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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헌책방거리

살아있는 인문을 만나다

인문쟁이 고은혜

2016-01-04


한 때는 동네마다 서점이 하나씩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필자의 초등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동네 책방의 작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기억의 편린들이 떠오르곤 한다. 이제 그 모든 공간과 시간들은 거리에서 컴퓨터 속으로 자리를 옮겨버렸다. 책을 산다는 행위는 이제 오프라인보단 온라인과 더 잘 어울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쉽고, 빠르며, 편하기 때문인 듯하다. 굳이 책을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싶다면, 광화문이나 잠실 같은 도심의 한복판으로 발걸음을 해야만 한다.

요즈음에는 큰 규모를 갖춘 몇몇 브랜드의 서점이 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심지어는 헌책마저 대규모로 매입하고 판매하는 브랜드도 등장했다. 이렇듯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이지만, 변화 속에도 전통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바쁜 세상의 변두리에 느리게 멈춰 있는 책의 골목이, 그것도 헌책방 골목이 있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바로 인천 동구에 위치한 ‘배다리 헌책방거리’ 이다.


배다리 헌책방 전경


배다리 헌책방 플랜카드

▲ 배다리 전경과 플랜카드


민족의 역사를 담은 배다리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배다리’가 어떤 곳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배다리골’이라 이름 붙여진 이 동네는 지하철로는 동인천역 부근, 주소로는 동구 금창동과 창영동, 송현동 일대를 아우르는 곳이다. 갯골과 이어지는 큰 개울로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드나들었고, 따라서 자연히 배가 있어야 이곳을 건널 수 있었다. 배다리라는 이름도 배를 대는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배다리 역사의 시작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 의해 개항이 이루어지면서 인천은 일본인 조계지를 시작으로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되어 조선 아닌 조선 땅이 되어갔다. 밀려난 조선인들이 터를 잡은 곳이 바로 배다리. 어찌 보면 변두리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의 인천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경인철도가 19세기 말에 개통되면서 배다리는 번성기를 맞게 된다.

외세의 침범 속에서도 조선인의 공간이라는 주체성을 잃지 않았던 배다리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민족정신이 더욱 응집된 공간으로 변모한다. 3·1운동 이후 인천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배다리에서 시위운동이 전개되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본인 자본가들에 항거하는 노동자들의 쟁의가 이루어졌다. 이렇듯 배다리는 인천의, 나아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정신을 고스란히 안고 자라난 동네였다.


인문정신의 보고, 헌책방거리

 

배다리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 배다리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공간이자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한 올곧은 정신이 깃든 공간이다. 이러한 배다리에 인문과 지성의 보고인 책이 자리하는 거리가 조성된 것은 분명히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배다리에 헌책방거리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다. 전쟁의 상처가 미처 아물지 않은 어두운 시대였던 만큼 당시에는 새 책은 물론이고 헌책마저도 귀하고 소중했다. 배움에 목마른 청춘들에게 배다리에서 찾을 수 있는 헌책들은 희망 그 자체였다. 배다리에 자리 잡은 40여개의 헌책방에는 책 속에서 수학(修學)의 길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인지라,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헌책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자연히 끊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현재인 2015년에는 겨우 여섯 개의 책방만이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헌책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나 구매하는 질 낮은 책이라는 인식이 언제부턴가 만연하기 시작하면서, 헌책방을 찾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배다리 헌책방거리가 갖는 의의는 빛바래지 않은 채 더욱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책방의 헌책들에는 한 권 한 권마다 각기 다른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책방을 돌아보며 이러한 책과 조우하는 일은, 이러한 역사 속으로 직접 걸어들어가는 것과 같다. 책이 담고 있는 지식에 그 책을 통해 배움을 얻었던 옛 주인의 흔적까지 더해진 헌책은, 인문(人文) 그 자체인 것이다. 이것이 1970년대만큼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배다리의 헌책방을 찾는 꾸준한 발걸음을 이어지게 하는 원동력이다.

배다리 헌책방거리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바로 책방을 직접 이끌며 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이들이다. 남아 있는 여섯 개의 책방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와 활발한 운영을 자랑하는 아벨서점의 곽현숙 사장을 만나 더욱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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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아벨서점 곽현숙 사장


아벨서점 곽현숙 사장님 아벨서점 내부


문_배다리에 서점을 여신 지 얼마나 되었나요?

답_올해 11월 4일이 42주년입니다. 1973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1973년은 이미 헌책방이 줄어가던 시기였습니다. 나는 원래 책장사를 16살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책을 원래 많이 좋아했는데, 이 시기에 책을 접하면서 책의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지요.


문_헌책방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무려 40년간이나 아벨서점을 지탱해온 힘은 무엇인가요?

답_아벨서점에서 책 전시 등, 책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는 이유는 책에 혼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책을 홀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책장사를 하면서 인문이 부재하는 시대를 것을 통감합니다. 젊은이들이 일률적으로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을 보며 사람들 가슴 안에 인문이 죽었다는 것을, 인문이 없는 사회라는 것을 느낍니다. 머리가 깨질 정도로 정보는 넘쳐나는데, 인문은 부재하는 것이지요.


문_그러한 정신이 배다리에서 지키고 있는 가치인 것 같은데요.

답_그렇습니다. 인문이 왜 이곳에서 이야기가 되느냐 하면, 60년간 지속된 헌책방 골목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지식인으로 발돋움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흐름들이 이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사람답게 가는 길을 위해 애쓴 사람들이 수없이 배다리에 묻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차 사람을 상실하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답답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배다리에서 무엇이라도 하려는 것이지요. 그것이 배다리가 가진 정신입니다.


문_42년간 책방을 운영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답_전국을 다녀도 찾지 못했던 책을 이곳에서 찾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기쁨입니다. 70대 할아버지가 자신이 보물을 골랐다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것은, 당신이 만나고 싶었던 시대를 만난 것이지요. 책은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또 꼬마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책 하나를 골라갈 때, 부모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으로 골라갈 때, 그 순간이 정말 빛이 납니다.


문_마지막으로, 인문 360도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답_이제는 책방이 먹고 살기 위해 책을 파는 것이 아닌, 인문을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퇴직한 어르신들이 연금으로 소일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방을 열어가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동네는 대단한 학교가 됩니다. 책을 아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을 나누고, 또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책방에 싣는 것입니다. 두 평이면 어떻고, 네 평이면 어떤가요. 가게세만 유지될 수 있다면, 한 해 두 해 가다보면 서있음으로서 의미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충분히 이렇게 갈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도 이를 장려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실로 책이 좋아서, 책을 나누고 싶은 어른들이 70대, 80대까지는 즐길 수 있지 않겠는지요. 앞으로는 책방이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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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혜
인문쟁이 고은혜

[인문쟁이 1,2기]


고은혜는 인천, 그 중에서도 주로 동인천을 터전으로 인문공간을 탐방하고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에서 근무하며 문학을 공부하고 예술을 터득하는 중이다. 인생을 즐기는 것과 가치를 찾는 것, 그 사이에서의 균형을 꿈꾸고 있다. 인문쟁이로서 쓴 글이 누군가에게 인문의 가치를 알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geh9203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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