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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무것도 없다, 있다 해도 알 수 없고, 안다 해도 말할 수 없다”

-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 불변의 존재 대신 더 나은 현실 추구한 철학자 고르기아스

김헌

2021-05-26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는? 세상엔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철학은 시작됩니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직접 찾아가 보고, 생각한 것을 실행하기도 합니다. 치열한 노력 끝에 앎에 이르러 느끼는 희열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요.  이 모든 과정을 다듬어 낸 그리스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철학의 뿌리를 찾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사상과 언변에 감탄했습니다. 많은 유력자들이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움을 청하려고 했습니다. (중략) 영원불변의 보편적인 존재와 진리를 거부한 고르기아스에게는 변화무쌍한 정치적 현실에서 시의적절한 의견을 제시하여 사람들의 삶에 유익한 결실을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는데,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수사학이었던 겁니다.



지금은 사과지만 점점 사과가 아니게 되는



탁자 위에 놓인 사과

탁자 위에 놓인 사과



탁자 위에 사과가 하나 있습니다. 사과라고 했고, 그것이 있다고는 했지만,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해갈 겁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는 사과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로 변질되고 마침내 먼지로 무너져 내리고 바람에 쓸려 탁자에서 깨끗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사과에서 사과 아닌 것으로 변해간다는 것은 사과라는 존재가 시간에 갉아 먹히기 때문이겠지요? 사과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지금도 사실은 조금씩, 조금씩 사과 속에 있는 ‘사과성(性)’, ‘사과’, ‘사과로 존재함’이 사라져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탁자 위에 사과가 하나 있다’라는 말은 ‘사과라고 여겨지는 어떤 것이 사과성을 잃어가면서 사과 아닌 것이 되어 가고 있다’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 세밀한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하지 못하는 우리의 둔감함 때문에 우리는 탁자 위에 있는 그것을 보고 ‘사과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일 테지요. 프로타고라스가 말한 것처럼, 뭐가 있다는 것도, 없다는 것도, 다 우리가 판단의 기준이 돼서 하는 소리지, 정확한 사실을 말하는 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네요.


세상만사가 다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것처럼, 언제나 있고 변하지 않으며 소멸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은, 그저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과가 있어 영원히 사과로 존재하며 다른 그 무엇이 되지 않는 완벽한 사과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사실 지금 탁자 위에 있는 ‘사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사과가 아닌 것’에서부터 출발했을 겁니다. 씨가 땅에 떨어져 나무로 자라나고, 봄이 되어 꽃을 피우면서 ‘사과가 될 무엇’인가가 자라나겠지요? 작은 알갱이로 시작될 그 열매를 언제부터 ‘사과’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사과가 아닌 것’에서 조금씩, 조금씩 ‘사과성’을 갖추어 가면서 ‘사과’가 되겠지요?


이런 사정이 우리가 사는 존재 세계의 특징이요 본질이라면,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것 같은, 생성 소멸을 넘어서고 영원불변하는 완벽한 존재가 가능할까요? 예컨대, 사과 하나만 두고 말할 때, 언제나 온전한 사과성을 지속적으로 갖는 ‘완벽 사과’라는 것이 존재하겠냐는 말이지요.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사실 존재를 위협할 그 어떤 변화와 소멸도 견뎌내야 하며, 존재라는 말을 쓰는 한, 그 어떤 ‘없음’도 제거되어야 합니다. 존재라는 말을 논리적으로 본다면, 그래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논리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완벽한 사과가, 그런 존재가 정말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요?



변하지 않는 존재 자체를 부정한



고르기아스의 두상 (이미지 출처: 철학 오디세이)

고르기아스의 두상 (이미지 출처: 철학 오디세이)



기원전 483년 이탈리아반도 남쪽 시칠리아섬의 레온티노이에서 고르기아스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엠페도클레스의 제자가 되었지요. 엠페도클레스는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 변하지 않는 원소를 찾던 자연 철학자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모든 것들이 생성 소멸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 밑바탕에는 변하지 않는 요소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있는 것은 없어질 수 없고, 없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지키면서도 우리의 감각에 와 닿는 이 세상의 변화를 설명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는 물과 불, 공기와 흙은 생성 소멸과 변화에서 벗어나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원초적인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들이 서로 결합하고 해체되면서 이 세상의 모든 변화와 다양한 현상들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이른바 4원소론입니다.


하지만 고르기아스는 엠페도클레스의 설명에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4원소라는 것도 생성 소멸과 변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고르기아스는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4원소와 같은 것이, 더 근본적으로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존재라는 것은 없다고 보았습니다. 변하지도, 생성 소멸하지도 않는 존재라는 것, 그렇게 있어야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엔 ‘그런 것은 없다’라고 주장한 겁니다. 그의 결론은 세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아무것도 없다. 있다 해도 알 수 없다. 안다 해도 말할 수 없다.” 그의 결론은 파르메니데스의 생각, 즉 “존재하는 것만 존재한다. 존재하는 것만을 알 수 있고, 아는 것만을 말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불변’ 대신 ‘유익’ 좇아 수사학의 달인으로 변신



플라톤의 『Gorgias(고르기아스)』 책 표지 (이미지 출처: YES24)

플라톤의 『Gorgias(고르기아스)』 책 표지 (이미지 출처: YES24)



그의 철학적 결론은 그를 수사학에 전념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427년, 쉰여섯의 나이에 고르기아스가 처음으로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그는 조국 레온티노이의 외교 사절이었습니다. 시칠리아섬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 국가였던 시라쿠사가 조국을 침략하려고 하자, 아테네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방문 목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사상과 언변에 감탄했습니다. 많은 유력자들이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움을 청하려고 했지요. 그 가운데는 희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있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플라톤은 두 사람의 만남을 담은 대화편을 ‘고르기아스’라는 제목으로 남겼지요. 그 작품 속에서 고르기아스는 수사학의 달인으로 등장합니다. 당시 ‘수사학(rhētorikē)’은 의회나 법정, 시민들의 모임에서 청중을 설득하는 ‘연설가(rhētōr)의 기술(-ikē)’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영원불변의 보편적인 존재와 진리를 거부한 고르기아스에게는 변화무쌍한 정치적 현실에서 시의적절한 의견을 제시하여 사람들의 삶에 유익한 결실을 맺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는데,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수사학이었던 겁니다.


고르기아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조국의 안위, 더 나아가 그리스 전체의 평화였습니다. 그 시대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 그리스 내부의 갈등이 고조되던 때였습니다. 그가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전쟁(기원전 431~404년)이 한창이었지요. 그는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습니다. 모든 그리스인들이 모인 올륌피아 제전과 퓌티아 제전에서, 그는 대표 연설가로 뽑혔습니다.


‘그리스인들이여, 우리끼리 왜 싸우는가? 이런 싸움은 저 바다 건너 페르시아인들에게 침략의 기회를 줄 뿐이다. 우리 이제 갈등과 싸움을 멈추고 하나가 되자. 그리고 그 힘을 모아 페르시아에 대항하자.’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허무의 늪 빠지지 않은



고르기아스는 시대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면서, 그 돌파구를 제시했는데, 수많은 관중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를 기리는 황금상(像)이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세워질 정도였지요. 그의 연설은 이후 그리스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 한다는 ‘범그리스주의(panhellenism)’의 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원정이라는 거대한 열매로 자라났습니다.


고르기아스는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그의 시대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무려 108세의 천수를 누렸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다”라고 주장한 그가 허무의 늪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그 생각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와 자기의 출신 국가와 그리스 민족 전체를 위해 더욱더 치열하게 살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 지금 있지만, 언젠가는 사라지겠지요? 그렇다고 모든 것이 헛되고 허무한 건 아닐 겁니다. 아무것도 없기에 무언가를 더욱더 갈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9. “아무것도 없다, 있다 해도 알 수 없고, 안다 해도 말할 수 없다”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 8. “사람이 만물의 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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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
김헌

고전학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졸업 및 같은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Université de Strasbourg) 서양고전학 박사. 펴낸 책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인문학의 뿌리를 읽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이 있음. 서양고전을 널리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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