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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의 가치, 연결의 힘

강릉 단오제

인문쟁이 박은희

2016-07-06

지난 5월21일 강릉 단오제의 하이라이트인 ‘대관령 산신제와 대관령국사성황제’로 향하는 무료 셔틀버스에 올랐다.


‘내가 살아보니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게 좋아. 내가 살아온 흔적은 남겨야지.’  


처음 보지만 딸자식 같다고 좋아하시던 할머니는 작은 폴더폰을 이리저리 펼쳐 보이며 말을 건넨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인생 한 페이지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닐까… 예상치 않았던 정겨운 마음으로 소소한 여행을 시작한다.


정으로 가득 찬 버스 안

▲ 강릉 단오제로 향하는 버스 안


‘아이고, 그동안 어찌 지냈소. 안 보여서 궁금했잖소.’


버스에 오른 순간부터 도착까지 이곳은 만남의 장으로 변한다. 따로따로 온 사람일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우리’가 된다. 대굴대굴 굴러서 내려올 정도로 비탈지고 높아 대굴령이라고 불렸다는 험한 길도 사람으로 인해 정겹다. 버스에서 내리니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던 대관령은 북적거리고 있다. 음력 5월5일, 강릉 단오는 1000년 동안 이어진 역사의 끈을 놓지 않고 지금껏 부지런히 당겨왔다. ‘신주빚기’를 시작으로 약 한 달간의 축제가 벌어지는 강릉의 대표적인 행사다.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에 지역 이름(강릉)이 함께 등재될 정도로 역사적 가치도 높다.


하나로 연결된 강릉 단오등

▲ 하나로 연결된 강릉 단오등


그렇다면 강릉 단오는 어떻게 그 역사를 이어왔을까?


강릉은 ‘공동체 중심’의 성향이 강하다. 여전히 ‘문중 땅’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고, 씨족 사회로 이루어진 마을은 지금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계’ 문화가 성행하는 것에서부터 동네사람끼리 모여 즐기는 마을 잔치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강릉의 공동체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런 단단한 결속이 주는 힘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끈이다.   


오전 10시, 김유신 장군을 모시는 대관령 산신제를 시작으로 주변 분위기는 엄숙해진다. 괜한 소음이라도 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신수에 손을 씻고 정갈한 마음으로 예를 다한다.  약 2시간 동안 제례식이 이어간다.

▲ 신수에 손을 씻고 정갈한 마음으로 예를 다한다. / 약 2시간 동안 제례식이 이어진다.


‘고려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다하여 올리는 제사를 거른 적이 없습니다.’   


천년 동안 같은 행사를 정성으로 만드는 것은 모두의 노력 없이 치를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 한마디에서 옛것에 대한 소중함과 그 의미를 지키고 싶어 하는 소망을 느낄 수 있었다.


흥을 돋우는 굿판

▲ 흥을 돋우는 굿판


제례식이 끝나면 무녀의 신명 나는 소리와 함께 시민들에게 신주와 떡을 나누어 준다. 나도 재빨리 줄을 서본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글자 그대로 모두들 둘러앉아 먹을 것을 나눈다. 강릉 단오는 시민이 소망을 담아 모은 쌀에 무당이 나쁜 기운을 쫓는 굿을 하고, 강릉시에서 관미를 보태어, 제를 주관하는 제관이 술을 빚고 떡을 만든다. 굉장히 정성이 들어간 음식들인 것이다. 단오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가 ‘함께’하는 행사인 것이다.     
갑자기 한참 먹고 마시며 여흥을 즐기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선다. 얼떨결에 따라나선다. 단오의 하이라이트인 ‘신목 모시기’ 행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신목을 찾아 강릉의 안녕을 기원해 줄 신목 행차

▲ 신목을 찾아 / 강릉의 안녕을 기원 해 줄 신목 행차


산을 잘 못 타던 나도 이 날만은 웬일인지 행렬을 따라 급하게 올라간다. 한참을 오른 뒤 선택된 신목은 신명 나는 꽹과리 소리에 맞춰 산을 내려온다. 나도 다시 그 뒤를 졸졸 따른다.
흔들리는 단풍나무를 높이 치켜들고 앞장서면 그 뒤로 제사관, 무녀들, 악사, 시민들이 줄을 지어 산을 내려오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 긴 행렬이 구산과 학산을 거쳐 국사 여성황사에 도착하여 신목을 모신다. 그곳에서 강릉 단오제가 끝날 때까지 강릉에 안녕을 빌어주고 시민들을 보살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의 행사를 마치니 해가 산 너머로 어스름하게 진다. 다들 힘들어도 버스를 내리는 순간까지 웃으며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넨다. 그날 그곳에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존재했을 뿐이다.


전통놀이 세상이 변화하고 사람들도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했다. 그 시간의 유속에 마모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융합되기도 한다. 강릉의 단오는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하고 연결하며 이어져 내려왔다. 1000년이라는 시간의 흔적을 놓치지 않은 ‘우리’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나라의 정세가 바뀌면 문화도 바뀌는 것처럼 역사의 흐름에 따라 종교가 바뀌고 정책이 바뀌고 주관자가 바뀌는 사회적 물결 속에서도 단오 문화는 끝까지 지켜져 왔다. 특히 일제 강점기 억압 속에서도 시민들은 자발적인 운동으로 단오를 지켜왔다. 이런 점이 우리가 가진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함께’하는 연결의 힘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요즘처럼 연결의 힘을 강조하는 시대에 강릉의 단오 문화를 이어온 정신은 아름답다.

(사진=박은희)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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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희
인문쟁이 박은희

[인문쟁이 2기]


박은희는 바다를 좋아해 강릉에 터를 잡았고 전형적인 집순이다. '바다를사랑한클레멘타인'이라는 필명으로 SNS 활동한다. 글쓰기를 기반으로 컨텐츠를 제작하여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인문쟁이는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상상들이 바깥으로 나와 기호로 변하고 다시 누군가의 생각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아 지원하게 되었다. 사람의 고리들이 연결되고 순환되길 바란다. 인스타@loveseaclement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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