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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Tech : 요리는 자신을 건사하는 일이다

박재용

2017-07-04

요리는 자신을 건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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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料理)’는 한자어를 잘 보면 먹을 재‘료’를 도‘리’에 맞게 처리하는 일 혹은 그 결과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럼 도리에 맞게 처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영양 성분을 잘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름에 잘 녹는 영양물질이 있는 경우 우리는 기름과 함께 요리한다. 샐러드에 올리브오일을 뿌리는 것, 나물을 들기름에 무치는 것 등이 그 예일 것이다. 혹은 고분자화합물이라 소화시키기 힘든 경우 가열하여 분자의 연결을 끊는 일도 있다. 밥을 한다든가 떡을 찌는 것, 옥수수를 삶는 것 등이 해당된다. 그리하여 생것일 때 몰랐던 단맛, 구수한 맛을 느낀다. 우리 몸은 녹말보다 포도당이나 엿당, 설탕과 같은 이당류를 선호한다. 그리고 이를 구별하기 위해 이들의 맛을 달게 느끼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이다.


옥수수


잡곡밥, 나물 사진


둘째로, 필요 없는 성분이나 해로운 성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물 요리를 할 때 데치는 것은 쓴 맛을 빼기 위한 것이고, 그 쓴 맛은 사실 우리에게 별 이로운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중 어떤 것은 독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쓴 맛은 거의 대부분 ‘알칼로이드’의 맛인데 식물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드는 독의 성분 역시 대부분 알칼로이드다. 따라서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인간은 그 독의 맛을 ‘쓰게’ 느끼는 것이다. 뱉어내고 싶게끔 말이다.


한식 사진


셋째로, 여러 가지 영양성분이 골고루 있게끔 하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 고기류와 채소류, 국을 같이 내는 이유이다. 밥에는 없는 비타민과 무기질을 채소가 보충하고, 단백질은 고기가 보충한다. 또 단품요리를 할 때도 간을 맞춘다. 간을 맞춘다는 것은 결국 우리 몸이 필요한 만큼의 염화나트륨, 소금을 흡수하려는 행동이다.

2
요리는 절박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먹기 힘든 것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요리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함경도 일대에 감자를 심게 했다. 감자에 풍부한 전분을 산업용으로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이때 전분을 짜내고 남은 것을 먹게 만든 것이 바로 ‘농마국수’다. 그 질긴 국수를 먹기 위해 양념을 하고 꾸미를 올린다. 먹을 것이 귀했던 함경도 산악지대의 조선 인민들은 그렇게 해서 한겨울 허한 배를 달랬다.


국수 사진

 

나물밥은 또 어떠한가? 봄철 먹을 것이 없을 때 쌀 한 줌으로 온 식구가 끼니를 거들기 위해 밥을 지을 때 그 위에 봄철 나물을 얹어서 양을 불려 먹었다. 무를 캐면 운반할 짐을 덜기 위해 무청을 잘라서 밭에 버렸는데, 가난했던 조상들은 그 질긴 무청을 말리고 삶아서 먹을거리로 만들었다. 우거지도 마찬가지다. 가을철 배추를 수확할 때 너무 질겨 먹기 힘든 제일 바깥 잎은 김장을 할 때 제일 위쪽에 덮어서 김치가 잘 발효되도록 하는 데 썼다. ‘웃+걷다(이)’가 우거지의 어원인 것도 그 때문이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소 한 마리를 잡아 온 동네가 다 먹으려면 고깃국을 끓여야 했다. 구워먹는 건 언감생심. 국을 끓이고 그 국에 얇게 썰은 고기 몇 점 올리는 것이다. 그러고도 남는 걸 먹으려고 무릎연골이며 꼬리며 소장, 대장을 먹고, 네 개의 위도 나눠서 요리를 했다. 치즈와 버터도 유당 분해효소가 없어서 우유를 먹기 힘들었던 인류의 조상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샐러드 사진

 

3 이 모든 목적을 위한 요리는 문화가 발달하면서 점점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 등 다양한 맛을 느끼는 미각 수용기와 매운맛을 느끼는 통각 수용기, 떫은맛을 느끼는 압각 수용기의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샐러드는 채소의 엽록체가 가지는 쓴맛과 올리브 오일의 지방의 맛, 발사믹 식초의 신맛, 치즈의 감칠맛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후각이 느끼는 다양한 풍미가 합쳐져 아름다운 요리가 된다. 된장찌개는 된장의 아미노산이 만드는 감칠맛에 멸치, 다시마, 파뿌리를 끓인 육수가 가진 감칠맛이 더해지고 여기에 콩의 당 성분이 가진 단맛과 두부의 단백질이 가진 얌전한 맛 그리고 부드러운 식감, 적당히 익은 호박의 아삭함 등이 어우러진 요리다.

그러나 이런 요리에는 거짓된 신화가 있다. 밖에서 열심히 일하고 돌아온 가장과 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아이를 위해 주부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든다는 환상이다. 이 환상의 뒤에는 대가 없는 가사노동이라는 진실이 존재한다. 누구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이 사회적 강요와 왜곡된 환상의 주입에 의한 것이라면 거부해야 한다. ‘집에 있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고? 일단 근래 대부분 맞벌이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성은 동일한 노동에 대한 보상을 남성의 60%밖에 받지 못한다. 여자니까. 그것도 억울한데 돈을 적게 버니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요를 받는다. 더구나 가끔 남편보다 잘 버는 여성도 ‘남편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 강요받는 집안일의 제일 앞자리에 ‘요리’와 ‘양육’이 있다.


빨래 건조대에 있는 빨래

 

그리고 전업주부라면 해야 할 집안일은 더 많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집은 가만히 놔두면 모든 것이 제자리에 얌전히 있는 곳이 아니다. 가만히 놔두면 기하급수적으로 어질러지는 곳이 집안이다. 방바닥 청소와 침대 청소, 창틀, 렌지 후드, 천장과 등, 복도와 문틀 등 청소할 곳이 널려 있다. 색깔 빨래와 흰 빨래는 따로 해야 하고, 쓰레기는 수거일에 맞춰서 내놓아야 한다. 여름이면 매일 빨래를 돌려도 빨아야 할 옷이 항상 대기 중이다. 설거지에 가구청소, 갖가지 요금 정산 등 해야 할 일은 수북이 쌓여있다. 아이가 있다면…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이 모든 일을 무상으로 하기 때문에 남편의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그리고 자본은 이 무상의 노동을 담보로 남편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만든다.


자본과 사회의 환상이 여성을 요리한다.


요리는 이제 가정의 몫이 아니다. 가족이 해체되는 것은 당연하다. 농경사회에서 농사일을 거드는 손으로 자식을 건사하던 가족이 현대 사회에서 유지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각자의 직장과 학교로 가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서도 가족을 위해 일을 하라는 것은 그 대상이 남자든 여자든 어른이든 아이든 무리한 요구다. 할 수 있다면 가능한 가정에서의 일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각자가 해야 할 자기 건사의 노동은 사회와 직장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사랑과 우정, 친밀감으로 같이 사는 것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신을 건사하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여기면서 그런 감정을 공유하면 된다. 요리 역시,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면서 종종 다른 이와 사랑과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 할 일이다.


점과 선의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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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재용
박재용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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