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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뭐라고 : 공연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마을

박병성

2017-06-16

공연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마을

 

아마도 개발 이전의 지명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언제부턴가 이름만으로도 편안함을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반영된 ‘○○마을’이라는 작명이 유행이다. 그런데 ‘마을’이라 하면 왠지 기차를 타고 한적한 들녘을 지나 등장하는 한쪽으로는 밭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인가(人家)가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풍경이 떠오른다. 유명 아파트 브랜드의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은 다를까? 아마도 ‘마을’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지기까지는 이들이 어른이 된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마을’은 실제적인 의미보다는 공동체적인 정서가 남아 있는 상징적인 장소로서의 의미가 더 크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감수성이 가득한 공연에 등장하는 마을도 흔히 이러한 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겨운 고향, 그로버즈 코너즈

 

1938년 손튼 와일더의 퓰리처 수상작 <우리 읍내(Our Town)>의 ‘그로버즈 코너즈’는 ‘마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곳이다. 적은 가구가 모여 살아서 낯선 손님이라도 등장하면 한나절 만에 모든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곳, 너와 내 것의 구별이 희박해 문의 걸쇠를 장식용으로 두는 곳이 바로 그로버즈 코너즈이다. 무대감독이 해설자처럼 등장해 작품의 이것저것을 설명하는 <우리 읍내>는 극 첫 장면에서 그로버즈 코너즈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메사추세츠 주 경계 바로 너머 뉴 햄프셔 주에 있습니다. 위도 42도, 경도 70도 37분이죠.” 마치 지구본 위에 점이라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이 그로버즈 코너즈의 위치를 정확히 설명하지만, 실제 이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마을이다. 그저 어디나 있는 평범한 마을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간인 것이다.

 

손튼 와일더의 <우리 읍내>의 한 장면

▲ 손튼 와일더의 <우리 읍내>의 한 장면

 

그로버즈 코너즈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한적한 마을에 집들이 정겹게 흩어져 있는 무대를 상상하기 쉽지만 실제 <우리 읍내>는 기대했던 정겨운 풍경 대신 몇 개의 의자만 놓여 있는 황량한 빈 무대로 진행된다. 손튼 와일더가 희곡에 무대 풍경까지 친절히 적어 놓아서 연출가가 실험적으로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지 않는 한 무대 위 황량한 풍경은 변하지 않는다. 손튼 와일더가 그로버즈 코너즈에서 일반인들이 ‘마을’에서 느끼는 정서와 다른 감성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작품 속 그로버즈 코너즈는 지루할지도 모를 반복된 일상을 되풀이하고,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공간이다. 작품은 그로버즈 코너즈에서 별다른 변화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일상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황량한 풍경을 제시한 것은 마을이 갖는 일반적인 감상성을 걷어내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여전히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은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지만 이제 그곳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공간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공동체가 서서히 와해되어 가는 시대에 마을은 상징적인 공간으로 향수를 자극한다.

 

시간이 고여 있는 마을, 윈터셋

 

마을은 공동체 정서가 남아 있는 공간이면서, 시간이 고여 있는 단조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화려한 도시에서 문화를 즐겼던 이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소설과 영화로도 유명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여주인공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의 여인으로 지금의 남편을 따라 미국 아이오와 주의 시골 마을 윈터셋에 오게 된다.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실제 배경이 된 다리

▲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실제 배경이 된 다리 ©aussiegtl via Foter.com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2017년 라이선스로 한국에서 제작한 공연에서는 프란체스카를 소개하는 첫 노래 ‘집을 짓다(To Build A Home)’에서 그녀의 긴 여정을 한 편의 무채색 스케치 영상으로 펼쳐낸다. 프란체스카가 취미인 그림을 그리며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녀의 뒤편으로는 고향인 나폴리로부터 미국 뉴욕 공항을 거쳐 오랜 시간 기차를 타고 한없이 이어지는 들판을 지나 마침내 아이오와 주에 이르는 여정이 스케치 영상으로 펼쳐진다. 그녀가 얼마나 먼 여행을 하고 윈터셋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또 얼마나 낯선 곳에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꼈을지 상상하게 해준다. 프란체스카는 이곳에서 아들과 딸을 낳아 가정을 이루고 주위 이웃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지만 본질적으로는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살아간다. 그런 프란체스카 앞에 고향을 기억하게 만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로버트가 등장하면서 마음이 흔들린다. 변화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마을이라는 공간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어 시류에 덜 휩쓸리지만 고립감을 주기도 한다. 따뜻한 공동체와 이웃 간의 정이 강조된 공간으로서의 마을 이면에는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둔 마을이 있다. 따뜻한 마을의 이미지 이면에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미지도 있다.

 

가상의 마을, 유린타운

 

때로 공연에서는 상징적이거나 신화적인 공간으로서의 마을이 등장하기도 한다. 공연에 등장하는 가장 이상한 마을 중 하나는 ‘유린타운(Urine Town)’일 것이다. 뮤지컬의 제목이기도 한 이곳은 우리말로 하면 ‘오줌마을’이다. 실제 그 지저분한 이름 때문에 이 작품을 런던에서 공연할 때 심각하게 작품명 변경을 고민했다. 뉴욕에서의 첫 공연도 공연 명을 ‘You're in Town’으로 잘못 인식한 공연장 담당자가 대관을 허가해주는 바람에 가까스로 공연이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레그 커티스의 <유린타운> 속 한 장면

▲ 그레그 커티스의 <유린타운> 속 한 장면 ©chucka

 

뮤지컬 <유린타운>은 가까운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물 부족 현상으로 용변권을 통제당하는 사회이다.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하고, 만약 이를 어기고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은 유린타운으로 끌려간다. 유린타운에 끌려간 사람 중 누구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은 유린타운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느끼지만 정확히 그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기본적인 욕망인 오줌 눌 권리를 통제당하는 사회에 대항하는 이들과, 이를 억제하는 이들간의 대결이 작품의 중심 갈등이다. 오줌 눌 권리를 주장하며 시민들의 봉기를 주도한 바비는 권력의 편에 서는 것을 거부하여 유린타운으로 끌려가고 마침내 유린타운의 실체와 만난다. 놀랍게도 바비가 끌려간 유린타운은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한 건물의 옥상이었다. 기본적인 욕망마저 통제당하면서 권력이 시키는 대로 따랐던, 바로 우리가 살아왔던 곳이 유린타운이었다. 동시에 작품은 이 질문을 관객에게로 확장한다.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어디냐고, 혹시 마을 사람들처럼 유린타운에 살고 있으면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냐고 질문한다. 작품 속 유린타운은 관객들에게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일상에 묻혀 살면서 통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무조건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그렇다고 <유린타운>이 용변권을 획득한 바비 일행을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바비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혁명은 힘을 얻어 결국 자유롭게 오줌 눌 권리를 얻는다. 혁명은 승리로 끝나지만 이 작품은 해피엔딩을 맞지 않는다. 자유롭게 오줌을 누게 되었지만 다시 마을은 물 부족 현상으로 유린 굿 컴퍼니가 통제하던 시대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빠지고 만다. 작품은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가 이전보다 더 악독하게 용변권을 통제하게 되었다는 후일담을 전하며 끝난다. 유린타운은 가상의 마을이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앞서 언급한 마을들보다 더 현실적인 면모가 반영되었다.

 

춤추는 사람들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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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병성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하고, 뮤지컬 전문지 <더뮤지컬>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장으로 있다.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160여 년간 발전시켜온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극과 음악의 유기적인 결합 방식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판소리를 세계적이고 모던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활용한 극에 관심이 많다. 공연을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각종 매체에 공연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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