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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우리 집] ‘위대한 평민’들이 만든 도서관 이야기

이일훈

2016-03-17

밝맑도서관은 그 시설 면적에 비해 참으로 배짱 좋은 외부 회랑과 마당을 마련했습니다.

책만 읽는 도서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장소로서의 밝맑도서관의 정신을 보여주는 중심 공간을 외부에 마련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개발에 유용할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동네마당이 되면 더 없이 좋을 것입니다. 



 

충남 홍성의 동쪽엔 홍동마을이 있다. 전국에서 최초로 오리농법이 실시되고 친환경농업의 메카로 알려진 곳이다. 전국의 농촌마을이 인구가 줄고 노인들만 사는데 거꾸로 홍동마을은 젊은이들이 늘고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무엇이 홍동마을에 인구가 늘어나게 하는 것일까. 필시 살기 좋다/살만 하다/살고 싶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밝고 맑다, 홍성 ‘밝맑도서관’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한다. 어디 아이 키우는 데만 마을이 필요할까. 우리 모두 사는 데 노는 데 죽는 데도 마을이 필요하다(그럼에도 도시에선 마을이란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다. 공동주택(아파트, 다세대, 연립주택)에 살아도 공동의식이 없이 사니 마을이 실종된 시대. 마을과 담쌓은 집, 마을에서 버려진 개인, 마을과 괴리된 삶(마을에 속하되 마을과 관계없는, 마을을 버리고 잊은)을 사는 셈이다). 홍동마을엔 바로 그 마을정신이 살아 있고, 마을은 이루는 몸이 살아 있기 때문 사람들이 기꺼이 모이는 것이다. 홍동에서는 세상의 변화를 마을에서 시작하자는 공동체정신을 오래전부터 구현해왔다. 이웃과 함께하는 출판사, 공방, 목공소, 빵집, 밥집, 카페, 연구소, 협동조합 등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밝맑도서관의 회랑과 중정에서 보이는 풍경 일부
▲ 밝맑도서관의 회랑과 중정에서 보이는 풍경 일부 ⓒ이일훈


 

그 중심에 작지만 큰 학교가 있으니 이름하여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잘 키워내 사람농사 잘 짓는 곳으로 소문난 학교다. 즉, ‘위대한 평민’을 만드는 학교다. 1958년 문을 열었다. ‘두 칸짜리 초가 교사, 흙바닥에 들보와 서까래’가 보였다고 한다. 이 학교는 개교 50주년을 맞을 즈음 기념사업으로 도서관을 짓기로 한다(여기까지는 어느 학교라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국가, 단체, 기업 등의 50주년, 100주년 사업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그 뜻이 자못 남다르다. 개교 50주년 기념 도서관을 학교 안이 아닌 학교 밖에 짓기로 한 것이다. 학교 안에 있으면 학생들만 이용하지만 동네 한 가운데 있으면 지역주민 모두가 쓸 수 있다는 열린 사고방식이다. 과연 풀무학교다운 생각이다. 필자는 그 말을 듣는데, 학교 도서관이 세상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울렁거렸다.


 

‘위대한 평민’이 새겨진 풀무학교 안의 표어석
▲ ‘위대한 평민’이 새겨진 풀무학교 안의 표어석

 

 

도서관은 아직 밑그림도 없는데 이름은 벌써 지어놓았다. ‘밝맑도서관’이다. ‘밝맑’은 풀무학교 공동설립자(이찬갑+주옥로) 가운데 이찬갑 선생의 호에서 왔다. 밝고 맑다는 뜻이다(풀무학생들과 주민들의 아침 인사말 “밝았습니다.”와 낮 인사말 “맑았습니다.”의 연유도 여기서 왔다). 건강한 건축은 건강한 뜻에서 잉태한다. 학교 밖에 도서관을 짓겠다는 생각이라니, 과연 세상에 밝고 맑구나!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어 가족만 남(챙)기는 시절에, 부끄럽구나. 과연 밝맑이시다.


 

누구나 기웃거릴 수 있는 도서관을 짓다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큰 뜻의 ‘밝맑도서관’을 어떻게 지을까. 요구되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건축이라면 건축은 너무 쉽다. 프로그램 밖의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을까. 흔히 도서관은 이용자의 양태를 분석하여 설계 자료로 활용하는데 거꾸로 필자는 전혀 다른 구상을 하였다. 즉,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편히 올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다. 수장 및 열람하는 책과 책을 읽는 사람을 고려하는 것이 바로 도서관인데 지역도서관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만으로는 충실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이 책만 있(읽)는 곳이라면 공부방이나 독서실과 무엇이 다른가. 지역(동네)도서관은 책을 읽기 싫은 사람도 올 수 있어야 한다. 놀고 싶은 아이도 와야 한다. 심심한 사람이 기웃거리고 머물면 더욱 좋다. 논밭 일에 피곤한 몸이 잠시 기운을 차리고, 막걸리 마신 기분으로 그늘에 머물고, 동네 일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누구는 책을 보지만 누구는 뛰놀기도 하는 곳, 오늘 책 안 읽는 사람이 내일은 책을 읽고 싶은 곳….

 

흔히 도서관은 크건 작건 내부(실내) 공간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도서관은 책 중심이라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러나, 책 읽는 방법에 주목하여 외부공간에서도 책을 읽을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눈비에 젖지 않고 바람은 통하고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지는 외부공간(마당)이 있고, 마당을 둘러싸는 회랑이 있으면 좋으리라. 회랑은 외부인 듯 내부인 듯 이중성의 공간, 그런 공간은 내부공간에서의 집중된 두뇌활동을 멈추고 잠시 쉬기에도 적당하지만 아무 일 없이 어슬렁거리기에 더 없이 좋다. 그래서 내부공간이 아닌 외부공간이 중심이 되는 도서관을 만들자.


 

회랑과 중정을 보여주는 평면 스케치
▲ 회랑과 중정을 보여주는 평면 스케치 ⓒ이일훈

 


회랑이 있는 도서관을 보여주는 초기 드로잉
▲ 회랑이 있는 도서관을 보여주는 초기 드로잉 ⓒ이일훈

 

 

준공식에서 필자의 인사말 중 일부, “밝맑도서관의 면적은 넓지 않고, 사용된 재료 또한 화려하지 않습니다. 빛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옹색하지 않고 누추하지 않습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여러 채로 나눈 것은 언덕에 있되 도드라지지 않고 동네와 조화되려는 자세입니다. 밝맑도서관은 그 시설 면적에 비해 참으로 배짱 좋은 외부 회랑과 마당을 마련했습니다. 책만 읽는 도서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장소로서의 밝맑도서관의 정신을 보여주는 중심 공간을 외부에 마련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개발에 유용할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동네마당이 되면 더 없이 좋을 것입니다. 도서관의 중심을 외부로 끌어낸 그 빈 마당은 무한한 채움의 가능성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새로운 마당입니다. 그 비움의 장치가 가능했던 것은 물질적인 도서관 한 채를 짓기 전에 세상을 껴안는 뜻과 정신을 먼저 품고 그렇게 살고 계신 여러분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비움의 미학을 위해

몇 년이 흘렀다. 마당과 회랑은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한마디로 건축가의 예상보다 훨씬 잘 쓰이고 있다.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음악회도 열린다. 동네행사가 열리는 것은 기본이다. 제일 기분 좋은 일은 할머니 장터가 열리는 것이다. 도서관과 마을 사람들의 궁합이 아주 좋다. 그것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안목과 노력 때문이다. 이럴 때 건축이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라는 생각에 힘이 실린다. 하드웨어로서만 존재하는 거대한 건물들을 자주 본다. 그런 것들은 문화·예술이라는 말을 앞세우고도 문화‧예술과 호흡하지 못하며 불편한 동거를 지속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 본다. 어떤 자리에서 인사를 나눈 사람이 내게 한 말, “제 친구가 밝맑도서관 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도서관에서 올리는 결혼식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게 다 마당(장소)의 힘, 건축의 힘일 것이다.

 

얼마 전, 모 신문사의 기획으로 풀무학교와 밝맑도서관을 다녀왔다. 그 전에는 다른 일행들이 같이 가길 청해 다녀온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건축가로서 은근한 걱정이 있다. 규모도 작고, 볼 것도 없는데(흔히 건축작품이라면 대단한 기대가 있을 것이니)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다행히 “세상에서 제일 큰 도서관”이라거나, “마음이 움직이는 시간”이었다고 하기도 하고, “제 고향에 이런 도서관 짓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도서관의 운영자세를 보고 느낀 것일 테니, 그 역시 건축은 사실 소프트웨어라는 반증일 것이다.

 

 

회랑과 중정.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없이(無) 채워진’ 외부공간이다.
▲ 회랑과 중정.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없이(無) 채워진’ 외부공간이다. ⓒ이일훈


 

열람실에는 들판을 볼 수 있는 긴 수평창이 있다. 책을 보다 슬며시 눈을 들어 들판을 보며 농사와 세상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창이다. 갈 때마다 그 창에도 빽빽하게 책을 꽂아 들판 풍경이 많이 가린다. 책이 점점 늘어나 공간이 부족한 탓임을 알면서, 봉사자에게 말했다. “저 수평창의 의도를 아시지요?” “예. 압니다. 공간이 부족해서 자주 못 치워서 그렇습니다. 앞으로 웬만하면 창을 가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말 없는 들판 풍경에서 노동의 의미와 같이 사는 세상의 소중함을 느낀다면 창(窓)이 곧 책이라고 여겨 한 말이었지만 공간의 부족은 건축가로서 어찌 해볼 수가 없다. 좁을수록 넓게 쓰자고 말하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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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일훈
이일훈

식물성의 사유를 지닌 철학적 건축가로 불리며,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늘려 살기’를 권유하는 ‘채나눔’ 설계방법론을 주창한다. 천주교 ‘자비의 침묵수도원’ ‘안드레아병원 성당’ ‘성 프란치스코 평화센터’, 불교 ‘도피안사 향적당’과 ‘기찻길옆 공부방’ 등의 사회성 짙은 작업을 했다. 『사물과 사람 사이』,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등의 책을 펴냈다. 건축주와 주고받은 이메일을 묶은 책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대만에서 번역·출간되기도 했으며, 건축의 대중화와 인문학으로서의 건축을 보여주는데 한몫한다는 평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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