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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좋은 삶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

김호연

2022-04-06

개발을 위해 불도저로 숲을 밀어버린 결과, 박쥐의 근거지가 파괴되었고,

그곳을 떠난 박쥐는 공장 사육이 이뤄지는 돼지우리에 분변을 남긴다.

그 분변에 접촉한 돼지를 요리사가 요리하고, 그 요리사는 홍콩에 출장을 간 임원과 악수를 한다.

그 임원은 대륙을 횡단하여 미국으로 돌아오고, 급기야 팬데믹으로... 

 

 

 

팬데믹(pandemic)과 숲의 파괴

프랑스의 심성사가(心性史家)인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ès, 1914-1984)는 〈죽음의 역사〉(이종민 옮김, 동문선, 1998)에서 현대사회에서는 죽음마저도 병원에서 홀로 맞이하는 외로운 것이 되어버렸다고 말한 바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런 죽음의 양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많은 이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죽음도 피해 갈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지만,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의 지적처럼 20세기 이후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개발과 성장은 오히려 인간 삶의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편집자 주: 당대인들의 생각, 감각 등 일상적인 것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학 방법론(출처: 위키백과)

 

 

COVID-19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역주행한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의 영화 〈컨테이젼〉(Contagion, 2011)은 우리에게 닥친 이런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프로메테우스를 꿈꾸며 쉼도 없이 달려온 인류가 바이러스의 등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지를 숙고해야만 하는 현실 말이다. 영화는 홍콩에 출장을 갔던 다국적기업의 한 임원이 공항에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통화 내내 마른 기침을 하고 있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 그녀는 원인도 모른 채 죽고 만다. 뒤이어 그녀의 아들도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이후 홍콩, 런던, 미니애폴리스, 도쿄 등 세계 곳곳에서 그녀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속출하고,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와 WHO(세계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만, 해결은 쉽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회는 공포에 휩싸이며, 야만 역시 문명 속의 현실임을 보여주고 나서야 위기는 가라앉는다. 다행스럽게도 질병 전문가들의 헌신으로 백신 개발이 성공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난 뒤였다.

 

 

영화 〈컨테이젼: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의 한국 포스터(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컨테이젼〉의 한국 포스터(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컨테이젼〉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도 생생했다. 이동과 접촉을 통한 바이러스의 확산,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광기와 폭력, 인포데믹(infodemic)이라 할 수 있는 통제되지 않은 정보 범람과 이를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치료제로 개나리 진액을 홍보한 앨런 크럼위드(주드 로 분)), 바이러스 관련 정보 공개와 대응을 둘러싼 행정 관료와 질병 통제 전문가들의 입장 대립, 실시간으로 전 세계 감염자 수를 국가별로 순위 매기듯 보여주는 장면, CDC 수장이 가족을 챙기는 다분히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역학조사관과 백신 개발자의 헌신 등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화 〈컨테이젼〉의 스틸 컷(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컨테이젼〉의 스틸 컷(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소더버그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바는 마지막 장면에 담겨 있다. 개발을 위해 불도저로 숲을 밀어버린 결과, 박쥐의 근거지가 파괴되었고, 그곳을 떠난 박쥐는 공장 사육이 이뤄지는 돼지우리에 분변을 남긴다. 그 분변에 접촉한 돼지를 요리사가 요리하고, 그 요리사는 홍콩에 출장을 간 임원과 악수를 한다. 그 임원은 대륙을 횡단하여 미국으로 돌아오고, 급기야 팬데믹으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숲의 파괴, 공장 사육, 그리고 도시화와 세계화라는 관계망이 팬데믹의 진원지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지금 우리가 처한 팬데믹의 위기와 공포가 자본주의 체제의 결과물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자본주의 체제로는 팬데믹 위기 못 벗어나

인류의 역사는 질병과의 투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히 감염병은 역사의 물줄기를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돌리기도 했고, 한 문명을 완전한 파국으로 내몰기도 했다. 서양의 천연두, 티푸스, 페스트가 그랬고, 19-20세기 조선의 호열자(虎列刺, 콜레라)와 무오년 독감(스페인 독감)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감염병에 의한 질병의 확산과 사회 위기 그리고 인간의 죽음이 우리 삶을 둘러싼 여러 사회적 조건들, 즉 제도, 정치, 문화 등과 관계를 맺고 이뤄지는 현상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 역사적 사례들이었다.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 미국 시카고대학 역사학과 교수)은 이미 오래전 미시 기생과 거시 기생을 거론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미시 기생이란 병원체와 인간이 맺는 관계로 병원체가 인간을 숙주로 삼으면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고, 거시 기생이란 동물체와 인간 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지배, 피지배 관계를 의미한다. 미시 기생 관계에서 인간과 미생물은 혼란기를 겪으며 생태학적 균형을 이루게 되며, 그 균형 상태에서 한 문명이 싹튼다. 그런데 거시 기생 상태의 변화, 이를테면, 전쟁, 식민지 약탈 등이 있게 되면 안정 상태에 있던 질병과 인간과의 관계가 깨지게 된다. 그리하여 역병이 유행하게 되고, 그것은 다시 거시 기생 관계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윌리엄 H. 맥닐, 허정 옮김, 한울, 2008)) 이는 우리에게 감염병의 출현과 대응에서 단순히 백신 개발과 같은 의학적 대응을 넘어 더 넓은 차원의 해법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발전과 세계화, 그리고 생태파괴를 하나의 연결망 속에서 성찰해보면서, 인간과 바이러스의 상호 적응과 공생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지를 모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 말처럼 코로나 팬데믹은 더 큰 재앙의 전조일 뿐일 수 있으니 말이다.

 

 

윌리엄맥닐의 〈Plagues and Peoples(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윌리엄 H. 맥닐 지음 | 허정 옮김 | 한울〉 책 표지(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윌리엄 맥닐의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책 표지(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앞서 소개한 것처럼 〈컨테이젼〉의 마지막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 자본주의 체제 하의 환경 파괴와 상호 연결된 사안임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코로나 팬데믹과 생태위기(기후변화/지구 온난화)는 자본주의적 개발과 성장이 야기하는 자연 파괴의 결과물이고, 이는 우리가 의학적 대응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내재하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닥친 불안과 공포 그리고 위기가 영원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 기존의 체제를 성찰하면서 새 질서를 창조해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코로나 팬데믹과 생태위기는 인류 전체가 함께 마주한 대재난(great disaster)이다. 따라서 이는 세계적인 차원의 거버넌스를 통해 해결해야만 하는 사안이다. 물론 현실은 간단치 않다. 성장은 모든 국가에서 여전한 화두이고, 팬데믹이 호출한 인종/민족주의의 발흥은 전 지구적 차원의 협력과 연대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 즉 자본주의적 성장과 인종/민족주의는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왔다. 에릭 윌리엄스(Eric Williams, 트리니다드토바고 공화국의 초대 총리이자 사회학자)의 〈자본주의와 노예제도〉(김성균 옮김, 우물이있는집, 2014)와 스벤 베커트(Sven Beckert, 하버드대 교수)의 〈면화의 제국〉(김지혜 옮김, 휴머니스트, 2018)은 근대 이후 서구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식민지 착취와 플랜테이션(plantation) 노예제에서 얻는 수익에 기댄 것임을 알려준 바 있다.

 

달리 말해,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의 저변에는 ‘서구-근대-인종/민족주의-식민지 약탈-자본주의-지구화-생태위기’가 착종된 구조 속에 내재되어 있던 모순이 현재적으로 폭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스웨덴의 환경사상가이자 생태학자인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im, 스웨덴 룬드대 교수)이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우석영·장석준 옮김, 마농지, 2021)에서 팬데믹과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을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발전에 기인한 생태계 파괴에서 찾고, 자연을 폭력적으로 수탈하는 무제한적인 제국주의를 끝장내야만 오래된 비상사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역설한 까닭이다.

 

 

왼쪽부터 차례로 〈자본주의와 노예제도〉, 〈면화의 제국:자본주의의 새로운 역사 “놀랄 만큼 웅대하고 유익하고 도발적이다!”〉,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Corona, Climate, Chronic Emergency):21세기 생태사회주의론〉의 책 표지(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왼쪽부터 차례로 〈자본주의와 노예제도〉, 〈면화의 제국〉,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의 책 표지(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지금 성장주의, 물신주의로는 파국은 필연

사이토 고헤이(Saito Kohei, 오사카시립대 대학원 경제학과 부교수)는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에서 인류가 환경 위기를 넘어서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로 탈성장 코뮤니즘(communism)을 제안한다. 사이토는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는 알리바이 공작이나 다름없으며 눈앞의 위기를 잠깐 가려주는 효과 정도만을 가져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장은 오히려 결핍을 가져올 뿐이고, 풍요는 탈성장, 즉 지구 한계에 주의하면서 경제 격차 해소, 사회보장 확충, 여가 증대 등을 중시하는 계획을 실현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생산 변혁이나 커먼즈(공유재) 기반 경제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곤 3.5%의 사람들이 저항하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단다.

 

 

화폐경제

 

 

안젤름 야페(Anselm Jappe, 이탈리아 국립 미술원 교수)는 〈파국이 온다: 낭떠러지에 선 자본주의〉(강수돌 옮김, 천년의상상, 2021)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생과 공존의 삶을 유지하려면 이미 길들여진 물신·소비·시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페는 새 국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 특별히 상품(교환) 가치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즉 가치 증식은 자본 고유의 특성이기 때문에 가치 상쇄를 걱정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녹색성장이라는 말은 헛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며 그럴듯한 슬로건을 내세우거나 정책 담당자를 바꾸는 방식만으로는 자본주의 체제가 야기한 총체적 위기를 넘어설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모든 사안을 자본주의적 성장이나 경제 논리로 환원하여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는 한, 파국은 필연이라는 것이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책 표지(좌)와 〈파국이 온다(The Writing on the Wall):낭떠러지 끝에 선 자본주의 | 안젤름 야페 지음 | 강수돌 옮김〉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책 표지(좌)와 〈파국이 온다〉 책 표지(우)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더 나은’보다 ‘다른’을 상상해야 할 때

조르주 캉길렘(G. Canguilhem, 프랑스의 철학자)은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여인석 옮김, 그린비, 2018)에서 비정상(anormal)은 비-정상(a-normal)이므로 정상의 정의가 이루어진 다음에 오는 것이고, 비정상적 상태는 관계적 상황에서 발현되며, 비정상의 정상화는 새로운 규범이 어떤 가치를 포함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즉 우리가 새 질서를 말하려면, 그전에 우리의 비정상적인 상태들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담보하고 있는 구조적인 현실과 기존 체제 자체에 대한 성찰과 관련이 있다.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책 표지(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책 표지(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우리는 성장과 진보에 대한 환상과 욕망을 가차 없이 내 던질 수 있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더 나은’ 또는 ‘더 잘’이 아니라 ‘좋은’이나 ‘다른’을 지향하는 자세와 고민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어떤 체제이든, 기존의 한계와 모순은 계속 노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막대를 구부리기는 어렵지만, (설사 패배하더라도), 이는 멈출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현실을 성찰하면서 다 함께 상상력의 나래를 더 적극적으로 펼쳐보자. 체제와 질서를 바꾸어가야만 한다. 모두의 좋은 삶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본다.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영화와 드라마(웹툰, 만화 등 포함)는 내 일도 아닌데 마치 내 일처럼 함께 웃고 울고 한숨쉬고 기쁘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가진 대중문화콘텐츠이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대리만족을 통해 잠시 재밌고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도록 하는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평소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영화(드라마) 속에 숨겨져 있어 미처 눈치채기 힘들었던 세상과 인생에 관한 질문, 이들을 낳은 시대적 상황,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을 해당 작품을 흥미롭게 살펴본 철학자들을 통해 알아보자.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모두를 위한 좋은 삶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 지난 글: [철학자,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시간과 기억에 위태롭게 매달린 우리의 자아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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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한양대 교수 사진
김호연

한양대 교수
한양대 교수. 인문대학 미래인문학융합학부에 재직하며, 고전읽기융합전공 주임교수를 겸하고 있다. 화학, 서양사, 과학사를 공부했고, 우생학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인문학과 과학 사이에서 융합 연구와 관계와 소통을 화두로 모두의 좋은 삶을 지향하는 강연과 사회 활동을 하며 살고 있다. 그동안 쓰고 옮긴 글로는 『유전의 정치학, 우생학』, 『인문학 아이들의 꿈집을 만들다』(공저), 『현대생물학의 사회적 의미』(공역), 「우생학, 국가, 그리고 생명정치의 여러 형태들, 1865-1948」, 「미국에서의 사회다윈주의와 우생학」, 「역사 리텔링과 상흔(trauma)의 치유」, 「인문학의 복지적 실천을 위한 시론적 연구』, 「인문학 교육의 역할과 효용성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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