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먹는 것 이상의 의미, 음식

운암도서관 ‘음식 인문학’ 강연

인문쟁이 김지원

2019-12-10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의 법관이자 미식가였던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이 한 말이다. 바꿔 말하면 오늘 당신이 먹은 음식은 바로 당신이다. 탐정이 단서를 통해 사건을 추리하듯 어떤 사람이 하루 동안 먹은 음식을 나열한다면 그의 삶의 양식마저도 유추할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이 넘쳐난다. ‘먹방’은 일상어가 되었고, 스마트폰 지도 검색을 하면 연관해서 뜨는 정보가 주변 ‘맛집’이다. 매체는 대중의 관심을 예민하게 포착해서 영리하게 상품 소비를 부추긴다. 어쩌면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우리를 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맛있으면 그만일까?



당신이 먹은 음식이 당신을 말한다


운암도서관 전경 / 문구 : 운암도서관

▲광주 북구 운암도서관 전경 ⓒ김지원


운암도서관의 ‘음식 인문학’과 광주식생활교육네트워크의 ‘찾아가는 식생활교육’에서 그 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 음식 인문학 강의가 있는 목요일 오후, 구립도서관 문화강좌실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다. 담박하고 맛있는, 그러면서도 건강한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사찰음식 전문가이자 한식진흥원 이사장이기도 한 선재스님은 ‘맛있고 건강한 한식 이야기’라는 주제로 한식과 사찰음식에 담긴 철학과 건강상의 이점을 이야기했다. 음식이 다만 먹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시종 역설했다.


강연장 내부 모습. 열기가 가득한 현장

▲강연을 듣는 사람으로 가득 찬 문화사랑방 ⓒ김지원


부처님은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에 닥쳤을 때 찾아오면 제일 먼저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사업이 안 되고 몸이 아프고 마음이 불편한데 왜 무엇을 먹는지를 물었을까? 그만큼 우리 삶에 먹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행복하려면 건강한 몸과 맑은 영혼이 중요한데 그것은 맑고 건강한 음식이 토대가 되고, 그 전에 맑고 건강한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토양과 햇빛, 물 등 환경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먹는 것은 모든 생명과 연결이 됐기 때문에 자연계가 맑고 건강해질 때 내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즉 모든 자연계가 나와 같이 공생공존한다는 사상이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예전에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로 한때 유행했던 말이다. 그전에 불교의 ‘유마경(維摩經)’에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유마거사가 말하는 중생은 사람과 동물같이 아픔을 느끼는 생명체뿐만 아니라 식물과 물, 바람, 공기 등 모든 자연을 일컫는다. 오염된 물을 마시면 내가 병들게 되고 자연계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물과 나는 하나이고 자연계가 나와 하나이니 온몸으로 먹는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좋은 것을 접해야 건강해진다.


강연하는 선재 스님

▲ 사찰음식과 한식에 담긴 철학을 이야기하는 선재스님 ⓒ김지원


우리가 흔히 불교에서는 육식을 금한다고 알고 있는데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몇 가지 원칙에 따르고 조건을 만족한다면 불가에서도 육식을 허용한다고 한다. 다만 생명존중관 때문에 육식을 권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인간을 먹이기 위해 공장식 축산에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 등으로 키워진 가축은 고통 속에서 살다가 도살된다. 굳이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고기를 먹는 인간은 과연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뜨거운 물을 마시면 몸이 더워지고 차가운 물을 마시면 몸이 식는다. 사소한 물 한잔이 이럴진대 음식은 어떨지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하다.


집중해서 강의를 듣고 있는 시민들 / 현수막 문구 : 음식인문강좌 선재스님 장영란

▲집중해서 듣고 있는 시민들의 열기가 뜨겁다 ⓒ김지원


선재스님은 몸에 좋은 음식은 약과 같다고 했다. 생명과 생명의 충돌을 막아주고 조화롭게 연결시키는 것이 ‘발효’인데, 전통 발효식품인 된장, 간장, 고추장 그리고 김치를 먹는 것이 보약보다 낫다고 한다. 또 몸이 아플 때는 자신이 태어난 곳 30리 안의 것을 먹어야 몸을 치유하는 약이 된다. 로컬푸드, 즉 신토불이 사상이다. 자연의 리듬에 따라 제철에 나는 음식은 우리 몸에 가장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준다. 그러나 철없이 나오는 음식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1년 내내 재배하는 채소는 인공적 조건에서 여러 화학 약품을 뿌릴 수밖에 없다. 선재스님의 강연을 들으니 음식이 그냥 음식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가 있으며, 그 자체가 수행의 과정이라는 말을 알겠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음식



식생활교육광주네트워크에서는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 환경·건강·배려를 주제로 ‘찾아가는 식생활교육’을 실시한다. 바른 식생활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이다. 첫날은 환경을 주제로 버섯해물덮밥을 요리했다. 지역 생협에서 구입한 식재료의 생산지와 유통과정을 짚어 보았다. 육류보다 탄소발자국이 적은 채소를 소비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일주일에 하루쯤은 채식을 하며 건강을 지키고 지구온난화 억제와 식량난과 물부족 현상을 돌아보고, 생명존중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채식하면 지구가 쿨해져요" ⓒ김지원


둘째 날 주제는 건강이었다. 두부와 채소를 넣어 또띠아롤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식품첨가물에 대해 알아보았다. 식품첨가물은 음식의 맛을 좋게 하고 보존하기 위해 넣지만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건강에 유해할 수 있다. 아이들이 즐겨먹는 과자와 대부분의 가공식품에는 10가지 이상의 첨가물이 들어간다고 한다. 과하게 선명하고 먹음직스러운 것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 깎아놓은 사과는 갈변하는 게 정상이다. 몇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번들거리는 샐러드바의 채소와 과일들은 그로테스크하다. 참여자들이 만든 샌드위치는 첨가물 없이도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었다.


강좌에서 만들어본 버섯해물덮밥

▲환경을 생각하면서 만든 버섯해물덮밥 ⓒ김지원 

 

강좌에서 만든 또띠아롤 샌드위치

▲건강을 담은 또띠아롤 샌드위치 ⓒ김지원



배려하고 함께 나누고



마지막 날은 배려를 주제로 떡갈비를 만들었다.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가 어떻게 자라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게 왔는지를 헤아려보면 음식을 허투루 버리거나 소비할 수 없겠다. 쌀 한 톨에도 땅과 바람과 햇빛, 물의 작용이 필요하다. 쌀의 한자인 미(米)에는 여든여덟 번의 손길이 있어야 벼를 재배한다는 뜻이 담겼다. 겨우 쌀 한 톨이 그러하니 다른 것들은 말해 무엇 할까. 내가 먹고 있는 음식 하나에 여러 사람의 노고와 배려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면 음식이 상품으로 보이지 않는다.


배려가 깃든 떡갈비

▲배려의 마음으로 만든 떡갈비 ⓒ김지원


3주일간 음식에 담긴 의미를 공부하는 것도 유익했지만 함께 만들고 밥을 먹는 편안함이 있었다. 집에서 가져온 장아찌와 김치를 곁들여 먹는 상은 말 그대로 ‘집밥’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와 ‘밥 한번 같이 먹자’라는 약속을 하곤 한다. 밥 한 끼를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넘는 복합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 상가의 상인들을 초청했다. 반찬을 앞으로 밀어주고 한두 마디 오가는 동안 서로 낯섦이 무너져갔다. 너무 앞서간 생각일지 모르지만 밥 한 끼를 나누며 공간과 공동체를 살릴 수도 있겠다. 


함께 만들어 나눠먹는 즐거운 자리

▲여럿이 만들고 함께 나눠먹고 ⓒ김지원



음식으로 그린 우리들의 자화상은?



우리는 우리가 먹은 대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위를 통과해서 혈액을 통해 온몸으로 퍼진다. 음식은 잘게 부서져서 세포 곳곳으로 전달되어 나를 만든다. 오늘 내가 먹은 것은 무엇인가. 그 안에 들어간 것들은 어떤 것들이며, 어디서 누가 어떻게 기르고 만든 것들일까. 16세기 이탈리아의 궁정화가였던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는 과일, 채소, 동물 등을 배열하여 인물 초상을 닮은 기괴한 그림을 그렸다. 만약 우리가 먹은 것들로 초상화로 그린다면 우리들의 현재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 공간 정보

운암도서관 : 광주 북구 북문대로 118 


○ 관련 링크

운암도서관 홈페이지 : https://lib.bukgu.gwangju.kr


○ 사진 촬영_김지원


 

장소 정보

  • 광주
  • 운암도서관
  • 음식인문학
  • 선재스님
  • 한식진흥원
  • 브리야 사바랭
  • 식생활교육광주네트워크
  • 찾아가는식생활교육
  • 주세페 아르침볼도
  • 유마경
  • 유마거사
  • 생명존중관
  • 로컬푸드
  • 발효식품
  • 집밥
호남권 김지원
인문쟁이 김지원

2019 [인문쟁이 5기]


쓰는 사람이다. 소설의 언어로 세상에 말을 건네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살고 싶은 마음과 길가 돌멩이처럼 살고픈 바람 사이에서 매일을 기꺼이 산다.

댓글(0)

0 / 500 Byte

공공누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먹는 것 이상의 의미, 음식'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