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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나는 얼마나 미약한가, 그리고 또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놓인 환경의 이해

장근영

2018-01-04

 

[1월의 테마]
생태계



생태계, 최근 이곳저곳에서 마주치는 단어다. 전통적인 의미의 생태계가 주로 자연환경의 보호에 관련된 이야기였다면, 최근에는 이 단어가 다른 분야에서도 일종의 은유로 사용된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IT 분야에서 관련 산업을 엮어주는 ‘생태계’가 중요한 화두였다. 이 두 분야에서 생태계가 중요해진 이유는 그것이 ‘지속가능성’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연환경, 그 속의 생태계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지속가능성 때문이다. 인간 역시 자연 생태계의 고리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이 계속 잘 살려면 지구생태계가 온전해야 한다. IT 산업의 생태계 역시 관련 기술과 산업들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그 존재의의를 만들어내고 지속해서 성장하게 되는 연결망이었다. 하지만 이 생태계와 지속가능성은 많은 오해로 둘러싸인 개념이기도 하다.

 
  • 바다 배경의 도시생태계는 개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지만, 당장 눈앞의 것만 보고 무조건 보존하고 지속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생태계는 지켜줘야 할 대상일까
생태계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약하니까 누군가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생태계는 자체적인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전염병이나 산불 혹은 기후의 변화같이 단기적으로는 생태계를 위협하는 재난도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생태계의 존속 수단이다. 단지 외부의 위협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이전에는 생태계의 지속에 기여하던 속성이 오히려 생태계를 위협하는 비정상적인 경우에는 도움이 필요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조차도 도움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게다가 지속가능성이 늘 바람직한 가치는 아니다. 어떤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 다른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인류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이유도 결국 자신들의 지속과 번영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환경주의자와 개발주의자는 모두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단지 그 지속가능성을 정의하는 시간의 규모가 다를 뿐이다. 더구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주체 중에는 어떻게 보자면 굳이 지속될 필요가 없거나 혹은 이제는 좀 사라져줬으면 하는 것들도 있다. 이 세상에는 좋은 것들뿐만 아니라 나쁜 것들도 자기들의 지속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이나 정치권의 주된 화두인 ‘적폐’도 그렇지 않던가. 그들은 자체적인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모든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며, 각자의 생존을 위해 서로 의존한다. 그러니 하나를 잡아서 그 뿌리를 파 내려가 보면 그와 엮인 다른 주체들이 줄줄이 노출되곤 한다. 그들의 행동은 우리가 보기에는 악행일지 몰라도, 그들이 속한 생태계의 지속과 번영의 관점에서는 당연하고 꼭 필요한 것들이다. 사람만 보고 그 사람을 둘러싼 생태계를 보지 못하는 실수는 우리 자신에게도 저지른다.

 
  • 거리의 사람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둘러싼 더 넓은 생태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사람만 보고 생태계를 보지 못하는 실수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를 키우는 같은 나이의 한국과 영국 어머니의 아침 시간을 비교해 보여준 적이 있다. 거기서 영국 어머니는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서 자기 옷을 골라 입고, 아침을 챙겨 먹고, 이를 닦는 동안 약간씩 훈수만 두면서 지켜보기만 한다. 반면에 한국 어머니는 아이를 직접 깨우고, 양말부터 옷까지 모두 챙겨 입히고, 밥도 떠서 먹여주고, 이까지 닦아주면서 간신히 아이를 등교시킨다. 그 다큐멘터리의 제작진은 이러한 차이가 한국과 영국의 양육 문화 차이 혹은 양쪽 부모의 가치관이나 철학 차이 탓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실제로 이후 인터뷰 영상에서 영국 어머니는 아이의 자립심을 키우는 것을 중시한다고 말하는데, 한국 어머니는 그와 같은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보자면 한국 아이들이 자립심이 없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이유는 부모가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쉽다. 그러니 부모의 사고방식이나 심성을 바꾸어야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있다고 말하게 된다.

 
  • 책 읽는 아이가 있는 사진외국 아이들과 달리 한국의 아이들이 부모에게 의존하고 도움을 받는 것은 교육열이 높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생태계에 속해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결론은 너무도 얄팍하고 편협할 뿐이다. 한국 아이가 스스로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어제 늦게 잤기 때문일 텐데, 그건 아마도 여러 개의 학원을 순례하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학교에 늦지 않아야 하고, 따라서 어머니가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이를 대신해서 옷을 입히고 밥을 먹여가며 등교 준비 시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영국의 아이는 학교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느긋하게 놀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고, 잠도 일찍 잤으니 아침에도 맑은 정신으로 일찍 일어나 스스로 등교준비를 할 수 있다. 한국의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여러 학원에 다니는 것은 어머니의 신념이나 성격과는 무관하다. 단지 그 아이 주변의 다른 아이들이 모두 그렇게 여러 학원을 다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알다시피 고등학교 졸업 후에 맞이할 대학 입학경쟁이 치열해지다 못해 얼마나 먼저 입시 준비를 했느냐의 문제로 변질되면서 고등학교부터 시작해 중학교까지 야금야금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집어삼키다가 마침내 초등학교 1학년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결국 두 어머니의 행동이 달랐던 것은 그 둘의 가치관이나 인성 탓이 아니라 그들이 아이를 키우는 환경, 즉 생태계가 애초에 달랐기 때문이다. 두 어머니는 그저 자신의 생태계에서 최선의 적응 방법을 찾아갔을 뿐이다. 이렇게 다른 생태계를 무시하고 어머니의 태도나 행동만 바꾸려는 시도는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의도와는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생태계에 대해 알면 알수록 깨닫는 것은 우리가 가진 생각과 가치관, 지식과 아이디어 중에서 완전히 무에서 만들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생태계의 산물이며, 우리의 행동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생태계를 지속하거나 변화시키거나 심지어 파괴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니 생태계의 이해는 ‘나’라는 존재의 미약함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 존재의 가치를 더 깊이 깨닫는 열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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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장근영
장근영

(심리학자)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과 일본 리니지 유저의 라이프스타일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 문화심리학과 매체 심리학, 사이버공간의 심리학 연구를 수행했으며, 영화와 만화, 게임 등을 이용한 심리학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팝콘 심리학』 『심리학 오디세이』 『싸이코 짱가의 영화 속 심리학』 『소심한 심리학자와 무심한 고양이』 등을 저술했고, 『시간의 심리학』 『인간, 그 속기 쉬운 동물』 등을 번역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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