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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쿠스 : 유럽 역사에서 나타난 노년의 두 가지 인식

박문국

2016-11-01

유럽 역사에서 나타난 노년의 두 가지 인식


인류가 사회를 구성한 이래 노년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해왔다. 하나는 오랜 시간 연륜을 쌓아 나름의 존중을 받아야 할 지성체로서의 노년이다. 이 인식에 따르면 노년은 그 자체로서 존경받아야 한다. 젊은 층이 미처 갖추지 못한 깊은 통찰을 지녀 인류의 스승이 될 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면 뇌 기능의 감퇴, 활력의 저하와 같은 생물학적 한계를 강조하는 시각도 있다. 산업화 이후 노년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무너지며 이런 경향이 심화되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노땅, 노슬아치, 꼰대와 같은 혐오적 표현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그렇다면 노년에 대한 비하적 인식이 산업화 이후에나 등장한 것일까? 전근대 시절 노년에 대한 대우가 근현대보다 더 나았을 것이란 통념이 있으나 이런 통념은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막대한 권력과 부를 누린 그조차 늙어감과 죽음을 두려워해 불로초를 찾아다녔다.

 

한편 서양에는 젊음의 샘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지방에는 피부를 윤기 나게 하는 제비꽃 향의 샘이 존재했다고 한다. 12세기에 유행한 「프레스턴 존의 편지」의 한 판본에는 “누구든지 그 샘물을 세 번 맛보게 된다면 그날로 모든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되고 여생을 30세처럼 보낼 수 있게 될 것”이란 구절이 등장한다. 16세기의 콩키스타도르이자 푸에르토리코 총독으로 잔악한 통치를 일삼았던 후안 폰세 데 레온은 이 젊음의 샘을 찾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 곳곳을 탐험한 바 있다. 만약 노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면 불로초나 젊음의 샘과 같은 전설이 유행하는 일을 없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노년은 더욱 노골적인 폭력성을 드러낸다. 그의 저서 『수사학』에 나타나는 노인은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불신이 강하고 악의적이며 의심이 많고 편협하다. 노인은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 속에 살며, 희망보다는 기억에 의존한다. 그들의 관심은 멋있거나 귀한 것보다는 쓸모없는 것에 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에서 나타나는 노년은 지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견해가 고대 그리스에만 한정적으로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13세기의 신학자이자 정치이론가인 아에기디우스 로마누스는 프랑스의 필리프 4세에게 국왕의 교육지침서를 헌정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노인은 소심하고 의심이 많고 인색하며 비관적이다. 14세기의 프랑스 작가 기욤 드 데귈레빌은 『인생의 순례』에서 늙은 여성에게 재난, 이단, 질병, 나태, 오만, 아첨, 위선, 질투, 배반, 죄악, 분노, 탐욕 등 세상의 모든 악행을 덧씌운 바 있다. 18세기 독일 도시의 성문에는 커다란 몽둥이가 하나씩 달려 있었는데, 여기에는 “자녀에게 먹을 것을 의존하거나 가난에 시달리는 자는 이 몽둥이로 죽도록 얻어맞을 것이다”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수프를 먹는 두 노인>(프라도 미술관 소장)

▲ 프란시스코 고야의 <수프를 먹는 두 노인>에서 나타나는 노인은 산송장의 모습이나 다를 바가 없다. (프라도 미술관 소장)

 

물론 노년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예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한 가지 예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공직자는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 특히 최고위 행정관인 총독직의 경우 60대나 70대, 심지어는 80대의 노인들이 선출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사람들은 지혜롭고 균형 감각을 갖춘 노년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 베네치아 공화국과 같은 특수한 사례 외에도 노인들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역할이 부여된 바가 있다. 유럽의 전통적인 지역 사회에서 소송이나 분쟁이 발생했을 때 증인으로 채택되던 것은 주로 노인이었다. 공동체의 관습과 기억의 수호자라는 명예가 부여된 것이다. 그 외에 공동체의 신앙생활 및 지식의 전달자 역할을 노인이 담당한 일도 적지 않다. 이런 상반된 사례를 통해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전적으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고정된 노년의 이미지는 오랜 시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8세기 이전의 역사, 최소한 유럽이란 공간 안에서의 노년은 그러하다.

 

이랬던 유럽 사회에서 노년의 가치가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한 18세기였다. 혁명의 주체들은 형제애로 묶인 공동체를 찬양하고 현명한 존재로서의 노년을 부각시켰다. 그들은 지역별로 ‘노인 축제’를 열어 노인들에게 애국적 이미지를 부여했고 예술가들은 이전과는 달리 노인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안 자이볼트의 <그린 스카프를 걸친 노파> (드레스덴 미술관 소장)

▲ 크리스티안 자이볼트의 <그린 스카프를 걸친 노파>에서 보여주는 품위 있는 노년의 모습은 

18세기에 나타난 인식의 변화를 상징한다. (드레스덴 미술관 소장)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이데올로기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루이 15세와 루이 16세 시대의 회고록에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존재가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노인들에게 양육의 가치가 새롭게 부여된 것이다. 현대 사회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18세기의 노년은 양적으로 증가했고, 침대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노년 대신 후대에 지식을 전수하는 노년의 가치는 더욱 강조되었다. 중요한 것은 18세기의 노년이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존중받은 것이 아니란 점이다. “노년에는 스스로 싸우고, 권리를 지키며, 누구든 의지하려 하지 않고,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스스로를 통제하려 할 때만 존중받을 것이다”란 키케로의 말처럼 18세기의 노년들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했기에, 혹은 증명할 수 있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했기에 그들의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현대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령화에 직면해 있다. 노년의 양적인 비율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고 그들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서두에서 언급한 노년에 대한 혐오적 표현이 만연한 것은 노년 사회가 현대의 주류적 입장과는 괴리된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부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노년의 가치는 과거만큼의 영향력을 갖기 힘들다. 또한 이런 지나간 시대를 애써 부여잡으려는 일각의 움직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을 배제하는 것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청장년도 노년도 사회를 구성하는 동일한 하나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너희 젊음이 너희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는 벌이 아니다”라고 말한 시어도어 레트키의 통찰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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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문국
박문국

역사저술가. 숭실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과 사학을 전공했으며 저서로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박문국의 한국사 특강-이승만과 제1공화국』등이 있다. 통념에 따른 오류나 국수주의에 경도된 역사 대중화를 경계하며, 학계의 합리적인 논의를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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