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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널 : 동양의 처마와 건축가 김중업

양용기

2017-06-23

동양의 처마와 건축가 김중업

 

유학시절 외국 건축가를 배우던 중 개인적으로 한국의 건축가들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인터넷이 없던 당시 도서관에 문서형태로 한국보다 북한의 자료가 많은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건축 관련자료가 많지 않은 것이 더 놀라웠다. 다행히 한국 건축가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가 바로 김중업이다. 김중업 외에 다른 건축가 작품도 찾을 수 있었지만 김중업 만큼 긍정적으로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제주대학교 (구)본관 모습

▲ 제주대학교 (구)본관


처음으로 접한 김중업의 작품은 제주대학 본관(1964)과 을지로 서산부인과 건물(1965)이었다. 첫 인상은 콘크리트 덩어리 그 자체였다. 이후 그의 다른 많은 작품을 보던 중 그의 작품에는 일관성 있는 형태가 표현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켄틸레버(Cantilever) 형태이다. 건축물은 시대를 반영한다. 그의 작품에 담겨있는 일관된 표현에서 형태적인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고 그의 선구자적인 외로움을 읽을 수 있었다. 프로에게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미술가이든 음악가이든, 그들은 일반인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실력이 뛰어남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고, 작품을 통하여 기능 속에 메시지를 담으려 한다. 메시지는 일관되어야 한다. 일관된 표현이 바로 나눔이고 공유이다. “컨셉(Concept)은 공유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말했다. 김중업이 왜 켄틸레버를 그의 작품에 매번 등장시키는지 생각해보자.

그의 작품을 살펴보기 전 동양의 처마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처마는 무엇인가? 기능적인 부분을 묻는 것이 아니다. 처마의 하부는 외부인가 아니면 내부인가? 이러한 시도는 동양건축, 특히 한국건축의 신비로운 컨셉이다. 처마 하부는 내부에서 보면 외부가 되고 외부에서 보면 내부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하나의 영역에 다른 요소가 공존하는 것을 상반된 개념의 공유라고 본다.


한국의 건축 내부 설계도

▲ 상반된 개념을 가지고 있는 동양의 처마


한국고전건축의 마루는 외부인가 아니면 내부인가? 담장이 있는 마당은 외부인가 내부인가? 이는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 전통건축에는 이러한 개념들이 곳곳에 있다. 이렇게 상반된 개념들이 서로 공존하는 영역이 바로 기능을 공유하고 영역을 나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동양건축의 영향을 받기 전까지 서양 건축에는 외부와 내부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즉 서양의 건축은 맺고 끊는 것이 명확하지만 우리의 컨셉은 그렇게 냉정하지 않다. 이것이 인간적인 형태이고 동양의 형태이며 서양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컨셉이다. 마치 몸은 좌측인가 아니면 우측인가 하는 물음과 같다. 우측과 좌측이 모두 공존하기도 하고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건축가 라이트가 일본 건축에 매료되었다는 것을 그의 작품 로비 하우스(1909)에서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컨셉을 ‘풀어헤친 박스’라고 명명했지만 사실 동양의 처마 건축이라 말할 수 있다.

주택 공간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개인적인 공간(침실), 둘째는 공적인 공간(거실) 그리고 셋째는 준 개인 또는 준 공적인 공간(화장실)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세 번째가 바로 나눔과 공유의 의미가 더 강하다. 건축가 김중업은 6.25 전후, 시대의 전환점에 선 한국의 건축에 자신의 디자인적 욕심과 능력을 자제하고 선구자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건축물이 예술이 될 수 있으려면 일관된 컨셉이 형태에 담겨 있어 건축가의 메시지가 공유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축물은 단지 기능만을 가진 공간 덩어리일 뿐이다. 건축물은 설계자가 디자인하지만 자신의 컨셉을 강요하면 안된다. 관찰자가 이를 수긍해야만 그 메시지를 공유하고 널리 나눌 수 있는 것이다.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 모습

▲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Mark B. Schlemmer via Foter.com


이러한 메시지를 잘 보여주는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1949)는 근대건축 3대 거장(라이트,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 로에)의 작품에 대한 시대적인 완결편이고, 건축이 추구해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는 최고의 건축물이다. 글래스하우스는 형태가 없는 형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내부와 외부의 공유를 통하여 동굴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잘 보여준 건축물이다. 미스 반 데 로에는 벽돌 주택 계획안(1923)에서 벽의 자유를 통해 내부와 외부의 나눔과 공유를 보여주려고 했다. 벽은 무엇인가? 시야가 더 이상 가지 못하는 그곳이 벽이다. 즉 필립 존슨의 글래스하우스는 벽이 없는 공간이며, 미스 반 데 로에의 벽돌주택은 벽에게 자유를 부여하여 내부와 외부의 자유를 공유하는 건물이다. 우리 건축사에서 김중업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시도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메시지가 너무 심오하거나 추상적이고 복잡하면 관찰자가 이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김중업은 우리의 삶에 익숙하고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우리의 형태언어를 사용했다. 그것이 어느 부분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통해 그가 건축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전달해 준 메시지는, 형태는 건축물의 사용자와 관찰자에게 중요한 것이지만 설계자에게는 그 형태 안에 명확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복 소매 자락의 곡선, 버선 코가 갖고 있는 곡선 그리고 한옥처마의 곡선이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의 처마는 강렬하고 일본의 처마는 직선적이다. 그러나 한국처마에는 직선과 곡선이 적절히 공유되어 나타나는 섬세함과 자상함이 있기에, 김중업은 시대가 변해도 계속 후배 건축가들이 한국처마를 유지해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처마 밑은 누구의 공간도 아니다. 서양에 아케이드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김중업의 켄틸레버가 있다. 김중업은 건축을 통해 상반된 것들이 하나의 영역에서 공존하는 모습을 구체적인 형태 안에 추상적 이미지를 담음으로써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의 메시지를 모두 나누거나 공유하진 못하겠지만 그와 같은 건축가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도시속 빌딩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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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양용기
양용기

독일 건축가이자 건축학 교수. 독일 다름슈타트 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박사, 독일 호프만 설계사무소, (주)쌍용건설 등을 거쳐 현재는 안산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 『음악 미술 그리고 건축』 『건축 인문의 집을 짓다』 『철학이 있는 건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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