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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뉴트로 트렌드, 도시 건축에 깃들다

인문쟁이 최근모

2019-12-17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 인왕산 자락 길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전경 ⓒ최근모


철공소가 밀집한 을지로는 낡고 쇠락하여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져야 했다. 지금 이곳은 '힙지로'라는 말이 쓰일 정도로 젊은이들에게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뉴트로' 열풍이다. 낡은 것이 버려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해서 쓴다는 개념이 도시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을지로, 익선동, 문래동, 성수동, 세운상가... 도시의 오래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 넣고 되살리는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 현장을 찾아보았다. 

자원의 효율적 사용에 대한 개념이 리사이클링(Recycling: 재활용)에서 업사이클링(Upcycling: 창의력과 디자인을 더해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탈바꿈 시키는 것)으로 전환하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인간이 도시를 소비하는 방식의 변화를 서울의 실제 사례를 통해 짚어보고자 한다. 


도시도 물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비하다가 버릴 수 있는 생명 없는 물체. 사랑 없이도 머물 수 있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부쉈다가 다시 세울 수 있는 레고 블럭 같은 것이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도시는 애정 없이 소비할 수 있는 물체가 아니다. 생명을 가진 인간이 숨쉬고 관계를 맺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과거 재개발이라는 방식으로 도시의 낙후된 부분을 허물고 파괴했다. 그곳에 살던 원주민은 사라졌다. 아파트가 들어섰다. 외지인이 들어왔다. 자본만 남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도시를 다루는 방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낡은 것은 부숴야 할 무엇이 아니라, ‘역사의 나이테’로서, 품어 새롭게 재탄생시킬 대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뉴트로 소비 현상과 도시재생의 상관관계를 통해 변화된 소비의 형태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뉴트로는 ‘뉴(New)+레트로(Retro)’가 합쳐진 합성어로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문화를 일컫는다. 패션부터 과거의 생활 용품까지 트랜드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90년대 방영된 인기가요가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컨셉트로 크게 히트를 치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소비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재화나 용역을 소모한다는 뜻이다. 사용하고 없어진다는 '소멸'의 개념을 가진 소비의 패턴이 왜 과거의 것을 다시 활용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 재활용) 방식으로 바뀐 것일까? 우리는 너무 빠른 기술의 변화와 새것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지친 것은 아닐까? 과거의 익숙함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우리는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일상 속에서의 뉴트로 현상은 이미 도시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세운상가

▲ 세운상가는 젊은 메이커스를 위한 스타트업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최근모


예술은 동시대의 사회 심리를 앞서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미술과 건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나, 다가올 문화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근래 ‘핫플레이스’로 알려진 곳들을 들여다보자. 을지로는 낙후된 지역으로 철공소와 세운상가로 대표되는 곳이다. 세운상가만 해도 낡고 더이상 생산 기능을 하지 못하는 철거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과거의 개발 논리에 대입한다면 '비 소비적' 공간으로서, 해체 후 새로운 건물을 지어야할 곳이다. 우리가 간과한 것은 세운상가가 가진 역사다. 1968년 준공되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울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곳이다. 또한 고인이 된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독특한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세운상가는 재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접근 방식이 바뀌었다. 과거의 건물을 남겨놓으면서 동시대에 맞게 고쳐 쓴다는 것이다. 세운상가는 이제 3D 프린팅, 로봇, 의료기기를 제작하는 청년 스타트업체의 생산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세운상가 앞 로봇 조형물

▲ 세운상가의 제조 강점과 새로운 정신을 상징하는 로봇 조형물 ⓒ최근모


이런 열기로 관광객의 유입도 늘어나고 있다. 근처 을지로 일대는 이제 '힙지로'로 불린다. 80년대 낡은 건물을 헐지 않고 뉴트로 풍의 카페와 식당이 연이어 들어서며 서울 시민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을지로의 뉴트로 카페와 식당

▲ ‘힙지로’로 불리며 뉴트로 열풍을 보여주는 을지로 카페와 식당들 ⓒ최근모


그럼에도 세운상가 주변 철공소와 노후화된 건물들은 재개발이라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세운상가와 을지로의 관광명소가 증명한 것은 단순히 '파괴'하고 '새것'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항상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을지로 카페 내부

▲ 을지로 카페의 '뉴트로풍' 인테리어 실내 ⓒ최근모


​청춘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익선동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허물어져가는 한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었다. 달세나 하루 숙박비를 지불하고 잠을 자는 쪽방이 이곳의 주요 풍경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백반을 파는 간판 없는 식당이 좁은 골목 사이로 자리잡고 있었다. 도심의 빌딩 숲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이곳의 풍경은 이제 뉴트로풍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익선동 풍경

▲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익선동의 변화 ⓒ최근모


한옥의 익숙함에 과거 정서와 세련된 인테리어를 가미한 카페와 식당은 입소문을 타며 관광명소가 되었다. 어둡고 지저분했던 골목은 정비되고 상점들의 불빛으로 익선동의 밤은 강남의 불빛보다 더 환하다. 


익선동 카페 인테리어

▲ 독특한 익선동 카페의 실내 인테리어 ⓒ최근모


사람들이 발걸음하지 않는 곳은 어둠이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인적이 끊긴 장소는 활기를 잃게 된다. 익선동의 변화는 반갑다. 그럼에도 지나친 뉴트로 열풍은 소비의 선순환이라는 가면을 쓴 자본의 차가운 논리가 똬리를 틀지 않을까 걱정하게 만든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도심의 낙후 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자본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이 이곳에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도시의 재개발로 인해 많은 병폐가 불거졌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낡은 건축물이 철거의 대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흉물스럽게 버려진 과거의 건축물은 홀대받기 일쑤였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은 매년 300만 명이 넘는 해외 관광객이 찾는 유명 관광지다. 그러나 이곳이 1939년 기차역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채 47년 동안 폐쇄되었다가 1986년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과거 산업시설을 문화시설로 재생하면서 일약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1925년 완공된 서울역도 근처에 새로운 역사가 들어서자 그 기능을 상실한 채 서울의 관문이라는 역사적 이름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구 서울역 역사 문화역서울284

▲ '문화역서울284'로 바뀐 구 서울역 역사 ⓒ최근모


2011년, 구 서울역사가 '문화역서울284'라는 문화복합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과 '문화역서울284' 모두 열차가 출발하는 기차의 집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산업시대의 기차가 서고, 문화의 기차가 출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문화역서울284

▲ 문화복합공간으로서 각종 전시가 활발히 열리고 있다. ⓒ최근모


​자원의 소비가 리사이클링(Recycling: 재활용)에서 업사이클링(Upcycling: 창의력과 디자인을 더해 더 높은 가치를 지니게 탈바꿈 시키는 것)으로 전환한 훌륭한 예도 있다. 석유는 산업을 발전시킨 가장 큰 원동력이자 소비의 대명사다. 만약에 석유가 산업 차원의 소비가 아닌 문화를 만들어내는 창의적 소비가 된다면 어떨까? 그 실제적 예가 바로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문화비축기지'다. 


문화비축기지

▲ 석유비축기지를 헐지 않고 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한 문화비축기지 ⓒ최근모​


원래 이곳은 1973년 석유파동을 겪은 후 건설된 시설이다. 비상시 석유를 공급하기 위해 비축해 놓던 저장 시설이었다. 서울의 한 달 소비량인 6,907만 리터의 석유를 보관하던 곳이었지만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인접한 축구 경기장의 안전을 위해 폐쇄되었다. 원래부터 보안 시설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철저히 제한한 곳이었다. 2013년 문화비축기지로 재생되었다. 석유를 비축하던 5개의 탱크를 모두 재활용하여 전시, 행사, 교육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나온 내, 외장재를 활용하여 카페테리아 역할을 하는 새로운 탱크를 신축하였다. 독특한 외관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화비축기지는 매주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 열리는 문화 서커스와 생태 공연, 전시는 문화비축기지가 보존한 독특한 옛 구조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문화비축기지를 찾은 많은 시민들

▲ 문화비축기지, 도시 재생의 모범사례로 많은 방문객이 찾고 있다. ⓒ최근모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뉴트로 트랜드는 단순히 제품, 문화 콘텐츠에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기존의 것을 헐고 새롭게 짓는 재개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 재생의 개념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맥락으로 서울의 오래되어 기능을 상실한 건축물들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되었다. 재화와 용역을 소모하고 새로운 것을 다시 생산하는 소비의 패턴이 바뀌었다. 과거의 것을 재해석하여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소비의 변화가 도시의 건축물에 담긴 것이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버려진 많은 공간들을 고쳐 다시 쓰고 있다. 이는 우리의 소비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문화역서울284: https://www.seoul284.org/

다시-세운 프로젝트: http://sewoon.org/

문화비축기지: http://parks.seoul.go.kr/template/sub/culturetank.do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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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인문쟁이 5기]


반갑습니다. 가치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최작가입니다. 영화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과 전시를 좋아합니다.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스토리를 채굴하는 성실한 광부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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