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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 사랑의 기술

- 감정의 자서전 -

손택수

2022-12-23

소설가 존 쿳시는 『로빈슨 크루소』를 예로 들었습니다. 난파되어 해변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절망을 작가는 어떤 과장된 표현도 없이 정치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 비결은 의미작용을 멈춘 채 세세한 사항들을 초점화한 것이었습니다. 동료 선원들을 찾아 주변을 살피던 로빈슨 크루소는 말합니다. ‘나는......



말하는 그림

 

 

“저는 작고 아마 아주 불필요한 것이겠으나 걱정을 하게 됩니다. 무엇인가하면, 그 곤충 자체를 그리려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말기를, 제발, 그렇게는 안 됩니다! 그 곤충 자체는 묘사될 수 없습니다. (중략) 저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선택하겠습니다. 잠긴 방문 앞에 부모와 지배인이 있는, 또는 더 좋게는 불 켜진 방에 부모와 누이가 있고, 한편 아주 어두운 옆방으로 문이 열려 있는 장면” 


- 카프카, 「변신」 -



카프카가 『변신』의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삽화가가 소설을 곤충기로 오독한 나머지 표지에 실제로 곤충 자체를 그릴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떨치지 못하고 직접적 제시를 회피해주길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묘사될 수 없는 곤충을 묘사하는 방식으로서 ‘잠긴 방문 앞에 부모와 지배인이 있거나 불 켜진 방에 부모와 누이가 있고 어두운 옆방으로 문이 열려 있는’ 간접적 장면을 제시합니다. 독자들의 즉각적인 이해를 지연시키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선 『변신』의 모티브에 대한 사유를 보다 활성화시키고자 한 전략입니다.


카프카의 방식을 동양미학에선 ‘입상진의(立象盡意)’라고 하였습니다. 형상을 세워 의미를 전달한다는 뜻입니다. ‘사의전신(寫意傳神)’이라고도 했는데 경물을 묘사하여 묘사할 수 없는 신성성을 전달한다는 뜻입니다. 예술 애호가였던 송나라 휘종은 ‘입상진의’와 ‘사의전신’을 설파하기 위해 화공들에게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 나네’라는 화제를 내어놓고선 그림으로 향기를 표현해보라는 짓궂은 주문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화공들이 꽃 밟는 말발굽을 그렸겠지요? 그런다고 그림에서 향기가 날 리 만무했습니다. 개중에 유독 한 화공이 화면 끄트머리에 말발굽을 뒤쫓는 나비를 그렸다고 합니다. 나비의 상을 통해 향기의 의미를 전달한 것입니다. 그날의 장원은 나비를 그린 화공이었습니다.


연암 박지원도 글쓰기의 중심 방법론으로 바로 ‘입상진의’와 ‘사의전신’을 들었습니다. 「능양시집서」에서 연암은 ‘미인을 보면 시를 알 수 있다. 그녀가 고개를 숙임은 부끄러운 것이요, 턱을 괸 것은 한스러움을 보여준다. 기다림이 있을 때는 난간 아래 서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바라는 바가 있을 때엔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묘사의 중요성을 설파하였습니다. 묘사는 연암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인간이 현상에 부여한 의미가 아니라, 현상이 인간에게 건네오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입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좋은 시에는 묘사한 그림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시모니데스는 그래서 “시는 말하는 그림(pictura loquens)이고 그림은 말 없는 시(poemasilens)”라고 했습니다. 동양에서는 시를 ‘소리있는 그림(有聲之畵, 유성지화)’, 그림은 ‘소리 없는 시(無聲之詩, 무성지시)’로 갈무리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묘사의 중요성을 모른다면 그것은 마치 화가가 데생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과 같겠습니다. ‘시는 상상력에 의해 그려진 언어의 그림’ 이라거나 ‘시인은 설명하지 않고 대상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아취볼드 메클리시는 「작시법」이란 시에서 “슬픔의 모든 사연에는/ 빈 문간과 단풍나무 잎사귀를” 주고 “연애에는/ 기울어진 풀잎과 바다 위 두 개의 불빛을” 보여달라고 하였습니다. 빈 문간과 단풍나무 잎사귀는 왠지 모를 적막감을, 무엇인가를 향해 기웃한 풀잎과 서로를 다정하게 지켜보는 바다 위의 불빛은 그 자체로 다감한 그리움의 정서를 불러일으킵니다. 슬픔과 연애에 대한 구구한 설명과 넋두리보다는 선명하게 묘사를 할 때 실감이 환기되고 아울러 독자의 감응력 또한 달라집니다.


사랑의 기술 

냉이 


냉이를 뽑아서 소리 나게 했다. 

조그만 하트 모양을 구부려서 귀 곁에서 흔들었다. 

잘랑잘랑 조그만 소리가 났다. 

할머니 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비가 오고 있는 것 같은 소리도 났다. 

쌀을 씻는 것 같은 소리도 났다. 

여러 가지 소리가 된다. 


- 일본 초등학생의 시 - 


허리를 숙이거나 무릎을 구부리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작은 냉이에 멈춘 아이의 묘사력이 경이롭지요? 아이는 냉이의 열매를 귀고리처럼 걸고 흔들어봅니다. 명색이 시인이라면서 냉잇국이나 먹을 줄 알았던 제겐 냉이의 열매가 하트 모양이이라는 시각적 발견 그 자체만으로도 뜨끔한 데가 있는데 시각을 청각으로 옮겨가는 순간 저로선 시업을 중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놀라운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잘랑잘랑한 조그만 소리’는 ‘할머니 집 문이 열리는 소리’로, 그리고 ‘빗소리와 쌀 씻는 소리’로 변주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소리’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이는 마치 연주를 하듯 상상의 물길을 끝없이 이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 대상에 대한 집중적 몰입의 기술인 묘사야말로 상상력과 사랑의 기술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냉이를 자상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아이는 저 같은 고리타분한 시인을 보기 좋게 무릎 꿇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선을 잃지 않기 위해서 문학이 있는 것입니다.


“문학과 삶의 차이는 삶이 두루뭉술하게 세부사항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우리를 그 세부사항에 주목하도록 거의 이끌지 않는 반면, 문학은 우리에게 세부사항을 알아차리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나에게 키스하기 직전 당신 입술을 닦으시는 모습, 오래된 가죽 재킷에 고기 조각의 지방 줄무늬 같은 흰줄기가 가있는 모양, 갓 내린 눈이 발밑에서 뽀드득거리는 느낌, 아기의 팔이 너무도 통통해서 끈으로 묶어놓은 소시지 같은 것 등을 알아차리는 법을 문학은 가르쳐준다.” 


 - 제임스 우드, 설준규 설연지 옮김,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창비, 2011 -


습관적으로 명멸하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 삶의 자잘한 진면목들이나 무심히 스쳐 지나온 풍경들이 드러날 때 독자들은 거기서 소스라치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익숙한 것이 낯설게 드러나면 감각의 더깨가 벗겨지면서 새뜻한 시선을 갖게 됩니다. 키스를 하시기 전 입술을 닦는 어머니의 모습은 평소에는 잘 눈에 띄질 않습니다. 걸쳐 입기에 바쁜 가죽 재킷의 흰줄기나 눈길을 밟을 때의 뽁뽁이를 터뜨리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아기의 통통한 팔을 끈으로 야무지게 묶어놓은 소시지와 비유해줄 때 묘사는 지각의 힘이기도 하면서 ‘알아차림’의 기술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을 통해 삶의 세부사항을 좀 더 잘 읽는 독자는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스통 바슐라르는 “성실하게 살아진 세미화는 나를 주위의 세계로부터 떼어내고, 내가 그 주위 세계의 해체작용에 저항하는 것을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 책 표지 (출처: 알라딘)

소설 <로빈슨 크루소> 책 표지 (출처: 알라딘)



그렇다면 묘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소설가 존 쿳시는 『로빈슨 크루소』를 예로 들었습니다. 난파되어 해변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절망을 작가는 어떤 과장된 표현도 없이 정치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 비결은 의미작용을 멈춘 채 세세한 사항들을 초점화한 것이었습니다. 동료 선원들을 찾아 주변을 살피던 로빈슨 크루소는 말합니다. ‘나는 그 뒤로 그들이나 그들의 흔적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모자 세 개, 챙 없는 모자 하나, 제짝 아닌 신발 두 개 말고는’. 여기서 ‘제짝 아닌 신발 두 개’는 제짝이 아님으로 해서 단순한 신발이기를 멈추고, 거품 이는 바다가 익사하는 자들의 발에서 뜯어내 물가로 퉁겨 올린 죽음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소설사를 살펴볼 때 다니엘 디포우 이전에는 없던 방식이었죠. 존 쿳시가 주목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묘상의 방식은 바로 지배적 인상을 중심축으로 특징적 세목들을 선택하면서 나머지 대상의 지리한 나열을 피하는 데 있습니다. 지나친 세부묘사는 오히려 장애가 되기 쉽고, 인식의 뒷받침 없이 무분별하게 선택된 세목은 따분해지기 좋습니다.


대방동 구불구불 옛 골목길 문화이발관이 아직 거기 있네 

흰 수건을 탁탁 빨아 새하얗게 걸어놓은 집 

아침이면 물 뿌린 거기로 제일 먼저 따스한 햇살이 모이고 

저녁이면 금성라디오가 잔잔히 흘러 나오던 곳 

동네 처녀들 알전구 환한 불빛을 피해 숨어 다녔지 

공군회관에선 한때 춤으로 날렸다나 


얽은 얼굴이지만 백구두에 씩씩한 맘보바지, 바지런한 손 

말할 때마다 거울 속에서 쫑긋쫑긋 웃는 선량한 귀 

밤꽃 향기 아래 굵은 팔뚝이 자랑이던 우리들의 영웅 

그 짙은 포마드 향기는 다 어디로 갔나 

이제는 하얀 중늙은이가 되어 

옛 철봉대 아래 그윽이 웃고 있네 문화이발관 


- 이시영, 「문화이발관」 -


퇴락한 이발소에서 은성 했던 추억들을 불러오는 솜씨가 이발사의 가위질 소리처럼 정겨운 시입니다. 솥 속에서 김이 나는 흰 수건을 집어 올려 걸어놓을 때 나는 소리, '탁탁'은 옛 골목길의 희미한 기억을 재빨리 새하얀 추억의 이미지로 옮겨놓습니다. ‘아침이면 물 뿌린 거기로 제일 먼저 따스한 햇살이 모이고/ 저녁이면 금성 라디오가 잔잔히 흘러나오던 곳’은 얼마나 적실한 묘사입니까. 소도구로 선택된 공군회관과 백구두 그리고 맘보바지는 문화이발관을 축으로 지난 연대 골목의 풍경을 돋을새김 하고, ‘거울 속에서 쫑긋쫑긋 웃는 귀와 굵은 팔뚝은’ 한 인물의 빛나는 시절을 눈앞처럼 보여줍니다. 동네 처녀들이 피해다니던 그 특별한 금녀의 구역에는 춤꾼으로 날린 우리들의 영웅이 있고, 라디오 소리에 주파수를 맞추듯 모여든 골목 사람들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제는 다 잊혀버린 이야기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 삶은 그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의 따듯한 정조에 휘감깁니다. 한때는 씩씩했던 맘보바지, 이제는 하얀 중늙은이가 되어버린 문화이발관은 그래서 쓸쓸하지 않습니다. 어디 한 구절 뺄 데가 없는 묘사력에 힘입어 한 권의 빼어난 골목의 자서전이 집필되었습니다. 정밀하게 선택된 세목들의 긴밀한 결합을 주목해야겠습니다.


 

백석 시의 비밀



서술하면 이야기가 나오고, 묘사하면 이미지가 그려집니다. 서술은 시간의 흐름이 중심인데 묘사는 시간에 브레이크 역할을 해서 스치는 장면을 붙들어두고자 합니다. 그래서 삶의 과정과 조건은 서술되고, 대상과 대상의 특질은 묘사된다고 말합니다. “서술시는 삶의 과정과 삶의 조건을 다루는 반면 묘사시는 감각적 대상과 그 특질을 다룬다”(『시론』, 김준오, 삼지원, 1996)고 하는 것은 서술성과 묘사성의 차이를 부러 도드라지게 한 설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창작 현장에선 두루 혼용되어 쓰일 때 좋은 시편들이 나온다고 보면 됩니다.


백석은 이에 대한 체질적인 이해를 갖고 있었던 시인이 아닌가 합니다. 가령 대표작 「흰 바람벽이 있어」의 전반부는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와 같이 마치 ‘흰바람벽’을 영화 스크린처럼 펼쳐 보여줍니다. 흰 무명셔츠가 바람벽에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워지면서 쓸쓸한 가운데도 차분하게 생을 응시하는 성찰의 힘이 되어주고 그로 인해 후반부의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라는 독백이 스크린의 자막처럼 흘러가고 있습니다. 만약 전반부의 묘사 없이 후반부의 독백 진술로만 이루어졌다면 이 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매우 감상적이거나 억지스러운 시로 추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백석은 초기의 묘사력을 토대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같은 후기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낳게 됩니다.



 


[감정의 자서전] 묘사, 사랑의 기술

- 지난 글: [감정의 자서전] 슬프되 감상에 흐르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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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
담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릴 때 꿈은 농부였다. 별(辰)과 노래(曲)가 하나가 된 농(農) 자를 업으로 삼고 싶었는데 꿈이 좌절되면서 그만 시를 쓰게 되었다. 유년시절의 실향과 실패와 숱한 실연이 시를 쓰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은 책으로 시집 『목련전차』,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청소년시집 『나의 첫소년』, 동시집 『한눈 파는 아이』 등이 있다. 제3회 조태일문학상, 제13회 노작문학상, 제22회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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