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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자존심에서 자존감으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난 진정한 자존감

박재용

2017-12-05

 

[12월의 테마]
자존감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내가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자존심과 스스로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며 그 자체로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감은 엄연히 다르다.
그중 자존심은 개인으로 나타나지만 집단으로도 자주 드러난다. 우리나라 축구팀이 외국 대표팀을 꺾으면, 시민 인터뷰에서 흔히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혹은 전라도 선수가 강원도 선수를 이기면 ‘같은 고향 사람으로서 자긍심이 든다’,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같은 학교 출신으로 자존심이 상한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다’ 등의 표현도 모두 이런 집단적 자존심을 어느 정도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인류라는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은연중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에서 과학으로, 인간중심주의 탈피
이런 집단적 자존심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다. 인간중심주의가 그것이다. 신화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간은 지상의 인간을 위해 하늘에 존재하는 신을 상상한다. 그리고 ‘부족한’ 인간을 위해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여긴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제일 마지막 날에 만들어진다. 흔히 가장 나중에 된 자이니 그리 알고 자중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하지만, 사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에 무대에 오르는 주인공의 역할로 볼 수도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Jastrow / 천동설의 우주관을 표현한 벨로의 그림(1568)아리스토텔레스 ©Jastrow / 천동설의 우주관을 표현한 벨로의 그림(1568)

신화를 헤치고 나온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과학혁명이 있기 전까지 유럽과 이슬람 사회에 확고부동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계를 인간이 사는 지상계와 천상계로 나누었다. 그리고 완벽하고 완전한 천상계는 불완전한 존재인 지상계를 중심으로 원운동을 한다고 선언한다. 완전한 천체와 천구가 뭐가 부족해서 불완전한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단지 인간이 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인간중심주의일 뿐이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존재를 네 등급으로 나눈다. 가장 아래에는 영혼이 없는 무생물이며, 그 위는 식물이다. 이들은 생장할 수 있는 식물의 영혼을 가진다. 그 위로 동물이 있다. 이들은 식물의 영혼과 함께 운동과 감각을 관장하는 동물의 영혼을 가진다. 그 사다리의 정점에는 인간이 있다. 인간은 식물과 동물의 영혼을 가지면서 동시에 이성을 관장하는 인간의 영혼도 가진다. 흔히 ‘생명의 사다리’라고 한다. 중세에는 인간 위에 천사와 신이 보태어졌지만 본질적인 의미는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을 중심에 둔 이런 사고는 근 2,000년을 계속 이어왔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과학이 걸어온 역사는 바로 이 인간의 자존심을 해체하는 일이었다. 생물학은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세포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 곰팡이와 별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구의 생물은 모두 세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더구나 우리 몸의 근육세포는 우리 뇌의 신경세포보다는 오히려 쥐나 개구리의 근육세포와 더 비슷하게 생겼고, 역할도 같다. 물론 인간 뇌의 신경세포도 우리 피부의 표피세포보다는 고양이나 거북의 뇌세포와 더 비슷하다. 우리 인간은 세포의 차원에서 다른 생물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종(Species)일 뿐이다.
우리는 이제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나 고릴라보다 더 진화해서 인간이 된 것이 아니란 사실도 알고 있다. 열대우림에 사는 영장류들은 열대우림이라는 생태계에 맞게 진화하게 되어있고, 열대우림에서 쫓겨난 인간의 선조는 열대의 초원이란 생태계에 맞게 진화했을 뿐이다. 침팬지는 침팬지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진화한 것이다. 범위를 조금 더 넓혀도 마찬가지다. 멍게는 멍게대로 진화했고, 고래는 고래처럼 진화했다. 지금 지구의 모든 생물은 각자 자기대로 진화한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생물과 동등하게 다양한 한 종일 뿐이다. 생물학은 바로 이렇게 인간의 위치를 동물의 ‘위’에서 ‘옆’으로 바꾸었다.

 
  • 지동설을 주장한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Szczebrzeszynski
  •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지동설을 그린 그림
    지동설을 주장한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Szczebrzeszynski /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지동설을 그린 그림

우주를 통해 본 인간
천문학의 경우 이러한 인간중심주의 해체는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신부였지만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행성의 원운동을 완벽히 설명하기 위해서 지구중심설(Geocentrism)을 버리고 태양중심설(Heliocentrism)을 주장했다. 우리식대로 말하자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꾼 것이다. 불완전한 지구를 중심으로 원운동을 하던 우주는 사라지고, 지구는 중심에서 내려와 다른 행성과 함께 태양을 도는 행성의 위치에 도착했다. 게다가 천문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태양마저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숱한 별들이 모두 태양과 비슷하다는 충격적인 결론은, 곧 별마다 태양처럼 행성들이 있으며 우주에는 수천 개의 태양계가 있다는 의미였다. 즉 우주에는 수많은 태양계가 있고, 그 태양계마다 지구와 닮은 행성들 또한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이제 지구는 수천 개의 다른 행성들과 같은 아주 평범한 한 행성이 되었다. 그러더니 너무 멀어서 망원경으로 봐도 구름처럼 보이는 성운들이 사실은 대부분 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은하(Galaxy)라는 걸 밝혀낸다. 태양 또한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고, 태양계가 속해있는 우리 은하 또한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모여 만들어진 은하가 1,000억 개 이상 존재하는 우주의 셀 수 없이 많은 별 중, 아주 평범한 항성인 태양의 그저 세 번째 행성에 불과한 것이 지구라는 것을 안다.

 
  • 우주

이렇듯 과학은 인간이 몸담은 지구가 우주의 특별한 장소가 아니며,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냄으로써 ‘이기적인’ 자존심을 내려놓도록 도와주었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인간임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할 지점이다. 지구상의 어떤 생물도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른 생명과 다른 천체와 비교하여 내가 더 우월하다는 이기적 자존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인정하는 ‘자존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운동선수가 다른 이를 이기는 것에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량에 대해 기쁨을 느끼듯, 예술가가 다른 이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을 기쁨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 그 자체로 기쁨을 느끼듯, 인간의 거짓된 우월성으로 기쁨을 느끼지 않고 우주의 수많은 필멸의 존재 중 하나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그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기쁨을 느끼길 바란다면, 우선 우주와 인간을 과학적으로 바라보자. 그리하면 쓸데없는 자존심은 버리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의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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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재용
박재용

(과학 커뮤니케이터)과학을 공부하고 쓰고 말한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과학문화위원회 회원이다.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멸종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등을 썼다. '인문학을 위한 자연과학 강의' '생명진화의 다섯 가지 테마' '과학사 강의'의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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