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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힘든가요 (feat. 에리히 프롬)

- MZ세대와 함께하는 철학 카페 -

편상범

2022-11-08

사랑은 하나됨이라는 이론은 사랑이 해체될 때 우리가 왜 그렇게 힘든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너와 내가 함께 사랑을 통해 형성한 ‘우리’라는 존재가 해체된다는 것은 나의 일부가 해체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해체는 나의 일부가 찢겨나가는 고통을 줍니다.

나의 일부가 허물어집니다.

 

 

 

Q. 사랑 없이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지요, 아니면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사랑하는 방법이 있는지요.

3달 전, 2년 넘게 사귄 여친과 헤어지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다시는 연애니 사랑이니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외로워서 힘들어요. 다시 누군가와 사귀고 싶지만 두려운 마음도 큽니다. 사랑이 왜 이렇게 힘들까요. 사랑 없이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지요, 아니면 상처받지 않고 행복하게 사랑하는 방법이 있는지요. 도대체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요.

 

 

이별

 

 

 

A. 사랑 때문에 힘드시군요, 축하드립니다.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만일 당신이 상품을 거래하듯이, 사랑하다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그 자리를 채우는 식의 사랑을 했다면 그렇게 힘들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당신은 그런 거래가 아닌, 진정한 사랑을 했기에 힘이 들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사랑을 축하하는 겁니다. 사랑은 그런 고통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한참 무르익어 갈 때는 삶이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당신이 이별의 아픔을 겪었듯이 사랑이 해체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갈등이 지속될 때 우리는 인생이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차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마 크라이슬러라는 음악가도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이라는 두 곡을 한 쌍으로 묶었나 봅니다. 사랑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고통 없이 즐거움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만, 사랑만큼 우리를 천국과 지옥으로 올렸다 떨어뜨렸다 하는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사랑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없냐고 호소하는 데 저도 크게 공감합니다. 

 

 

연애

 

 

하지만 다른 모든 게 채워졌어도 사랑이 없다면 그런 삶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물론 사랑이라는 것이 당신이 고민하는 이성 간의 사랑만을 뜻하지는 않지요. 그래서 이성과의 – 동성인 경우도 있지요 – 성적인 사랑이 아닌, 인류에 대한 사랑, 생명과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숭고한 사랑이 평범한 우리들의 성적인 사랑을 하찮거나 극복해야 할 무엇으로 간주해야 할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고민하는 사랑은 – 연애라고 부를 수 있겠지요 – 우리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는, 특히 젊은 시절 우리를 가장 기쁘고, 슬프고, 외롭게 만듭니다.

 

이제 당신의 고민에 집중해봅시다. 당신이 현재 가장 바라는 것은 사랑을 – 연애를 – 하되, 갈등이나 이별의 고통 없이 행복한 연애를 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그러나 철학에서 그런 기술이나 조언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사랑의 기술』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책은 연애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이 부재한 이 시대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사랑을 복원하기 위한 삶의 태도를 성찰한, 사랑에 관한 훌륭한 고전입니다.) 사랑에 관한 철학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과연 사랑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사랑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지요.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은 어떤 특성을 갖는지 함께 검토해봅시다.

 

 

사랑은 하나됨(union)입니다

사랑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대답 중 하나는, 사랑은 하나의 새로운 결합을 만드는 것, 즉 너와 내가 아닌 하나의 ‘우리’를 형성하는 - 또는 그러한 형성을 욕구하는 –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이때의 ‘우리’는 단지 너와 나를 함께 부르는 인칭대명사가 아니라, 너와 내가 사랑을 통해 만든 특별한 정체성을 지닌 새로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 나의 이익과 너의 이익이라는 구별은 사라지며 이익과 배려를 함께 공유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 공동체는 나의 정체성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됩니다. 사랑에 관한 이런 견해를 ‘하나됨(union)의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사랑을 통해 두 사람이 하나됨을 실감할 수 있는 가장 흔한 경우는 아마 부부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도 사랑을 통한 하나됨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일체감은 우리에게 많은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사랑은 하나됨이라는 이론은 사랑이 해체될 때 우리가 왜 그렇게 힘든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너와 내가 함께 사랑을 통해 형성한 ‘우리’라는 존재가 해체된다는 것은 나의 일부가 해체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해체는 나의 일부가 찢겨나가는 고통을 줍니다. 나의 일부가 허물어집니다. 다른 관계와 달리 사랑의 관계가 쉽게 해체되기 어렵고, 해체될 때 심한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요.

 

 

나는 나로 살고 싶어요

그런데 사랑을 하나됨으로 보는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하나의 온전한 독립적인 인격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함축합니다. 그런데 하나됨의 이론은 사랑의 이런 측면을 무시합니다. 사랑을 통한 하나됨이 강조될수록 나와 너의 독립적인 주체성은 훼손될 수 있지요. 그래서 사랑이 진행될수록, 하나됨이 긴밀할수록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됨과 각자의 독립성이 충돌하면서 갈등이 생깁니다.

 

 

균형

 

 

사랑은 하나됨이라는 견해는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유대와 결속을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성숙한 사랑의 모습을 잘 지적하고 있지요. 하나됨과 독립성 모두를 균형 있게 잘 유지해야 하니,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이 원하는, 행복하게 사랑하는 방법이란 아마도 이 균형을 잘 유지하는 방법일 겁니다. 이 균형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따로 또 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당신이 겪는 사랑의 고통이 바로 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따로 또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학습의 고통입니다. 성숙한 사랑을 위한 진통의 과정입니다.

 

 

사랑스러우니 사랑하지요

이제 사랑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봅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나요? 우리는 아무하고나 사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져야 상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묻지요. “너 왜 그 사람을 사랑하니?”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으니?”라며 사랑의 이유를 묻습니다. 다양한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묶어 말하면 상대에게 사랑스러운 무엇을, 사랑할만한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바로 상대의 그런 가치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면, 상대방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부분을 잘 유지하기 위해 애씁니다. 미모로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쓸 수밖에 없습니다. 능력으로 사랑받는 사람은 능력을 소중히 하겠지요. 그런 소중한 부분들이 사라지면 사랑도 함께 사라질 터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지 않습니까? 사랑은 상대의 가치에 대한 반응이라는 생각은 사랑의 시작을 잘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진정한 사랑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내가 상대의 특정한 요소에 이끌려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그 요소를 사랑하는 것일까요?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사랑합니까, 아니면 나의 능력을 사랑합니까?” 아마 당신의 능력이라고 답하는 사람은 즉시 사랑을 잃을 겁니다. 한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긍정적인 가치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부정적인 모습까지도 안타깝게 여겨지고 포용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게 되지요.

 

 

사랑해야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우니 사랑한다는, 사랑은 상대의 가치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라는 생각과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사랑을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니 먼저 사랑하라는 것이지요. 이런 주장을 매우 강하게 강조하는 게 기독교입니다.(여기서 기독교는 천주교 개신교 구별 없이 예수를 따르는 종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도둑놈도 사기꾼도 자신들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합니다. 예수가 말하는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미워하고 때려도 시원찮은 원수를 도대체 어떻게 사랑하라는 것일까요.

 

 

모두를 사랑하는 사랑

 

 

 

 

 

나의 만족을 위해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그런 사랑에서는 내가 목적이고 상대는 수단이 되는 게 아닐까요? 상대의 가치나 장점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취하여 나의 행복을 도모하는 일이 아닐까요? 내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오히려 당신을 위해 내가 헌신하겠다는, 당신이 나의 삶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의 가치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상대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챙겨주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밥을 주고, 목마르면 물을 주고, 병들면 보살펴주고, 감옥에 가면 찾아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것이 곧 신을 섬기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마태복음 25장)’ 그리하여 나는 가치를, 사랑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발명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해서 꼭 기독교에서의 사랑이라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필요한 사람에게 그 필요를 채워주려는, 타인의 간절함에 응답하려는 사랑의 마음이 있습니다. <사랑의 발명>이라는 이영광 시인의 시를 소개해드리지요.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 이영광,  『나무는 간다』 중 「사랑의 발명」 전문 -

 

 

절망에 빠진 친구를 위해, 살다가 살아보다가 도저히 안 되면 죽겠다는 친구를 위해, 우리가 ‘발명’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나에게 좋은 무엇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해 내가 ‘발명’하는 것이지요.

 

 

사랑은 재즈를 닮았어요

‘사랑을 창조하라!’, ‘사랑의 발명!’. 제가 너무 거창한 이야기를 했나요?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사랑에 담겨 있는 모습입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당신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합니다. 사랑스러워서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지요. 당신은 상대를 위해 그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보살피려 애씁니다. 상대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창조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가치에 대한 반응이며 동시에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사랑하는 것은 재즈 연주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재즈 음악가들이 함께 즉석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보세요. 그들은 상대의 연주에 집중하면서 그것에 적절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연주하지요. 너의 음악에 반응하면서 동시에 나의 음악을 창조하는 모습은 사랑을 닮았습니다. 서로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고 반응하면서 동시에 상대를 위해 가치를 창조하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은 마치 재즈를 연주하고 싶은 초보 음악가가 어떻게 하면 재즈를 잘 연주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훌륭한 재즈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연주하고 다른 좋은 연주를 많이 듣는 것이 기본이 아닐까요?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목마른 당신을 위한 인생 비타민🍊


책

왼쪽부터 『사랑의 기술』, 『사랑의 발명』, 『사랑의 생애』  (이미지 출처: 알라딘)



①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문예출판사, 2019

『사랑의 기술』 이라는 에리히 프롬의 책은 연애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이 부재한 이 시대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사랑을 복원하기 위한 삶의 태도를 성찰한, 사랑에 관한 훌륭한 고전입니다.


② 『사랑의 발명』, 이영광 지음, 창비, 2013년

 

③ 『사랑의 생애』, 이승우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7년

사랑이라는 사건이 어떻게 생기고 끝나는지를 매우 독특한 관점에서 묘사한 작품입니다. 작가 이승우의 작품에는 깊은 철학적 통찰이 담겨 있지요.

 

 

 

 

[MZ세대와 함께하는 철학 카페] 사랑이 뭐길래 이렇게 힘든가요 (feat. 에리히 프롬)

- 지난 글: [MZ세대와 함께하는 철학 카페]  비교지옥에서 빠져 나오려면 (feat. 하이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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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상범
편상범

철학박사, 고려대 철학과 강사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실천적 인식의 문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윤리학』, 『서양이 동양으로 걸어오다』가 있고 논문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 이론」,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등이 있다. 고려대, 강원대, 성신여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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