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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밑부터 하늘 위까지, 그림책은 말한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 展>

인문쟁이 김정은

2019-08-06


그림책은 독특한 존재다. 처음으로 ‘읽는 즐거움’을 알려줬지만, 머리가 크면서 이내 희미해져 버리고 만다. 시작을 함께했지만 성장하며 잊어버리는, 어쩌면 한때 나의 가장 소중했던 친구. 기쁘거나 슬플 때, 물 밑으로 가라앉거나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닐 때, 그림책은 연약했던 유년시절 우리가 느끼던 그 모든 감정을 감싸 안아주었다. 그래서 그림책은 우리 모두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다. 



어른들이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 展>은 이러한 그림책의 특별함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전시다. 작가 앤서니 브라운은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세계 최고의 그림책 작가 중 한 명이다. <고릴라>, <윌리 시리즈>등을 비롯한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의 자화상과 대표 캐릭터인 고릴라

▲ 앤서니 브라운의 자화상과 그의 대표 캐릭터인 고릴라 ⓒ김정은 


평면적인 그림체와 단순한 이야기 플롯이 그림책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그의 작품을 접하고 분명 놀랄 것이다. 동물의 털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그려내는 사실적인 그림체, 때로는 화가 달리를 떠올리게 하는 초현실주의적 기법, 몽환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까지. ‘어른들이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라는 칭호는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에서 비롯되었다. 



<고릴라>, 환상으로 풀어낸 유년기의 고독과 외로움 



그의 대표작인 <고릴라>는 바쁜 아버지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한 소녀, 한나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혼자서 집을 지키며 쓸쓸해하던 한나에게 어느 날 밤, 작은 고릴라 인형이 아빠만한 진짜 고릴라가 되어 찾아온다. 그들은 평소 한나가 아빠와 함께 하고 싶던 일들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야기는 다음 날, 한나가 아빠와 그토록 가고 싶던 동물원에 함께 가며 끝이 난다. 



<고릴라> 속 한 장면

 

고릴라 속 한 장면

▲ '고릴라' 속 장면들. 진짜 고릴라가 된 인형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한나. ⓒ김정은 

 


작품은 아이가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그림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낸다. 반면 고릴라와 보내는 시간은 초현실적인 상상을 통해 환상적으로 그려진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던 유년 시절의 외로움, 그리고 그를 위로해주는 가상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내면에 쓸쓸함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윌리 시리즈 - <윌리와 구름 한 조각>, <꿈꾸는 윌리>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작 윌리 시리즈 주인공 원숭이 윌리

▲ 앤서니 브라운의 대표작인 <윌리 시리즈>의 주인공 ‘윌리’ ⓒ김정은 



앤서니 브라운의 또 다른 대표작인 <윌리 시리즈> 속 윌리는 여타 다른 그림책의 주인공들과는 조금 다르다. 소심하고, 약하고, 걱정이 많은 윌리. 그래서 우리는 이 작은 원숭이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결국은 그를 응원하게 된다.  


<윌리와 구름 한 조각>은 피하고 싶은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윌리는 어느 날 구름 한 조각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도망쳐 보려 해도, 구름은 계속해 따라다니고 윌리의 두려움은 점차 커진다. 불안에 떨던 윌리는 결국 구름과 마주하기로 마음먹는다. 구름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쥔다. 그때 구름은 비가 되어 내리며 사라지고, 윌리는 그 비를 맞으며 행복해한다. 피하고만 싶은, 실체 모를 두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그를 마주하고 극복하는 과정까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느낄만한 내밀한 심리를 비유적으로 녹여낸 작품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윌리 조형물

▲ '꿈꾸는 윌리' 속, 하늘을 날아다니는 윌리를 재현한 조형물 ⓒ김정은 


<꿈꾸는 윌리>는 제목 그대로 윌리가 꿈을 꾸며 상상하는 세상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꿈속에서 윌리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고, 무대 위 가수가 되고, 하늘을 날고, 탐험가가 된다. 행복한 얼굴로 하늘 위를 나는 윌리의 모습에 콧등이 시큰해지는 이유는, 다 커버린 지금 우리도 이따금씩 하늘을 떠다니고 싶은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윌리는 꿈을 꾸고, 독자도 꿈을 꾼다. 작가도 꿈을 꾼다. 윌리는 꿈이다.

▲ "윌리는 꿈이다." ⓒ김정은



좌절을 이겨내는 상상, <나의 프리다> 



나의 프리다 작품. 소녀가 꽃관을 쓰고 미소를 짓는다.

▲ '나의 프리다 (Little Frida)' ⓒ김정은 


앤서니 브라운의 최근작인 <나의 프리다>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를 앓던 프리다는 제대로 걷지 못한다. 그에게 날고 싶다는 꿈은 그 자체로 좌절이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다리를 절지 않는 친구를 만들고, 그 친구와 함께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이는 실제 어릴 적 프리다 칼로가 상상 속 친구를 만들며 좌절을 이겨내고 꿈을 키워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이야기다. 


날개를 달고 세상을 마음껏 달리는 프리다

▲ '나의 프리다' 속 한 장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프리다. ⓒ김정은 


삶은 굴곡의 연속이다. 그건 마냥 해맑을 것만 같은 어린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빛이 있다. 무용해 보이는 상상과 환상이 때론 그 빛이 된다. 



그림책, 그래서 특별한 존재 



물 밑으로 가라앉는 어두운 마음과 하늘 위를 떠다니는 오색찬란한 마음. 그림책은 그 모든 것에 대해 말한다. 가장 솔직하고, 투명하게. 동심이라는 것은 어쩌면 늘 산뜻하고 맑은 마음만 일컫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 고독이 만드는 어둠과 그 주위를 감싸 위로해주는 찬란한 빛이 뒤섞인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그림책은 물 밑부터 하늘 위까지의 동심을 담고 있다. 그래서 더없이 특별한 존재다.


앤서니 브라운 전시장 내 도서관. 푹신한 쿠션과 <고릴라> 그림책이 비치되어 있다.

▲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전시장 내의 도서관 ⓒ김정은 


<앤서니 브라운의 행복극장 展>은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2019년 6월 8일부터 9월 8일까지 3개월간 열린다. 전시장 내에는 앤서니 브라운의 모든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다.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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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김정은
인문쟁이 김정은

2019 [인문쟁이 5기]


아는 것이 꽤 있고 모르는 것은 정말 많은, 가끔 어른스럽고 대개 철이 없는 스물넷. 말이 좀 많고 생각은 더 많다. 이유없이 들뜨고 가슴이 설렐 때, 조급함과 불안감에 가슴이 답답할 때 모두 글을 쓴다. 때때로 물안개같이 느껴지는 삶 속에서 확신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글을 쓸 때의 내가 가장 사람답다는 것.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람다워지고싶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삶에 대한 애착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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