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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유성장터에 가보았나요?

'시한부' 유성장터를 거닐다

인문쟁이 노예찬

2019-12-12

 

 

유성전통시장 입구 / 문구: 유성전통시장

▲ 유성전통시장 입구 ⓒ노예찬



장터, 100년을 품다



대전에서 올해 처음 영하를 기록한 아침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추위를 버티기 위해 털옷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장터로 향했다. 하지만 장터는 추위에 웅크리고 있지 않았다. 이 정도 추위는 아무런 문제없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유성장은 사람과 상인들이 뜨거운 합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뜨거움이 마음에 들어 카메라를 들었다.


장보는 할머니 뒷모습

▲ 장 보는 할머니  ⓒ노예찬


유성장의 위치는 유성시외버스터미널 근처, 대전 지하철 1호선 구암역 근처다. 버스터미널에서는 시외의 작은 마을에서 장을 보러 온 할머니들이 내렸다. 구암역에서는 대전 어딘가에서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장터로 향했다. 각자 필요한 물품을 생각하고, 유성장터로 향했다. 나도 그 발걸음을 따라 유성장으로 들어갔다.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흥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형형색색 옷을 입은 할머니들은 이것저것 담은 바구니를 한 손에 쥐고 느릿느릿 무거운 몸을 이끌며 장터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나는 이 웅성거림을 오랜만에 맛보았다. 대형마트에서 흐르는 유행가와 달리 사람의 소리로 가득 찬 유성장은 분명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김이 나는 찐옥수수

▲ 김이 폴폴 나는 따뜻한 옥수수 ⓒ노예찬


장터는 깊숙이 들어갈수록 다양한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과일은 기본이고, 구수한 냄새로 식욕을 자극하는 장터 국밥, 김밥, 잔치 국수를 파는 음식점이 속속 등장한다. 많은 사람이 그 냄새에 이끌려 시장을 먼저 달랜 후 장을 보기도 했다. 새로운 냄새는 전과 선짓국을 넘어서 돼지머리수육에 이른다. 여유만 있었다면 느긋하게 앉아 한 그릇 비우고 싶은 냄새들이었다. 


마침 김장철이었다. 좁은 도로를 배추와 고추, 마 등이 수놓고 있었다. 상인들은 트럭에서 배추를 하나하나 내리고 있었다. 배추들이 머지않아 산처럼 쌓인다. 배추뿐만 아니다. 김치가 될 수 있는 모든 채소는 자신의 상품가치를 뽐내기라도 하듯 높이 쌓였다. 배추 다음으로 무가 자신의 통통함을 자랑했고, 대파가 뒤를 이어 등장했다. 김치하면 젓갈도 빠질 수 없다. 채소들을 쭉 훑어 지나가면 다양한 젓갈을 파는 상인이 등장한다. 새우젓, 오징어젓, 굴젓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젓갈집이었다. 그 모든 것들이 정겨웠다.


팔 준비를 하고 있는 김장배추

▲ 팔 준비를 하고 있는 김장배추 더미 ⓒ노예찬



장터, 100년에서 멈추다



유성장터 할머니

▲ 유성장터 할머니 ⓒ노예찬


이렇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유성시장은 크기만큼 역사도 깊다. 유성오일장은 대전 유성구 장대동 일대에서 매월 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 열리는 전통시장이다. 공식적으로는 1916년 10월 15일 최초 개장했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유성현 치소1가 현재의 대전 유성구 상대동 근처에 존재했다는 연구2가 있다. 유성현 치소가 현재 호남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궁말’[宮里]이라는 장소에 있었으나 고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보았고, 이후 거점을 옮겨 현재의 장대동 일대를 유성의 중심으로 삼는다. 장대동 유성장터 일대가 일제강점기에 유성면사무소의 소재지가 되었다는 점을 미뤄 볼 때, 어쩌면 유성장터의 역사는 100년이 훌쩍 넘을 수도 있다. ‘장터’라는 기록으로 따지자면 1916년이 시작이고, 지금이 2019년이니 104년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유성장은 공주, 논산, 금산, 옥천의 사람들이 농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주요 판매처다. 이를 바탕으로 대전, 충남을 대표하는 주요 시장으로 성장한 것이다.


현재는 5만 2707㎡의 부지와 400개의 점포를 거느리고 있는 대전에서 몇 안 남은 큰 전통시장으로 남아있다. 역사가 깊은 만큼 장터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이 함께하고 있다. 바로 대전의 첫 독립만세운동 장소라는 점이다. 충북대학교 박걸순 교수는 <3·1운동 100주년-남·북 지역 3·1운동의 특징과 성격>이라는 학술대회에서 본래 최초의 장소로 기록된 인동장터가 와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리고 유성장터의 만세 시위가 3월 17일 봉기한 대전 최초의 독립만세운동 장소임을 증명했다.3 거슬러 올라가면 1895년 일어난 을미의병4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1. 어떤 지역에서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

2. 문경호, <고려시대 유성현과 대전 상대동 유적>, p15

3. 송인걸 기자, <대전 첫 독립만세운동 장소는 유성장터>, 한겨례 http://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914472.html

4. 문석봉 의병이 일으킨 의병으로 1895년 민비의 시해소식을 들은 그는 300명의 의명을 일으킨다. 그리고 회덕현의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한 뒤 

   유성 장대리에 집결한다. 그리고 공주로 진격하는데 아쉽게도 매복한 관군에 의해 패배한다.


활기 넘치는 유성장터

▲ 활기 넘치는 유성장터 ⓒ노예찬


하지만 역사 속 굵직한 사건을 목격했던 시장은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유성시외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대전 장대 B구역’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었기 때문. 이 계획은 여러 해 동안 자금 문제, 인근 상인과 시공사와의 불협화음으로 지연되어왔다. 대전시와 유성구는 꾸준하게 개발을 밀어붙였고, 유성시외버스터미널로 인한 교통체증에 시달린 시민들도 재개발을 지지했다. 이때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유성장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날짜가 가까워지고 있다. 2019년 10월 장대 B구역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한국토지신탁과 무궁화신탁 컨소시엄과 사업대행신탁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설계업체와 신탁사 선정을 모두 마친 것이다. 이제 12월 시공사만 선정되면 본격적인 재개발이 시작된다.


활기찬 유성장터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은 언제나 여운을 남긴다. 역사를 생생히 증언했던 시장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한다. 


오뎅을 파는 상인

▲ 따뜻한 오뎅 ⓒ노예찬

 

시장 안 전집

▲ 시장 안 전집 ⓒ노예찬

 

 

장소 정보

  •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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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
  • 오일장
  • 시외버스터미널
  • 대전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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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권 노예찬
인문쟁이 노예찬

2019 [인문쟁이 5기]


오늘도 초심을 잡는다. 나는 왼쪽이 현저하게 부족했지만, 그것은 나를 잘 알고 있었다. 왼손은 조금씩 나의 오른손을 파고들었다. 나의 두 손이 깍지를 낀 것 처럼, 아무런 느낌없이. 처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그러니까. 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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