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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우리의 마지막 식사일지라도 우아하게

음식을 대하는 태도와 자존감

박찬일

2017-12-26

 

[12월의 테마]
자존감

혼자 먹는다는 일
대개 자기 연민과 자기애는 이기적인 발로로 치부된다. 연민과 사랑이라는 말이 이토록 매섭게 비하되는 일도 드물 것이다. 혼자 마시는 술은 이런 부정적인 개념의 반주(伴酒)로 자리한다. 알코올은 어떤 경우든 감정의 폭을 넓고 깊게 만드는데, 자기 연민에서도 마찬가지다. 알코올 중독에 이르는 많은 이들이 자기 연민과 자기애가 유독 강한 성격이라는 건 관련 연구에서 이미 밝혀진 일이기도 하다. 반면 같은 술과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과 자존감을 북돋우는 기제로 쓰이는 예도 있다. 나는 식당일을 하므로 그런 광경을 여러 번 관심 있게 보는 편이다.

 
  • 나가사키의 어느 골목길나가사키의 어느 골목길 ©Pekachu

일본에서 겪었던 일이다. 나는 나가사키의 허술한 주택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길은 깨끗했지만 사람의 흔적이 드물었다. 낮은 주택과 아파트들(일본의 아파트는 우리와 달리 상당수가 조립식의 2층짜리 서민 주택을 의미한다)이 있는 동네인데 쇠락한 기운이 뚜렷했다. 동네를 걸어 다니며,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의 도시에도 이런 주택가가 생기리라 예감했다. 고령화 사회는 일본이 먼저 진입했고, 특히 중소도시의 젊은 인구의 이탈과 몰락은 한국에서도 곧 일어날 것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그 동네를 산책하며 몇 가지 의미 있는 시선을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가게라고는 도시락집과 미용실, 이발소가 사실상 전부였다. 밥은 먹어야 하니 일본 특유의 도시락(집에서 밥을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집은 있어야 하고, 남녀 불문 머리 손질은 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수만 명은 살았을, 적어도 지금도 몇천 명은 살고 있을 동네에 가게라고는 딱 세 업종밖에 없다니. 그 흔한 편의점도 없었다. 나는 우울해져서 골목길을 걸었는데, 현실감 없는 가게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초밥집이었다.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영업했을 분위기였다. 할아버지 주방장이 초밥을 쥐고 있었고 그의 아내인 할머니가 홀의 시중을 들었다. 한때는 밀려드는 동네 손님으로 미어터지고, ‘테이크아웃’도 많았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마지막 손님을 받는 심정으로 매일 초밥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늙은 주방장은 신뢰감 이전에 슬픔으로 다가왔다.

 
  • 초밥 / 식사중인 외국인

자기에게 허락된 음식을 대하는 태도
이때 어느 손님이 내 눈에 들었다. 작은 앉은뱅이 탁자가 있었고, 거기에 한 할머니가 혼자 앉아 초밥을 먹고 있었다. 그이가 유달리 눈에 띈 것은 복장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외출복을 입은 듯했다. 오래되었지만, 고급 직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그이는 천천히 초밥을 씹었다. 나이 들어 소화 기능이 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도 잠깐, 저 고상하고 우아한 외식은 쓸쓸하다기보다 자신에게 주는 멋진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이는 평온해 보였고, 어쩌면 남편이나 식구들과 보낸 초밥집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단 한 그릇의 음식을 먹을지라도 잘 갖춰 입고 자신에게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젓가락을 든다는 일. 나는 잠깐 존경스러웠고, 내 앞에 놓인 초밥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이탈리아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몬테풀치아노라는 토스카나의 한 마을. 와인을 공부하러 떠난 길이었다. 돌아오기 위해 기차역으로 오다가 들른 작은 식당. ‘오스테리아’라고 하는, 가정식 음식점이었다. 주인의 안내를 받아 앉아서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한 할머니가 식사 중이었다. 너무도 분명한 색감 때문에 나는 이 일이 일본에서 겪은 것보다 훨씬 전인데도 그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은발의 머리는 컬을 했고, 니트로 짠 붉은 재킷을 입은 할머니는 엄숙하게 포크로 파스타를 먹었다. 나도 혼자였으므로, 그이의 동작을 더 오래 관찰할 수 있었다. 음식은 우리의 몸을 지탱하는 감사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듯, 그이는 천천히 포크로 파스타를 옮겨 입으로 가져갔다. 아, 먹는 일의 존귀함이랄까, 누구도 음식 앞에서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달까.

 
  • 부조리한 운명을 버티는 인간을 그린 소설 『25시』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부조리한 운명을 버티는 인간을 그린 소설 『25시』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삶의 부조리한 진상 앞에서 인간의 모습
내가 어려서 읽은 책은 나를 만들었다. 나는 지독한 운명에 어쩔 수 없이 빠져버리는 인간을 다룬, 부조리한 세상을 그린 작품을 좋아했다. 작가 이문열이 청년기에 자선(自選)작으로 채운 세계 문학선집을 낸 적이 있었는데, 내가 그중에서 제일 먼저 산 책의 주제가 ‘삶의 어두운 진상’이었다. 그 책에 나온 작품은 아니지만 소설 『25시』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늘 나의 어린 시절 독서의 맨 앞에서 떠오른다. 『25시』의 모리츠가 예측할 수 없는 무력한 운명에도 삶을 놓지 않고 버텨내는 장면에서 나도 같이 힘을 보탰다. 모리츠가 굴욕과 엄청난 폭력의 시간에서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의지와 어떻게든 살아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은 자존감을 증명할 수 있다는 평범한 외침이 아니었을까 싶다. 삶의 진상은 비록 어두울지라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이반 데니소비치가 양배추가 들어간 묽은 수프를 배급받으며 최악의 삶을 영위하면서도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았던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먹고, 살아남음으로써 인간은 자존을 선언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 12월
  •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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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시
  • 인간의모습
필자 박찬일
박찬일

글 쓰는 요리사. 어린 시절 어머니 치맛자락 앞에서 콩나물과 마늘을 다듬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몇 인기 있는 식당을 열었다.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이탈리아 요리를 최초로 시도했으며, 세세한 원산지를 표기하는 메뉴 역시 그의 고안이다. 요리하고 쓰는 일이 일과다. 결국 죽기 위해 먹어야 하는 생명의 허망함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먹고 마시며,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다시 쓴다. 저서로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이 있다. 현재 서교동에서 <로칸다 몽로>라는 술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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