켓 씨 개인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저도 동감합니다. 한국 생활 초기 저는 고려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에게 한국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면, 대부분이 지루하다고 말했어요. 


몇몇 학생이 <접속>이나 <조용한 가족>을 추천했는데, 그 시기 이후 한국 영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죠. 영화 산업 전반을 돌아봐도 마찬가지였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고 어떻게 그런 흐름이 생겨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는 영화계에 새로운 에너지가 유입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 흐름을 저는 흥미롭게 여겼고 그래서 영화 리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Q. 새롭게 형성된 에너지는 역시 그 당시의 정치적·경제적 위기 같은 외부의 영향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A. 제 생각에도 1990년대의 정치·사회적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산업도 그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 변화는 80년대부터 진행되었지만 실제 에너지로 전환되기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새롭고 젊은 세대의 제작자들이 등장했고, 동시에 김지운, 봉준호, 박찬욱 감독 같은 인물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영화가 새로운 시기로 접어드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웹사이트 ‘koreanfilm.org’를 20년 이상 운영해 오셨습니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A. 1999년에 아주 소박하게 시작했습니다. 예상 외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보였고, 특히 이메일로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어떤 감독에 대한 질문 메일이 오면 저는 새로운 웹페이지를 만들어서 답변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습니다. 배우에 대한 질문도 웹사이트에 포스팅하는 방식으로 답변했습니다. 그러던 중 도와주는 분들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재직 중인 한국인 교수 한 분과 영화 팬 한 분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상당히 열심히 작업을 했는데 2007년, 2008년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아이도 생기고 여러 바쁜 일이 생겨 이전만큼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천천히 업데이트 하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영문 번역가 달시 파켓

 

 

Q. 파켓 씨가 보는 한국 영화의 매력은 어떤 것인가요?

A. 한국 영화는 헐리우드나 일본 영화와는 다소 다른 느낌을 제게 줬습니다. 감정이 관객에게 상당히 직접적으로 전달된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감정에 솔직한 한국 문화의 특징적인 면이 연기나 연출을 통해서도 구현되는 것 같습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무척 독특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한국 영화는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직업이기 때문에 모든 한국 영화를 보려 노력합니다. 감독이 누구이고 연기자가 누구인지 알기 시작하면 영화의 디테일이나 연출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더욱 흥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런 접근은 당초 제가 웹사이트를 만든 계기이기도 하구요. 어떤 영화 한 편을 보고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면, 또 다른 한국 영화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한국 영화의 팬으로 입문하게 되는 것이죠.



Q. 봉준호 감독은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를 외국 관객이 과연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외국인이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지점은 한국인이 반응하는 그것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A.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그 차이는 훨씬 작을 수 있습니다. 


특히 감정적인 면에서 한국 관객은 상당히 한국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있겠지만, 외국 관객도 그 감정의 흐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부 맥락이나 디테일의 이해는 어려울 수 있겠죠. 그래서 그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해 주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명을 곁들여 소통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원작 소설을 본 후 영화를 보면 뜻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영화에 나오는 배우의 목소리나 억양에서 감정을 더 잘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가령, 가끔 한국 영화에서 출소자에게 두부를 가져다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특수한 문화적 제스처는 외국인이 잘 이해를 못하겠죠. 그때 설명을 조금 곁들인다면 감정 전달이 좀 더 쉬워질 겁니다. 



Q. 자주 질문을 받으셨겠지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번역하시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A.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답변을 드리고 싶네요. 


번역하기 어려웠던 문구나 단어가 있냐고 묻는다면 ‘짜파구리’나 ‘수석’같은 단어일 것입니다(웃음).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단어니까요. 그런데 모든 영화 번역 작업이 마찬가지겠지만, 단순 번역보다 조금 더 어려운 이유는 자막은 최대한 짧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면 전환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니까요. 각본을 정확히 번역하려면 상황과 관계된 현실과 배경을 충분히 설명해야 하지만 영화에선 그 모든 내용을 담을 수 없죠. 장면은 금세 지나가 버리니까요. 말하자면 의미 전달이 충분히 되면서도 문장은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매번 저의 도전 과제입니다. 그래서 영화가 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미리 공부해두는 편이고 그러한 사전 조사가 문장의 경제성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어느 인터뷰에서 ‘번역이 잘 되었을 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역량 있는 감독에게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A. 번역 작업을 하다보면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항상 유념하는 점 중 하나는 단어에 힘을 싣는 문제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원어민들은 대사를 들을 때 좋은 대사인지 다소 약한 대사인지를 곧바로 감지합니다. 영화 속 언어는 자신의 모국어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외국 관객은 다릅니다. 정보 전달에서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임팩트를 주어 외국인 관객이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감정 전달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업이 확실히 된다면, 외국 관객도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겠죠. 봉준호 감독님은 칸 영화제 수상에 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지만, 제가 얼마만큼 기여했는지 알 수 없어요.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이기 때문에 제가 아니라도 <기생충>은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유명하지 않은 감독의 작품일 경우 관객에게 감정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번역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번역이 섬세할수록,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작품이 영화제나 관객에게 더 깊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봉준호 감독님은 이미 유명하시잖아요(웃음). 젊은 새로운 감독들과 일할 때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Q. 많은 사람들이 파켓 씨를 배우로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작이 있다면요?

A. 다른 작품들도 좋았지만 <돈의 맛>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주 큰 규모의 작업이었습니다. 세 번째 출연작이면서 동시에 제가 참여한 영화 중 가장 큰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윤여정과 백윤식 배우의 팬이기도 했는데 어느 날 카메라 앞에서 제가 그분들과 대사를 하고 있더군요(웃음). 개인적으로 그분들을 알게 되고 친해지게 된 좋은 계기였습니다. 좋은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영문 번역가 달시 파켓


 

Q. 수년 째 ‘들꽃영화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A. 2009년 즈음에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입니다. 


한국 영화계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화평론가를 직업으로 가진 저는 독립영화 상업영화 가릴 것 없이 많이 봤습니다. 그간 독립영화에서 종종 좋은 배우와 각본을 발견했지만 기대만큼 관심을 받지 못한 작품이 많았어요. 2009년에 대종상과 청룡상 시상식을 봤습니다. 당시 저는 모든 수상이 큰 영화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느꼈고 그 문제에 관해 ‘씨네21’에 칼럼을 기고했었죠. 장르와 계통을 가리지 않고 보다 포용적인, 지금과는 다른 영화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칼럼이 보도된 후 사람들은 제가 그러한 영화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라 더 중립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생각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몇 년간 고심한 후, 이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관련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꽤나 힘든 작업이었지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영화제 운영 경험이 있던 영화평론가 오동진 님과 함께 작업을 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전년도 개봉한 저예산 독립영화를 선별해 마치 오스카상처럼 각본상, 배우상 등 분야를 정해서 시상하고 있습니다.



Q. 지금 독립영화계는 예전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독립영화의 실험적인 시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중영화까지 이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마저 상당히 침체된 면이 있습니다. 

A.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업영화계나 독립영화계 모두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영화를 만드는 일이 어렵습니다. 


먼저 상업영화는 체계화된 영화 제작 프로세스 환경 때문에 어렵습니다. 말하자면 투자금 회수 문제 등 검증된 시스템을 통해 제작 전반에 걸쳐 안정을 꾀해야하기 때문에 과감한 시도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또한 젊은 감독들은 재정 지원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젊은 감독에게 제작사와 투자사는 모험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 정도의 재정 투자와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또한 독립영화계는 관객 자체가 적어서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낯설고 평범하지 않은 영화가 관객을 도리어 극장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는데, 그렇다고 관객과의 접점이나 연결고리를 애써 만들면 덜 창의적이거나 익숙한 문법을 이용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이 둘 사이의 긴장에 독립영화계의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결국 시장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일까요?

A. 조금 더 설명을 보태자면, 1990년대 후반에 데뷔한 감독들 중 현재도 연출력을 인정받는 유명한 감독들이 있습니다. 


봉준호, 김지운, 이창동이 그러하고 박찬욱 역시 그때 <공동경비구역>을 연출했어요. 그 당시에는 대체로 감독에게 창의적인 재량권이 있었고 제작사도 그런 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감독과 작품을 성장시킨 큰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 감독들이 성공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는 경험 많은 감독들이 젊은 감독들보다 특별히 재능이 뛰어나서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젊은 감독들이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요?



Q. 6월 ‘인문360’은 ‘디아스포라(Diaspora)’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파켓 씨에게 완벽하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여전히 있을 것 같습니다. 

A. 사실 저는 제 자신을 디아스포라라고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외국, 특히 한국에서 살고 있죠. 그리고 한국에 와서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미국인으로서 대부분의 한국인과는 다른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보고 있죠.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서 오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한국인과 보통 미국인과는 다른, 중간자적 입장에서 현실을 이해하고 살필 수 있습니다. 가끔은 저도 제 고향은 어디일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간자적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번역 작업도 그렇죠. 다른 이들이 가질 수 없는 관점을 가지는 것, 주변인이 된다는 것에는 물론 장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위치와 입장이 주는 만족감과 행복이 더 큰 것 같습니다.



○ 인터뷰 진행·정리 - 이중일

○ 사진 촬영 - 강신환 

○ 통역 - 임선희(mochachoco14@naver.com)

○ 장소 협조 - 북촌 북스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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