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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문文紋 : 마을, 소설이 되기 좋은 모든 것 -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서효인

2017-06-14

마을, 소설이 되기 좋은 모든 것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소설의 시작은 새로 정착할 마을을 찾는 한 가족의 여정에서 비롯된다. 살인을 저지르고 고향을 떠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 마을을 건설한다. 마을의 이름은 마꼰도. 소설은 마꼰도에서 6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거침없이 그려 나간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어느 소설보다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역사 곳곳을 뚜렷하게 상징한다. 그렇다. 이 소설의 제목은 『백년의 고독』이고, 작가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이다.

 

책표지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백년의 고독』은 마술적 리얼리즘의 정수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소설이자, 현대문학에 있어 소설의 죽음을 넘어, 소설의 부활을 이끈 최고의 작품이다. 이러한 작품의 공간을 한 마을로 치환시키는 것은 소설의 넓고 깊은 세계를 축소시키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백년의 고독』의 배경은 마꼰도라는 마을이고, 후손에 후손을 거쳐 마을이 커져 도시가 되고 공동체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시작이 마을이었으며 마을의 속성을 갖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소설 속 마꼰도는 마을이자 도시이고 국가이자 민족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마술적인 힘을 통해, 마꼰도라는 마을은 지극히 특수한 지역으로 자리한다. 동시에 마술적인 것, 신비로운 것, 신화적인 것들이 소설이라는 리얼리즘의 세계에서 총체적으로 통합됨으로써, 마을은 콜롬비아가 되고 아르헨티나가 되며 나아가 라틴아메리카가 된다. 그리고 소설이 출간된 지 거의 50년이 되어 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 마꼰도는 인류의 공간,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것이 한 편의 소설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인가? 『백년의 고독』에서 마꼰도는 백 년이 넘는 고독의 파토스를 뿜어내고 있으며, 같은 기간의 에토스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물론 마꼰도의 인물들이 보인 고독의 총합이며 더 나아가 번짐이다. 동시에 그들이 실패해버린 사랑의 절망일지도 모른다. 마을이란 그런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있기 전, 이곳에 존재한 이들의 대부분의 실패와 희귀한 성공이 몸을 섞어 오늘날을 불러왔다. 이것은 흔히 역사라고 부르지만, 역사는 사료에 의한 기록을 공적으로 본다. 소설은 공적이지 않은 부분의 되살림이며, 마꼰도의 모든 인물들은 아마도 역사에 의하자면 기록되지 못했을 삶이지만 문학은 기록하여 보존한다. 그것이 소설의 본래 역할이라도 된다는 듯이.

기록되지 못한 마을의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이 꼭 라틴아메리카에 국한될 일은 아니다. 우리의 마을도 역사가 되지 못한 이야기가 숱하게 많으며, 그것은 구전에 의해 혹은 유전자에 의해 이어져 내려와 지금 우리 삶에 각별한 영향을 미친다. 제주 산간 지역의 작은 마을 대부분은 제주 4.3항쟁의 희생이 있었던 공간이며, 희생자와 피해자의 후손이 그곳에서 지금껏 삶을 일구고 있다. 여수와 순천에서 지리산 기슭에 이르는 산길은 이념 전쟁에 의한 도피와 추적의 길에 다름 아니었다. 6.25 전쟁 중에 자행된 양민 학살 또한 마을의 일이었으며, 구로와 청계천의 노동자도 결국 마을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 마을들은 마을이면서 공동체고, 한국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백년의 고독』이 나선형의 시간 구조를 갖고, 비사실성을 기반으로 한 사건 전개를 보이는 것은 상당히 일리 있는 기법이다. 우리가 사는 마을은 보통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서사를 품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옛날이야기’라 부른다. 기억하는 자의 입에서 듣는 자의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문자가 아니기에 끊임없이 변형된다. 살이 붙거나 굴절되거나 삭제되는 것이다. 그 과정의 말미에 허구의 종결자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 있다면, 마을의 이야기는 글로 새겨질 수 있다.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의 구전을 플롯과 문장으로 구성해 소설로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았다. 라틴아메리카의 이야기는 『백년의 고독』을 통해 다시금 생명력을 얻었다. 마꼰도는 마을이다. 마을은 공동체다. 마을은 곧 우리의 모든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이야기, 그것이 소설이라면 우리가 사는 마을,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그리고 모든 지역이 소설의 공간이 아니 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독자의 입장에서, 한국어로 된 『백년의 고독』을 기다린다. 부디, 백 년의 기다림이 아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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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서효인
서효인

시인, 에세이스트, 출판편집자.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했으며 2011년에는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잘 왔어 우리 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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