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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토리아 : 좋아서 하는 일

박찬일

2017-04-20

좋아서 하는 일

 

트뤼포가 그랬던가. 영화광의 3단계 말이다. '영화를 좋아한다 →비평하기 시작한다 →(에이, 까짓 거) 내가 직접 만든다.' 트뤼포야 영화광들에게 유명한 거장이고 작가다. 아마 그도 그런 단계를 거쳤을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영화를 찍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물론 옛날 한국 영화계에서는 문자 그대로 ‘먹고 살려고’ 메가폰을 든 감독이 많았다. 작가주의? 그런 것은 나중에. 한국영화계에서 손꼽히는 거장이 된 임권택 감독도 한때 ‘뚝딱’ 감독이었다. 예산에 맞춰 얼른 영화를 찍어 납품하다시피 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한 해에 몇 편씩 찍은 적도 있다. 그런 그도 처음엔 영화가 너무도 좋아서, 결국엔 찍게 되었을 것이다. 현재 활동하는 우리나라 영화감독은 거의 트뤼포 스타일이다. 원래 영화기자로 유명했던 정성일 감독(그에게는 여전히 평론가가 더 어울리는 호칭 같지만)은 기자에서 평론가로, 결국 감독이 된 이력이 있다. 그것도 뛰어난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식당은 한때 ‘먹여주고 재워주는’ 직장이었다. 무작정 상경한 지방사람들의 터전이었다. 먹여주고 재워주었으니까. 기술을 가르쳐준다는 빌미로 월급도 안 준 곳도 많았다. 나는 한때 노장 요리사들을 인터뷰했다. 놀랍게도 일고여덟 명의 요리사들 전원이 그 ‘먹여주고 재워주는’ 이유로 요리사를 택했다. 별다른 직업이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가난해서 많이 못 배우고 서울에 연고도 없이 올라온 그들이 선택하기에 최고의 직업이었다. 그때 식당은 방이 많았다. 거기서 잤다. 더구나 연탄을 많이 썼으니까 새벽에 누군가 불을 갈아야 했다. 먹고 재워주는 이유가 거기에도 있었다. 요즘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식당이나 제과점이 많다. 그러나 이유는 다르다. 직원을 구하기 어려워서다. 기숙사라도 있어야 지방에서 온 구직자를 붙들 수 있다. 식당은 이제 인력난에 시달리는 곳이 되었으니까.

 

요리하고 있는 셰프

 

요즘은 앞서 말한 트뤼포 같은 사람들의 시대다. 식당도 그렇다. 더 이상 숙식제공 때문에 그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냥 우동이 좋아서 만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우동집을 낸 양반이 있다. 놀랍게도 먹고살만 한 직업을 가졌고, 우동을 배울 때는 이미 연세도 꽤 들었다. 그는 우동에 반해서 한국과 일본의 우동집을 샅샅이 다녔다. 한국에는 별로 배울 데도 없었다고 한다. 일본은 역시 본토니까 거기서 주요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우동집을 냈다. 트뤼포의 후예다.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 자리에는 나도 있다. 잡지기자였다가 요리에 미쳤다. 엄밀히 말해 스파게티를 배우려고 했다. 딱 세 가지. 크림 까르보나라, 매운 토마토해물 스파게티, 미트소스 스파게티. 이것을 배우려고 이탈리아까지 갔다. 그리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나의 요리 스승인 피에트로 발디 씨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네, 친구. 이탈리아에 그런 스파게티는 없다네.” 나는 절망했다. 사실, 저 위의 스파게티는 한국형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먹지 않는. 그 충격 때문에 오히려 내가 요리사가 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요리 전반을 배우게 되었으니까. 만약 저 세 가지 스파게티를 배울 수 있었다면 나는 얼른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원하는 게 없어서 더 파고들게 되었고, 말하자면 정식 요리사가 되고 식당 밥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트뤼포가 한 가지 빠트린 셈이다. 지속적으로 그 일을 좋아하고 직업으로 삼을 만한 계기가 발생해야 한다.

 

까르보나라, 매운 토마토해물 스파게티, 미트소스 스파게티 사진

▲ “까르보나라, 매운 토마토해물 스파게티, 미트소스 스파게티. 이것을 배우려고 이탈리아까지 갔다.”

 

지금은 거미줄 같은 웹의 시대다. 우리가 멍청히 앉아 있는 이 순간에도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담은 무선 신호가 우리 옆을 스치고 지나다닌다. 그것은 중요한 자금의 정보일 수도 있고, 어떤 연예인의 사진이며, 또한 남몰래 보내는 연애편지일 수도 있다. 그 전파망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공짜 무대이기도 하다. 누구나 글을 써서 올리고 평가받을 수 있다. 제한된 사람에게 지면을 허락하고 원고료를 지급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를 두고 1인 작가시대의 개막이라고 한다. 1인 평론가, 1인 매체, 1인 독설가, 1인 선동가가 있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쓰고 찍고 올린다. 그 평가를 기다린다. 그것만으로 목적을 충족한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다. 원래 자발성이란 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지 않는가. 돈을 주지 않아도 하는 일은 즐겁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덕후’가 만든 백과사전은 전통적인 그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게다가 ‘동시대성’과 ‘실시간’이란 미덕도 있다. 만약 백과사전에서 ‘면스플레인’이라는 표제를 올리기 위해서는 저자에게 내용 취재를 의뢰하고 취재가 시작되어, 집필한 후 새로운 판을 인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웹상의 백과사전은 불과 며칠이면 자발적 집필자들에 의해 항목이 메워진다. 면스플레인이란 평양냉면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평양냉면은 지식이 있어야 먹는 음식이며, 만약 그 불문율(?)을 어기면 냉면계의 이단아가 되어버린다. 냉면 먹는 자세와 정보에 대해 말하는 것이 바로 면스플레인(면 + Explain)이다. 나는 전통적인 돈을 받고 지면에 글을 쓰는 필자다. 나의 뿌리는 ‘먹고살기 위해’ 글을 쓴 시대다. 내가 칼럼을 전통적인 매체에 실으면, 간혹 ‘딴지(자발적인 인터넷 집필자들이 쓰는 용어로, 반대되는 견해를 표명한다는 뜻)’를 거는 이가 있다. 정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더러는 문자 그대로 취향과 견해 차이를 드러낸다. 그들은 자신감 있으며, 훨씬 더 다채로운 정보를 쥐고 있다. 이제 나 같은 얼치기 필자들은 더 힘들게 일해야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을 어떻게 당하랴. 그래도 다행인 건, 나는 요리만큼은 좋아서 한다는 사실!

 

와인잔, 음식, 숟가락 , 포크 일러스트

 

  • 음식
  • 취미
  • 박찬일
  • 파스타
  • 직업
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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