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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세상을 건너는 법

-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

황시운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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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47초 읽기 naver clova Dubbing

그들은 모두 ‘남들만큼만’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지만 아무도 그 소망을 이루지는 못한다.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 속에 갇혀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래봐야 별 소용없어 보이는 사람들, 

삶에 서툴고 좌절을 거듭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삶을 끝낼 수도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필 내 인생의 가장 빛나던 봄밤에

십 년 전 봄,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화관에서 두 번째 장편을 쓰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문학상 수상과 기다리던 첫 책의 출간으로 다소 붕 떠 있었다. 산책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도, 심지어 글을 쓰다가도 갑자기 큭큭 웃음이 터질 정도였다. 그날 점심도 문화관 식당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공연히 벌쭉거리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집필실에 입주해 있는 선배, 동료 작가들에게 첫 책에 사인을 해 건네며 분에 넘치는 축하와 격려의 말들을 들은 덕이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누군가 오늘 밤 아주 크고 밝은 보름달이 뜰 거라고 말했다. 즉석에서 우리는 달구경 삼아 숲길을 산책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저녁 식사 후 각자 시간을 보내다 날이 어두워진 후 모여서 길을 나섰다.

 

 

봄날 저녁 달빛

 

 

거짓말처럼 빛나던 봄밤이었다. 달빛이 하얗게 부서지는 숲길을 좋은 사람들과 산책하는 일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즐거움이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흥에 겨운 누군가의 선창으로 다 함께 노래를 부를 땐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할 정도였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날 중 가장 빛나는 날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삶의 길목에 숨죽인 채 도사리고 있던 나쁜 것들은 바로 그런 순간에 일상을 덮쳐오는 법이다.

 

한껏 흥이 오른 합창이 잦아들 무렵, 나는 꿈결을 걷듯 자박자박 걷던 숲길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계곡물이 사납게 흐르는 작고 난간 없는 다리였는데, 운 나쁘게도 계곡의 바위에 허리가 찍히면서 척추가 부러져버렸다. 그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고 남은 평생 척수 손상으로 인한 신경병증성 통증을 앓게 되었다. 짧은 순간에 벌어진 사소한 실수였는데 그 대가는 크고 잔혹했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일이 원래 그런 것도 같다. 삶은 돌이킬 수 없고 세상은 늘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 유일한 위안은 세상이 내게만 잔혹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이다. 돌아보면 모두들 제 몸집 이상의 짐을 짊어진 채 흔들리며 걷고 있었다.

 

 

나의 세상이 부러져버렸다

대학병원에서 수술과 회복을 반복하는 동안의 시간은 몇몇 사건을 제외하면 뚜렷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중환자실에서 간성 혼수에 빠진 맞은편 침상의 환자가 죽어가는 과정을 꼬박 지켜봐야 했던 것과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참에 2단짜리 파티션만 펼쳐놓고 관장을 해야 했던 일, 마비 후유증인 강직인 줄도 모르고 발가락이 움직였다며 온 가족이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던 일 정도가 남아 있는 기억의 대부분이다. 그때 나는 밤낮없이 추락, 추락, 추락만을 반복했다. 잠을 잘 때도 깨어 있을 때도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나는 나의 세상이 부러져버렸다고 생각했다. 끊어진 척수처럼 다시는 이을 수 없는 반쪽짜리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더 이상의 수술이나 외과적 치료가 의미 없어지자 대학병원에선 퇴원할 것을 요구했다. 퇴원을 하라는 소리를 듣고도 기쁘기는커녕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여전히 걷지도,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는데 퇴원을 하라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나 끔찍하게 아픈데 더는 해줄 것이 없다니, 들어도 믿기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엄마와 나는 집으로 퇴원하는 대신 재활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척수 손상 재활로 유명하다는 재활병원들을 찾아 수도권 일대와 서울의 병원들을 옮겨 다니는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을 상시로 겪던 시기였다.

 

 

대학 병원 수술

 

 

느닷없이 일어난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사지가 마비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은 병실의 좁은 침상에 살림을 차리고 무너진 일상을 이어갔다. 낮 동안엔 30분 간격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치료를 받다가 밤이 되면 다시 우르르 몰려나가 개별 운동을 하는 일상이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됐다.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까지 한 팀이 되어 호흡을 맞추는 사람들 수십, 수백 명 모여서 복닥댔지만 관심사는 온통 장애와 통증, 그리고 재활에 맞춰져 있었다. 하나같이 절박했고 그만큼 치열했다. 단순히 다시 걷거나 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고 이전처럼 스스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화장실에 가서 대소변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관절이 굳고 뒤틀리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우리가 받는 치료와 운동은 모두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꼬박 2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토지문화관으로 두 번째 장편을 쓰러 가겠다고 신이 나서 집을 나섰던 그날 이후 2년여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에 남겨졌던 아빠는 돌이킬 수 없이 병들어 있었고, 집과 병원을 오가며 나와 아빠를 동시에 돌봐야 했던 엄마의 양다리는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휘어져 있었으며, 나는 혼자서는 똥오줌도 못 가리는 하지 마비 장애인이 되어 있었다.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고 뭔가를 해야 한다면

집으로 돌아온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말로 내 의지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때가 되어 밥을 주면 밥을 먹었고, 날이 저물면 잠들었으며, 누군가 깨우면 다시 일어나서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그것 말고는 하는 것이 없었다. 그때 나는 사고와 함께 내 삶도 끝났다고 믿었다. 어떻게든 나를 살려 보려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지만 궁리했다. 할 수만 있다면 깨끗하게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혼자서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던 때였다. 절망적인 생각들과 하나 마나 한 후회,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 같은 것들이 한데 뒤엉켜 질식할 것 같은 시간이 덮쳐왔다. 나는 숨통을 조여 오는 그 시간을 그저 견뎠다. 극복해보려는 의지나 거창한 다짐 같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견뎠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른 날과 똑같이 음악이 쾅쾅 울리는 헤드폰을 쓰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어느 날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 아니면 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떠올리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 긴 세월을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반쪽짜리 세상일망정 그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면 언제까지고 이렇게 지낼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소설일 거였다. 세상이 동강났어도 그거 하나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미칠 듯이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뭔가 다시 하고 싶은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그런 순간이 왔다. 그러고 보면 내게 소설은 언제나 그렇게 다가왔다. 문득, 느닷없이, 거짓말처럼.

 

 

황시운 소설 그래도, 아직은 봄밤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가 황시운 첫 소설집 나는 절대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훼손하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다 교유서가

황시운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 책 표지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사고가 난 날로부터 꼬박 10년이 흘러 출간된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은 그런 시간을 건너오며 남겨진 흔적들이다. 사지가 마비된 채 매듭 묶는 일에만 골몰하는 윤과 낙지 대가리를 자르며 그런 윤을 부양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의 아내(「매듭」), 발달 장애를 가진 이웃 청년에게 아들을 잃고 용서를 이야기하지만 내심으론 복수를 꿈꾸는 여자와 이웃의 아이를 해친 아들을 돌보며 어떻게든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여자(「어떤 이별」), 어린 시절 동생이 별 뜻 없이 벌인 장난으로 사지가 마비된 채 끔찍한 통증을 견디며 살아가는 형과 형의 인생을 말아먹고 그 죄책감으로 심인성 통증에 시달리며 엉망으로 살아가는 동생(「통증」), 고독사 한 아내를 떠올리며 죽은 이들의 흔적을 정리하는 남자와 끊임없이 엇나가기만 하는 그의 자식들(「금」), 벗어날 길 없는 가난에서 자식들이나마 구제하기 위해 보험 사기를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한 채 더 큰 빚을 자식들에게 지우고 마는 아버지와 그런 가족들을 등허리의 혹처럼 짊어진 채 뜨거운 사막을 혼자서 횡단하는 딸(「리르와디」, 「당신의 우물」) 등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신산한 삶의 풍파에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들은 모두 ‘남들만큼만’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지만 아무도 그 소망을 이루지는 못한다.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 속에 갇혀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래봐야 별 소용없어 보이는 사람들, 삶에 서툴고 좌절을 거듭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삶을 끝낼 수도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바로 나와 내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불행과 불운 속에서도 간혹 마주할 작은 기쁨을 기대해

‘왜 나는 남들처럼 살아갈 수 없는 걸까.’

사고 이후 내가 끊임없이 한 생각이다. 걷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처럼 대소변만 스스로 가릴 수 있어도 그 나머지는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살을 찢고 뼈를 갈아내는 것만 같은 통증만 없어져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 모든 고통 속에서 소설을 써냈지만, 나는 내가 성공이나 극복의 길을 걸어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끊임없이 좌절했고 매번 주저앉았다. 세상을 원망했고 하늘에 분노했으며 끊임없이 징징거렸다. 소설은 그렇게 쓰였다.

 

 

길

 

 

나는 여전히 나의 세상은 부러져 버렸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뒤에야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든가 몸의 장애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어떠한 장애도 될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게 세상은 여전히 반쪽짜리여서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사고 이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던 많은 일을 사고 이후엔 하지 못하게 됐다. 사고 이전에 비해 사고 이후에 나아진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주어진 대로 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삶이 크게 나아질 거라 기대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아직은 봄밤』 속 인물들처럼 삶이 주어졌으니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불행과 불운에 온몸으로 맞서며, 간혹 마주치는 사소한 기쁨이나 따뜻함 같은 것들에 의지한 채 작은 성취를 쌓아가면서. 우리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이 또 온통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은? 세월을 견디고 오래 사랑받는 문학 작품들은 대개 성공보다 실패를, 대답보다는 질문을, 상식보다는 상식 밖을, 중심보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다룬다. 놀랍고 기이한 것은 그 쓰라린 실패담, 난처한 질문, 보잘것없는 주변의 이야기가 우리의 인식과 지각을 깊이 파고들어 종내는 강력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코너에서는 국내외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서툴고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흔들리는 삶,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이야기들을 작가들의 소개로 만나본다.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부러진 세상을 건너는 법

- 지난 글: [서툰 인생을 위한 변명] 당신의 주파수는 몇 헤르츠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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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운
황시운

소설가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장편소설 『컴백홈』, 경기문학시리즈 참여 소설집 『홈』, 소설집 『파인다이닝』(공저), 산문집 『책이 선생이다』(공저) 그리고 홀로 낸 첫 소설집 『그래서 아직은 봄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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