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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역사학이란 무엇일까?

- 이달의 답변 -

이문영

2022-10-13

학문과 대중을 연결하는 소통의 끈을 파괴한 유사역사가들은 역사학자들이 은폐했다는 위대한 고대사로 대중을 현혹합니다.

우리가 어쩌다 식민지가 되긴 했지만 원래는 아시아를 지배하던 큰 나라였다는 주장으로 대중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한 것입니다.

대체 과거에 잘 나갔다는 게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렇게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한발 더 나아가 고토 회복을 외치기도 하죠. 

 

 

 

유사역사학의 유래와 정의

유사역사학(類似歷史學)이란 역사학처럼 보이지만 역사학이 아닙니다. 역사학은 인문학의 한 분야로 엄정한 학문 논리에 의해서 과거의 일들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학문입니다. 유사역사학은 과거의 일들을 재구성해서 보여준다는 점만 동일합니다. 역사를 재구성할 때 역사학은 사료 비판과 합리적인 추론을 이용하는데, 유사역사학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재구성합니다. 처음부터 결론이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서 역사를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그럼 대체 유사역사학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민족의 영광스러운 고대’입니다.

 

유사역사학은 ‘pseudohistory’의 번역어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의사역사학(疑似歷史學), 사이비역사학(似而非歷史學)이라고 번역합니다. 영어의 ‘pseudo-’는 가짜, 허위, 모조, 사이비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유사과학을 영어로 쓰면 ‘pseudoscience’라고 씁니다.

 

이 용어는 민족주의의 발전과 같이 발생했습니다. 최초로 쓰인 용례는 1815년이었습니다. 이때는 단순히 ‘가짜 역사’라는 말이었는데, 전승된 일화가 사실이 아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민족주의에서 ‘위대한 민족의 역사’를 날조하는 것을 가리켜 유사역사학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즉 유사역사학은 근대에 들어와서 생긴 새로운 현상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서 이런 용어가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민족주의 역시 근대에 생긴 이념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흔히, 민족은 먼 옛날부터 있었는데, 왜 민족주의를 근대에 생겼다고 말하냐고 합니다. 완전히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인문학은 용어의 정의가 매우 중요합니다. 대충 말을 섞어서 써서는 안 됩니다. ‘민족’과 ‘민족주의’는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자본과 자본주의가 다르듯이, 휴먼과 휴머니즘이 다르듯이 그냥 다른 것입니다. 민족은 옛날부터 있을 수 있는데, 민족주의는 근대에 등장한 이념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시장’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시장을 만들어서 자본주의를 성장시켰습니다. 이때 구성원들 간의 동질성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구성원들을 묶어내기 위해 민족주의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민족국가는 국가의 구성원들이 고대로부터 하나의 민족이었다고 주장하고 그 결속을 위해서 고대의 장엄한 역사를 호출했습니다. 이 현상은 경쟁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크고 강대한 역사가 없는 민족은, 그런 역사를 날조라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사역사학의 정체입니다.

 

몽골의 지배로부터 역사가 시작되는 러시아의 유사역사학에서는 유라시아를 지배한 고대 러시아의 역사를 날조했습니다. 북유럽에서 자신들의 역사가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 핀란드의 유사역사가들도 고대 세계를 지배한 가공의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중국에서 밀려났다고 생각하고 부끄러워한 베트남의 유사역사가는 중국을 지배한 새로운 고대를 창조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유사역사가들은 ‘투란’이라는 가공의 거대한 국가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투라니즘을 만들었습니다. 역사가 주변국에 비해서 그리 길지 않은 일본은 투라니즘을 받아들여서 찬란한 고대 일본의 역사를 날조했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제국의 유사역사학을 부러워하던 한국의 유사역사가들은 고대 한민족이 아시아를 지배하는 제국을 만들어냈습니다. 환국(桓國)이라 부르는 제국이죠.

 

유사역사학의 문제는 자기 민족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가령 유사역사가는 중국과 일본은 모두 우리와 같은 민족인데 우리가 맏형이므로 그들을 영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따르지 않는 중국과 일본은 혐오 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규정합니다. 어느 나라의 유사역사학이나 다 마찬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민족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미 인류는 민족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면서 미증유의 전쟁을 치른 바 있습니다. 그런 일을 또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유사역사학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닙니다. 민족주의와 더불어 커진 것으로 전세계에서 다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나라만의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유사역사학이 우리나라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유

우리나라는 근대학문을 일제강점기에 접했습니다. 역사학도 마찬가지였죠. 역사학은 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있었던 것 아닌가요? 물론 옛날부터 있었고 그 수준도 높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록문화는 세계에 자랑할만한 독보적이죠.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은 서양에서 고도화되었고 우리나라의 학자 역시 그것을 받아들여 역사학으로 정립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식민지배의 방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그것을 ‘식민사학’이라고 부릅니다. 해방 후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것을 큰 과제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일제강점기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일본과 국교 수교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본과 국교 수교를 하는 것은 못마땅한 문제였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일수교 반대운동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이때 이런 흐름을 타고 일제의 식민사학을 공격하는 척하면서 역사학계를 질타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중심 세력은 일제강점기 때 많이 배우고 일제에 협력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친일 세력들은 일제의 위용에 감복했던 사람들로 일본을 롤모델로 삼아서 일제처럼 ‘위대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일본의 민족주의적인 관점이야말로 일본을 세계와 싸울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제를 본받자고 할 수는 없고, 또 그렇게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일제의 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가져와서 주어만 바꾸면 되는 문제였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일본이 고대에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이야기는 한국이 고대에 아시아를 지배했다는 이야기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중대한 역사적 사실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일본 식민사학자에게 역사를 배운 역사학자들이 은폐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역사학자의 전형으로 매도된 사람이 서울대 교수 이병도였습니다. 이병도는 조선총독부가 세운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습니다. 유사역사가들은 식민사학자에게 역사 공부를 했으니, 식민사학자라는 논리를 세웠습니다.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데 가장 많은 노력을 한 이기백 교수는 오산학교 출신으로 작은할아버지가 남강 이승훈으로 독립운동가 집안입니다. 동양사의 거목인 전해종 교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독립운동가인데 유사역사가들은 이런 사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모든 역사학자들이 이병도의 제자라는 악선전을 늘어놓으며 식민사학자의 제자는 식민사학자가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되풀이합니다.

 

 

역사학자 이병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사학자 이병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다른 나라의 경우는 유사역사가들이 엉터리 주장을 하면 역사학자들이 그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왜 말이 되지 않는지를 설명하여 대중들이 그런 주장에 현혹되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역사학자를 인신공격하여 입을 닫게 만드는 전법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역사학자들을 친일파, 식민사학자로 공격함으로써 역사학자의 발언권을 약화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위대한 우리나라의 역사를 역사학자들이 감추고 있다고 합니다. 왜 감추냐면, 친일 식민사학자이기 때문이고 친일 식민사학을 벗어나면 교수를 할 수 없고 밥벌이를 못 하게 만들기 때문에 벗어날 수 없다고 악선전을 합니다.

 

역사학계는 그때까지도 유사역사학이라는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들과 대화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그런 결과 토론도 여러 차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토론을 통해서 유사역사학은 더욱더 세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토론의 내용과 상관없이 언제나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들과 토론을 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죠.

 

이렇게 학문과 대중을 연결하는 소통의 끈을 파괴한 유사역사가들은 역사학자들이 은폐했다는 위대한 고대사로 대중을 현혹합니다. 우리가 어쩌다 식민지가 되긴 했지만 원래는 아시아를 지배하던 큰 나라였다는 주장으로 대중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한 것입니다. 대체 과거에 잘 나갔다는 게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렇게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한발 더 나아가 고토 회복을 외치기도 하죠. 힘만 가지면 침공도 서슴지 않을 사람들을 보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은 결국 우리나라 역사를 패배의 역사, 남들을 공격하지 못한 역사라는 식으로 자학적으로 보게 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을수록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한 번 빠져들고 나면, 그 후에 뭔가 이상하다 느껴도 이미 자신들이 엉터리 이야기에 쏟아 넣은 시간을 부정하기가 힘들어지게 되어 옹고집처럼 자기가 믿는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우기게 됩니다. 자기가 오랜 시간 믿은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바보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유사역사학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흔히 뭘 보면 좋냐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몇 년 전에 초보자들을 위한 역사책 큐레이션을 해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큐레이션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한국사에 대해서 궁금한데, 뭘 보면 좋을까 했을 때 일반인들은 막막해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때야말로 이런 것부터 보면 좋다고 권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한 것이죠.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별로 권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이 책은 매우 유명하지만 진짜 어려운 책이고 유럽사에 아무 조예도 없는 사람이 보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진짜 초보라면 <중학생을 위한 역사학 수업>을 보는 것이 낫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용 책은 그렇잖아 하는 분은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같은 책을 보면 좋습니다. 이렇게 역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기초를 잡으면 ‘역사관’에 대해서 설명한 책을 보아도 될 것입니다. 점점 더 역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되겠지요. 꼭 책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팟캐스트에는 다양한 주제가 논의되었으므로(400여화가 넘습니다.) 재밌어 보이는 것을 골라서 들어도 됩니다.(유튜브에도 있습니다.)



 왼쪽부터 중학생을 위한 역사한 수업,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책 표지 (출처: 알라딘)

왼쪽부터 <중학생을 위한 역사학 수업>, <교양인을 위한 역사학 교실> 책 표지 (출처: 알라딘)



이렇게 전문가들이 만든 역사물을 접하면 유사역사학에 대한 내성을 기를 수 있게 됩니다. 역사학은 의심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학문으로 무턱대고 아무 사실이나 믿지 않기 때문에 비판 정신이 저절로 함양되기 때문입니다. 유사역사학의 주장에 가슴이 뛴다 해도, 머리가 갸우뚱하게 된다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학이 사람들에게 주는 가장 큰 효능입니다. 

 

유사역사학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비판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느냐며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한 뒤에 <유사역사학 비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와 같은 유사역사학 자체를 다룬 책들을 보게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왼쪽부터 유사역사학 비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서 책 표지 (출처: 알라딘)

왼쪽부터 <유사역사학 비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책 표지 (출처: 알라딘)



역사학자들이 좀 더 대중과 같이 이야기를 하는 자리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유사역사학에서 역사학자를 ‘친일파’라고 말하는 선전‧선동이 먹히게 내버려 두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학자들이 일일이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유사역사가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논파하는 논문을 써주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논문이 있다면 이 사람들의 허황된 주장에 감염되는 것을 방지하는 백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빠져든 사람들을 제정신 차리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이런 일에 빠져들지 않게 만드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역사를 소재로 삼는 작가들을 위한 강의와 세미나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역사 콘텐츠 집필법을 다루는 코스웍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다루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작가가 많이 나와 다양하고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10월 [이달의 답변] 유사역사학이란 무엇일까?

- 지난 글: 10월 [이달의 질문] 역사인 듯 역사가 아닌 유사역사학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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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영

역사작가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90년대부터 우리나라 유사역사학에 대해서 연구하여 <만들어진 한국사>, <유사역사학 비판>이라는 유사역사학에 대한 책을 썼으며 <하룻밤에 읽는 한국고대사>, <중학생을 위한 역사학 수업>, <사마천, 아웃사이더가 되다>, <잠깐 동안 봄이려니> 등 역사를 다룬 책들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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