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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망각해야 얻을 수 있는 것

일과 놀이 중 어느 쪽이 더 즐거운가.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라는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숙명적으로

임진모

2017-09-14

 

놀이, 망각해야 얻을 수 있는 것

 

일과 놀이 중 어느 쪽이 더 즐거운가.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라는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숙명적으로 놀이하는 인간이다. 기본적으로 지겨울 수밖에 없는 일과 노동도 실은 놀이를 위해 존재한다. “타고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도 노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말을 누구든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제 일 잘해서 돈 많이 버는 것만큼이나 잘 노는 게 중요한 세상이다.

갈수록 이성보다는 감성이, 제도보다는 문화가 중요성을 더해가는 추세에 따라 우리는 현재 ‘대중문화’의 전성시대를 산다. 음악, 영화, 연극, 뮤지컬, 게임과 같은 무수한 대중적 놀이들 가운데 적어도 하나 이상은 가까이 혹은 깊이 관계하고 있다. 중독이라는 위험경고를 받기도 하지만 이제 게임이 대표놀이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산업 규모에 있어서 이미 음악과 영화를 초월해버렸다.

 

버크너&가르시아의 ‘팩맨 피버’

▲ 버크너&가르시아의 ‘팩맨 피버’


음악에까지 미친 게임의 영향


남자 듀엣 ‘버크너 앤 가르시아’의 1982년 히트팝송‘팩맨 피버(Pac-Man Fever)’는 그 무렵 구미의 젊음을 강타한 비디오게임 광풍을 그대로 옮긴 노래다. ‘손가락이 누렇게 뜨고 어깨도 다쳤어/ ...팩맨 피버가 날 미치게 해/ 내 정신을 쏙 빼버려...’ 미모의 연기자 임상아는 1996년에 내놓은 애청곡 ‘뮤지컬’을 통해 음악과 춤쪽으로 그 밀착의 필연을 설파했다. ‘다른 건 필요하지 않아 음악과 춤이 있다면/ 난 이대로 내가 하고픈 대로 날개를 펴는 거야/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내가 돼야만 해/ 이젠 알아 진정 나의 인생은 진한 리듬 그 속에 / ...나 또 다시 삶을 택한다 해도 후회 없어/ 음악과 함께 가는 곳은 어디라도 좋아...’

게임이든 음악이든 그것들이 갖는 영향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트렌드와 시대감각에 뒤쳐졌다는 비판을 받거나, 답답한 윗세대를 가리키는 ‘꼰대’라는 지적을 받는다. 비록 앞서지는(Hip) 못해도 최소한 막힌(Square) 사람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중문화를 지속적으로 접할 필요가 있다. 그건 결국 ‘잘 노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말한다. “지금 뭐가 대세인지, 무엇이 관심사인지 알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영화보기다. 성실하게 영화와 연을 맺지 못한 사람은, 특히 젊은 세대와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이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나가 된 놀이와 노래


노래는 ‘놀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상기한 임상아의 ‘뮤지컬’은 노래와 춤, 즉 가무가 신나는 놀이를 대표함을 일러준다. 우리는 집회와 시위가 말해주듯 모이면 먼저 노래를 하고 술 한 잔 걸치면 노래방을 찾는다. 노래가 없다면 과연 무엇으로 놀 것이며 그 자리의 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페스티벌 무대에 선 록밴드나 래퍼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 같이 놀아요!” “다 같이 놀 준비 됐나요?” 이런 말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 친구네 집 문 앞에서 철없이 “영희야 놀자! 철수야 놀자! 밥 먹고 나하고 놀자!”라고 칭얼대던 것과 매우 닮아 있다. 공연장에 왔으면 업무나 외부 시선 같은 부담을 떨쳐내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냥 놀자는 즐거운 꼬드김이다. 보스니아 출신 소설가 이보 안드리치는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누린 1961년 작품 『드리나 강(江)의 다리』에 이렇게 썼다. ‘망각은 만사를 고쳐주고 노래는 망각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 사람들은 노래 속에서 오직 자기가 사랑하는 것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2.임상아의 ‘뮤지컬’


3.놀자의 ‘점프’


4.테일러 스위프트의 ‘Shake it off’

2.임상아의 ‘뮤지컬’ / 3.놀자의 ‘점프’ / 4.테일러 스위프트의 ‘Shake it off’


아예 팀명이 ‘놀자’인 4인조 힙합 댄스그룹도 있다. ‘놀자’라는 캐치 프레이즈처럼 그들은 지난해 ‘점프’라는 곡으로 빠르게 인지도를 쌓았다.‘너의 찐한 땀방울로 에너지를 보충해/ 볼륨을 높여 심장이 터지게/ 내일이 없는 사람들도/ 매일을 매순간 맴맴 도는 사람들도/ 오늘은 다 같이 놀자고/ 하루를 밤을 새고 이틀은 죽자고.../ 이 밤이 다 가도록 파티/ 선택할 여지없어 올레/ 눈치 보지 말어 미친 듯 흔들어/ 이 밤의 주인공은 너이니까...’

다 같이 미친 듯 춤추자고 청하는 대부분의 댄스음악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하나로 충분하듯 결국 메시지는 하나, 즉 ‘놀자, 놀자, 놀자’로 정리된다. 서구 팝송은 그 유혹과 청이 더 하다. 최고 인기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백인 컨트리가수의 이미지를 벗고 보다 대중적인 컬러로 변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택한 것도 흔들고 노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늦게까지 잠 안 자고, 골은 비었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 내가 데이트를 너무 많이 하고 길게 가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난 계속 찾아다닐 거야/ 멈출 수가 없어/ 계속 나아가는 걸 멈추기가 어려워/ 마치 내 몸 속에 음악이 있는 것과 같아/ 잘 될 거야/ ...플레이어들은 플레이, 플레이, 플레이/ 헤이터(증오자)들은 헤이트, 헤이트, 헤이트/ 난 그냥 흔들어 흔들어 흔들어/ 흔들어 털어낼 거야...’ - ‘쉐이크 잇 오프(Shake it off)’중에서


5.산이의 ‘놀자’ / 6.더 자두의 ‘놀자’ / 7.이너 서클의 ‘Games people play’ / 8.워너원의 ‘에너제틱’

▲ 5.산이의 ‘놀자’ / 6.더 자두의 ‘놀자’ / 7.이너 서클의 ‘Games people play’ / 8.워너원의 ‘에너제틱’


우리에게 ‘대화가 필요해’ ‘으악새’ ‘김밥’과 같은 곡으로 알려진 남녀 혼성듀엣 ‘더 자두’도 ‘놀자’라는 곡이 있다. ‘삼류여고 졸업하고 백수생활 벌써 2년/ 시간은 많고 미모는 없고/ 일류대학 졸업하고 오라는 데 하나 없고/ 돈 한 푼 없고 얼굴은 되고/ ...우우우 놀자 우우우 놀자/ 내친김에 계속 놀아버리자 웃어버리자...’춤추고 노래하면서 뒷일을 걱정한다면 그건 제대로 노는 게 아니다. 이 노래 ‘놀자’도 막바지에 가면 조금 비애감이 돈다. ‘우우우’ 천지인 탓이다. ‘놀자 우우우 놀자/ 지겨워도 놀 수밖에 없잖아 일이 없잖아/ 우우우 놀자 우우우 놀자/ 이러다가 늙어서도 놀까봐 걱정 되잖아/ 청년실업 50만 남의 얘기 아니다...’실업 걱정에 붙잡혀 있고 신세 한탄을 곁들이고 있으니 어찌 ‘놀자 판’을 벌일 수 있겠는가.

삶 전체를 게임에 비유했을 때 그 게임을 즐겁게 놀면서 할 수 있을까. 1968년 싱어송라이터 조 사우스(Joe South)가, 그리고 우리에게는 1994년 ‘이너 서클’이 흥겨운 레게리듬으로 전해준 곡 ‘게임스 피플 플레이(Games people play)’는 애초부터 그 게임이 냉혹한 생존경쟁, 약육강식의 전장임을 일깨우고 있다.‘너와 나, 사람들이 하는 게임 말인데/ 서로 울부짖고 상처주고 그리고 헤어지지/ 성호를 긋고 상대가 나쁘다며 죽기를 바라지/ 아무도 항복하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놀아야 한다. 방법은 상기한 이보 안드리치 같은 선인들이 알려준 망각의 지혜를 동원하는 것. 현재 30-40대 여성들까지 사로잡으며 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돌 ‘워너원’도 ‘에너제틱’이란 곡을 통해 잊어버리는 게 진리라고 강조한다.‘너를 품에 안고 비상해/ 걱정은 버려 지하에/ ...미치겠어, 날 멈출 순 없어/ ...오늘 밤 둘이 아웃 오브 콘트롤 예~/ 멈출 수 없는 이 기분은 마치 프리덤/ 질문은 나중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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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임진모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 겸 방송인. 1986년 대중음악 평론가로 입문한 후 평론, 방송, 라디오, 강연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음악 평론가이자 해설자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 위해 평론가가 되었고, 대중과 가까이 호흡하는 음악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저서로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팝, 경제를 노래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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