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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선각자이자, 시대의 희생자라고 말했던 나혜석의 삶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시대의 선각자, 나혜석을 만나다’ 展

인문쟁이 천한얼

2016-07-11


여성 운동가이자 문예가 나혜석오늘 걸어간 그 길은 어제까지 벽이었다.


“탐험하는 자가 없으면 그 길은 영원히 못 갈 것이오. 우리가 욕심을 내지 아니하면 우리 자손들은 무엇을 주어 살리잔 말이오? 우리가 비난을 받지 아니하면 우리의 역사를 무엇으로 꾸미잔 말이오? 다행히 우리 조선 여자 중에는 누구라도 가치 있는 욕을 먹는 자가 있다 하면 우리는 안심이오” -잡감(雜感)-K언니에게 여(與)함, 나혜석 - 학지광(1917)


우리나라 개화기에 등장하기 시작한 ‘신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 있다.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문필가였던 정월 나혜석(1896~1948)이다. 나혜석이 살던 시대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던 때였다.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조선시대는 멸해가고 사회는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지만, 본래 여성을 낮게 치부하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풍조는 여전했다. 남자는 한 여자와 가정을 꾸리고도 첩을 거느릴 수 있었고, 후처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나혜석은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과 또래 나이의 여자를 첩으로 거느리던 모습과, 여자들이 제대로 된 이름 하나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 당시에는 당연했던 보편적인 가치(특히 여성성에 관한)들에 맞서 저항하던 여성운동가이다.  



나혜석 전시회장나혜석을 만나러 가는 길

 

올해는 나혜석이 탄생한 지 120년이 되는 해이다. 수원시에서는 다소 비극적인 결말로 인해 이때껏 조명 받지 못했던 나혜석의 삶과 예술세계를 알리고자 ‘시대의 선각자, 나혜석을 만나다’ 展을 열었다. 나혜석 전시회에서는 나혜석의 연보를 통해 그녀의 생애를 읽어 볼 수 있고, 더 자세한 정보전달을 위해 나혜석을 담은 여러 책들과 영상이 비치되어 있다.
하지만 화가로서 활동한 나혜석의 작품의 수가 적은 것은 매우 아쉽다. 나혜석이 활동할 당시 작업실이 불타는 바람에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가로서의 뚜렷한 사상을 보여주는 ‘경희’, ‘이혼고백서’ 등의 다양한 소설과 시, 만평, 서신 등은 조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여성 입장으로의 비판적 시선과 함께 여성해방사상을 느낄 수 있고, 후손의 기증을 통해 최초로 공개된 작품인 ‘자화상’, ‘김우영 초상’은 나혜석이 프랑스에서 지낼 당시,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그렸음을 알 수 있다.


그 시절, 나혜석의 부친은 용인군수로 자리할 만큼, 나혜석은 유복한 집안환경에서 총명하다는 유명세를 떨치며 자랄 수 있었다. 덕분에 남성도 유학하기 힘들었던 때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었고, 여자로선 상상하기 힘든 미술을 전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나혜석이 여성 해방 문제를 화두로 삼으면서도, 끊임없이 글과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몰두했던 행적을 따라가면서 그녀가 여성 운동가이면서도 태생적인 예술가였음을 느낄 수 있다.


전시회 내부 전시회를 감상하는 시민들의 모습

▲ 전시회를 감상하는 시민들의 모습


왜 시대의 선각자라 불리는가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이혼고백서, 나혜석


나혜석이 자신을 그린 작품 '자화상' 나혜석 전시회 공간과 팜플렛

▲ 나혜석이 자신을 그린 작품 '자화상' / 나혜석 전시회 공간과 팜플렛


한편, 나혜석은 프랑스에서 만난 최린과 불륜을 저질렀단 빌미로 남편인 김우영에게 이혼을 당한다. 그녀는, 남자는 부인 말고도 다른 계집을 품에 안는 것이 공공연하게 허락되면서도, 자신의 행악은 여자라는 이유로 삶 전체를 빼앗겼다 주장했고, 최린에게는 정조 유린 위자료 청구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이혼고백서를 통해 여자에게만 정조를 요구하는 남성을 고발했다. 그 당시 나혜석의 이러한 행적은 ‘남녀평등’이란 개념조차 없는 가부장 사회에서 비난과 조롱을 받았고, 그녀가 일궈온 삶은 산산조각 난다.
그 후, 그녀는, 정조는 오직 취미라고 여기는 ‘스캔들의 여왕’이란 오명으로 불려진다. 하지만 그녀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녀는 진정 가부장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여성의 지위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였다. 진정, 그녀는 ‘여성(女性)’이 아닌, 그 시대에 없었던 ‘여자(女子)’의 삶을 살았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제, 가부장 사회에서 판단되어 내려온 그녀의 오명을 씻어줄 때가 되었다. 현재, 우리가 당연시 누리는 권리는 보편적 가치에 반기를 들기 전까지 누릴 수 없던 권리였음을, 비난을 받을 것을 알면서도 반기를 들었던 선구자의 용기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사진= 천한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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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선각자, 나혜석을 만나다’ 展 (클릭)

· 전시기간 : 2016. 4. 28 ~ 8. 21(116일간)

· 장소 :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1 전시실

· 관람료 : 4,000원

· 문의 : 031-228-3800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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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천한얼

[인문쟁이 2기]


천한얼은 수원에서 자취한지 5년차 된 강원도의 딸이다. 보통 욕심이 없지만 웃기는 것에는 집착한다. 언제나 내 삶을 위한 행복과 즐거움을 쫓아 살다가 이제야 부모님의 힘 빠진 어깨가 눈에 들어와 금전적인 독립이 목표다. 잘 사는 법에는 답이 없기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가꾼 세상을 배우고 싶다. 즐거움엔 큰 웃음을, 즐겁지 못한 자에겐 위로를! chhu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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