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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의 서가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의 의미

조선영

2017-03-09

세계에서 가장 노동 시간이 긴 국가 중 하나인 일본에선 ‘사축(社畜, 회사에서 기르는 가축)’이란 자조적인 단어가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간 일본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해온 것은 ‘돈보다 보람이 중요하다’라는 태도로 일해온 수많은 직장인들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대가로 약속된 것은 월급뿐인데, 우리는 어째서 우리의 사생활과 가족 친구까지 모두 버려가며 일해야 할까.

 

 

 

누군가는 미치도록 일하고 싶지만 누군가는 미치도록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얻기 위해 일터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보람이나 의미는 찾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사라질 수도 있는 지금, 우리를 수많은 시험에 들게 하는 ‘일’의 의미를 고찰해본다.


 

『오 헨리 단편선』 오 헨리 지음 |  문예출판사

『일』스터즈 터클 지음 | 이매진

 

 

『일』은 1960~70년대 미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살아가는 133명이 자신의 ‘일’에 대해 입말로 들려주는 800여 쪽 분량의 두꺼운 책이다. 방송작가이자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였던 스터즈 터클은 근 3년에 걸쳐 간호조무사, 공항 수화물 운반원, 경찰부터 무직자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을 만나 그들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담아내었다. 이 책엔 초기 자본주의가 쇠퇴하고 컴퓨터의 등장으로 일터의 환경이 변하던 1970년대 초의 풍경이 잘 담겨 있다. 지난 30년간 근로자의 생산성은 엄청나게 올라간 반면,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추락한 것이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는’ 것은 언제나 인류의 운명이었다. 적어도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빈둥거리다 퇴거 명령을 받은 뒤로는 줄곧 그랬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심을 품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적어도, 드러내놓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일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지라도, 자신의 감각을 무디게 하고 영혼을 망가뜨릴지라도 사람은 일을 해야만 한다. 일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14~15쪽, 지은이 서문 중에서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은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 접수계원은 자신이 하는 일은 원숭이도 할 수 있다고 한탄하고, 패션모델은 자신이 물건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모두 자신은 로봇과 다를 바가 없다고 절망한다. 물론 소수이긴 하지만 자신의 일상에서 흥미와 만족을 느끼는 이들도 있긴 했다. 불만을 토로하는 이나 만족하는 이들 모두에게 하루의 일은 하루치 빵의 대가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었다. 책의 두께에 압도될 수 있으나 입말로 쓰여진 데다, 당시 시대상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 덕에 읽는 건 그리 힘들지 않다.


 

『출퇴근의 역사』이언 게이틀리 지음 | 책세상

『출퇴근의 역사』이언 게이틀리 지음 | 책세상

 

 

매일 전 세계 5억 명의 직장인이 일터로 일하러 갔다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는 게 출퇴근이지만, 정작 이 출퇴근이 탄생한 것은 200여 년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교통수단을 이용해 한 사람의 일터와 쉼터를 분리한다는 의미에서 원거리 출퇴근은 지극히 합리적인 행위다. 그 덕에 사람들은 생산과 여가의 공간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의 필수 요소이자 우리의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아직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출퇴근’에 주목한다.


한때 출퇴근이란 여정은 개인 우주여행처럼 먼 미래의 일로 느껴졌지만, 산업혁명과 함께 철도가 등장하면서 열차로 통근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초의 통근자들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출퇴근을 시작했으나 이들은 결국 다수가 되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일과 주거 및 여가의 패턴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꿔놓았다.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자동차의 등장이다.

 

상상해 보라, 더 건강한 노동자들이 쾌활하고 위생적인 공장에서 애써 일하는 모습을. (중략) …늦은 오후가 되어 그들이 각자의 편안한 차량을 몰고 30킬로미터 내지 50킬로미터나 떨어진 근교에 자리한, 또는 바닷가에 자리한 각자의 작은 농장이나 주택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들은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고, 더 똑똑하고, 더 자존심 강한 시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도시의 북적이는 거리 대신에 근교의 풀밭과 꽃밭 사이에서 살아갈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11쪽, 4장 자동차 열풍 중에서

 

포드에 의한 자동차의 대량 생산과 보급에, 현대인은 번잡한 도시의 일터를 떠나 여가가 있는 멋진 교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대중교통의 과밀과 도로 정체로 인해 한꺼번에 ‘서로를 인내하는 법’을 배우거나 ‘노상 분노’와 같은 정서 장애를 느끼며 출퇴근을 감내하고 있다. 이처럼 매일의 통과의례이자 때로는 도망치고 싶은 일상의 지옥도, 혹은 ‘버리는 시간’으로 간주되던 우리의 출퇴근이 사실 근대화에 따른 역사적 필요에 의해 탄생하고 성장해온 것이란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는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 히노 에이타로 지음 | 오우아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히노 에이타로 지음 | 오우아

 

 

세계에서 가장 노동 시간이 긴 국가 중 하나인 일본에선 ‘사축(社畜, 회사에서 기르는 가축)’이란 자조적인 단어가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간 일본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해온 것은 ‘돈보다 보람이 중요하다’라는 태도로 일해온 수많은 직장인들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대가로 약속된 것은 월급뿐인데, 우리는 어째서 우리의 사생활과 가족 친구까지 모두 버려가며 일해야 할까.


이 책은 결혼이나 출산, 육아, 취미 등 일보다도 보람 있는 것들이 우리 인생에는 훨씬 많으니 사축에서 벗어나 나만의 기준과 생각으로 회사 생활을 하자는 이야기를 담은 것으로, 놀랍게도 일본에서도 동명의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일본에서 출간될 때는 팜플렛 형태의 얇은 책이었는데, 국내에선 ‘그림왕 양치기’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양경수 작가의 그림을 덧붙여 한국 직장인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었다.


책 내용 자체보다는 직장 생활의 애환을 담아낸 일러스트가 훨씬 더 강렬한 인상과 공감을 자아낸 점이 독특하다. 그 덕에 작가의 일러스트는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과 같은 일러스트 에세이로도 새롭게 묶여 나오는 한편, 편의점용 빵,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오프닝/엔딩 화면에 쓰이는 등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다소 아쉬운 것은 이 책이 제시하는 해결책. 재화를 위해 노동력은 제공해야 하지만 마음가짐만은 ‘나의 주인은 회사가 아니라 나다’라고 생각하자는 것은, 일러스트가 주는 강렬한 인상에 비해 다소 김빠진 듯 느껴지긴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케이시 윅스 지음 | 동녘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케이시 윅스 지음 | 동녘

 

 

바로 앞에서 소개한 책이 ‘불합리한 상황을 개인의 차원에서 바꿔보자’고 얘기하는 것이라면, 이번에 소개할 책은 다소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사회의 기본 개념과 시스템부터 바꾸자고 제안한다. 성경에서부터 자본주의의 창시자 마르크스까지, ‘땀흘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것은 사회적 관습을 넘어 자연 질서의 일부처럼 여겨져왔다. 심지어 근면한 노동을 넘어 일을 즐기기까지 해야 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최근 핀란드에서 기본소득제 실험이 시작되었으며 우리 사회에서도 조건 없는 기본소득과 노동시간 단축이 중요한 의제로 떠오른 바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그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여성학자인 동시에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노동 문제에 천착해 온 저자는 주류 경제학과 정치 이론이 그간 일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은 가정처럼 사적이면서도 개별적 계약에 대한 산물로 이해해온 것과 함께 미국 사회에도 노동 기반 운동이 쇠퇴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이 탈정치화되면서 어느덧 일자리와 직업의 문제로 국한되어버렸고, 이에 대한 좀 더 정치적이고 진지한 논의는 멈춰버리기에 이르렀다.


책은 노동과 젠더, 계급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과 같이 가정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무급노동의 가치를 제고하게 되며 페미니즘이 힘을 얻었고, 이처럼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요구 운동에서 기본소득 보장 요구에 대한 근거를 얻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 요구, 또한 나아가 임금 감축 없는 하루 6시간 근무 요구에 대한 논의까지 진행한다.


누군가는 조건 없이 지급되는 기본 소득과 주 30시간 노동과 같은 주장을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유토피아주의에 불과’하다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끊임없이 일하도록 요구받는 동시에 언제나 불안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에게, 일을 일자리와 직업의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사회와 개인의 삶을 구축하는 근본으로 조망하는 관점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그리고 지금의 노동사회와 일을 고민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안을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겐 이 책이 던지는 이야깃거리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책, 시계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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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조선영
조선영

예스24 도서팀장. 서강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으며, 2년 가량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책에 파묻혀 지내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고 싶어 2001년부터 인터넷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초 바람과는 달리 책에 깔려 지낸다고 하소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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