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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신가요

욕망에 대한 인문학적 단상

인문쟁이 엄진희

2015-11-29


  우리의 하루는 어떻게 시작할까. 괜찮게 보이고 싶어 치장을 하고, 차를 바꾸어야 하나 고민도 하고, 미래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 출근을 하거나 학교, 학원에 간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의 욕망과 관계되어 있다. 우리는 타자에게 잘 보이고 싶고’, 타자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라캉이라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자는 우리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의 욕망이라는 것은 나의 욕망이 아니며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멋진 차, 좋은 집을 갖고 싶은 것은 순전히 내 욕망일까.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나도 욕망하는 것에 불과한 걸까.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살아가는 한 사회에 하나의 단일한 욕망(‘성공으로 수렴되는 좋은 학교, 대기업 취업 등을 향한)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 아닌가.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민중은 공동체의 이름인 동시에 그것의 분열의 이름(랑시에르 1992: 3)이다. 민주적인 사회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꿈과 욕망으로 분열적이고 바로 그 분열 때문에 존재 가능하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사회의 본질은 분열에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를 향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것을 원하는 사회, 그런데 우리의 민주주의는 안녕한지 모르겠다. 라클라우와 무페 같은 사람들은 근대적 민주주의의 잠재적 유효성은 권력의 장소가 텅 비어 있음(우리가 선거 때마다 겪는 일이다)을 인식하고 사회의 중심에 존재하는 틈새와 구성적 분열을 인식하고 이러한 분열을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1985: 188) 말한다.


  분열에 대한 긍정은 니체에게 영향을 받은 들뢰즈에 와서 더욱 두드러진다. 그는 기계라는 말을 쓰면서 여러 흐름, 다른 욕망의 흐름들을 마치 기계처럼 절단하고 이어붙임으로써 새로운 조합,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회는, 고정된 하나의 목적을 갖는 게 아니라(성공을 향한 하나의 길이 아니라) 신분상 위계도 없고 차별도 없는 개방된 형식의 사회이다. 우리는 사회가 정해준 고정된 것들(코드화된 것들)만을 욕망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라캉은 당신의 욕망을 양보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들뢰즈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러한 욕망은 그 자체로 혁명적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욕망이 억압되는 까닭은 아무리 작은 욕망일지라도 일단 욕망이 움직이게 되면 기성 사회 질서가 의문시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타자에게 예속된 욕망이 아닌 나 자신만의 욕망, 그것은 사회적으로 인정 받지 못할 수 있고 보잘 것 없는 것일 수 있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관대하지 못하다. 이 꿈들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 있다.


  계산 할 수 없는 꿈을 가진 이들이 모든 것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환원하는 사회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다. 쟤는 어느 회사에 다닌다지, 연봉은 얼마라지. 우리는 왜 우리가 얼마짜리로 계산 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나는 얼마짜리가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대체 불가능한 한 사람인데 누구도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묻지 않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나는 사회가 욕망하고 타자들이 욕망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욕망한다. 틀에 박힌, 코드화된 욕망, 계산 가능한 욕망이 아닌 내 욕망에 따라 살고 싶다. 내 존재를 스스로 긍정하며. 외부(사회나 타자)로부터가 아니라 나의 내부로부터 나를 긍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내가 인문학적 공부를 시작하면서 배운 것들이다. 내 존재를 자율적으로 이렇게 입법하고 나면, 내게 남은 일은 이제 직진 뿐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야니 스타브라카키스, 라캉과 정치, 은행나무, 2006.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민음사, 2014.

알랭 바디우,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 문학동네, 2013.

김상환 외, 라캉의 재탄생, 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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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진희
인문쟁이 엄진희

[인문쟁이 1기]


엄진희는 여러 인문학 단체들이 모여있는 홍대 인근에서 주로 활동한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으며, 서평, 기사, 연극이나 영화 리뷰 쓰는 일들을 주로 한다. 아무튼 읽고 보고 듣고 나서, (기승전)‘쓰는’ 일들이다. 소설가 카프카를 만나고 싶고, 그의 음울한 유머를 가지고 싶다. 인문쟁이를 보는 순간,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심쿵’ 함이 있었다. 아무나이지만 아무나가 아닌 사람이 좋다.
kafka20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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