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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과거와 현재를 '잇다'

대전 원도심 길

인문쟁이 한초아

2017-06-08


‘길’은 잊고 있던 ‘기억’을 소환한다. 소꿉친구와 함께 뛰놀던 하굣길, 부모님과 손잡고 걸었던 골목 어귀, 공원 가로등 불빛아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까지. 시간이 흘러도 늘 그 자리에 존재하는 ‘길’은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잇고, 추억을 새긴다.

화려한 간판과 드높은 빌딩 사이로, 아픈 근현대사의 기억을 오롯이 담은 길이 있다. 대전역(옛 철도청 보급창고)을 시작으로 목척교, 옛산업‧조흥은행 대전지점,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등으로 이어지는 ‘대전 원도심 길’이 바로 그것. 과거와 현재를 잇고, 역사가 공존하는 그 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한다.


대전발 0시 50분, 애절한 슬픔을 잇다

-대전역

‘교통의 도시, 대전’. 흔히 ‘대전’하면 떠오르는 말이다. 드넓은 밭에 불과했던 ‘대전(大田)’이 본격적인 도시의 모습을 형성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제’에 의해서였다. 1905년 일제는 식민과 수탈을 근거로 경부선 철도 부설을 시작한다. 수탈의 도구였던 ‘철도’는 상상이상의 빠른 근대화를 가져왔고, 일본인들은 대전역을 중심으로 관사촌을 이루면서, 자연스레 상권을 형성,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대전역의 모습

▲ 대전역의 모습


이후 1914년 호남선이 개통되면서, ‘대전’은 명실상부 수도권과 영남과 호남을 아우르는 교통의 요지로 발전한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대전역’에 모이게 되고, ‘대전역’은 만남의 장소이자 이별의 장소로서 자리매김한다.

1959년 안정애가 발표한 <대전 부르스>의 노랫말에는 당시 ‘대전역’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 발 0시 50분…'으로 시작하는 노랫말은 애절한 목소리와 실제 기적소리가 여운을 남긴다. 목포행 호남선 막차에 몸을 싣기 전, 헤어짐을 고하는 연인의 슬픔이 노랫말 속에 절절히 묻어나온다. 대전을 떠나 목포로 향하는 완행열차는 더 이상 운영되지 않지만, 대전역 앞에 놓인 ‘대전 부르스 꽃시계’만이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대전 부르스 꽃시계

▲ ‘대전 부르스 꽃시계’ 는 시민들에게 만남과 약속, 이별의 장소로 마주하고 있다.


대전의 ‘역사’ 그리고 ‘젊음’을 잇다

-조선식산은행(옛 산업은행 대전지점), 목척교, 으능정이 거리

대전역을 나와 걷다보면, 이색적인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자동차와 행인들로 북적이는 길목에 놓인 장중한 화강석 건물. 이국적인 외형과 달리, ‘안경점’의 간판을 단 낯선 조화가 이목을 집중시킨다. 등록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된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 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의 자본으로 운영된 ‘조선식산은행’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일제의 대표적인 경제 수탈 기구로 운영됐다. 1937년 건립된 조선식산은행은 해방이후 1997년까지 산업은행 대전지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일상처럼 쉬이 지나쳤던 길목 옆에, 새겨진 아픈 역사가 오늘도 잠들어 있다.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

▲ 조선식산은행 대전지점(옛 산업은행 대전지점)


‘목척교’는 대전의 동과 서를 연결하는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 화려한 음악분수를 벗 삼아 청년들의 생기 넘치는 ‘공연’이 펼쳐지고, 따뜻한 햇볕을 벗 삼은 어르신들의 ‘장기’ 두는 소리마저 정겹게 느껴지는 휴식의 공간이다.


(좌)목천교 과거 사진, (우)목천교 현재 사진

▲ 목척교의 과거와 현재 모습


하지만 이러한 모습과 달리, 목척교의 탄생 이면에는 역사의 쓰린 ‘상흔’이 묻어나온다. 1912년 일제는 대전에 주둔한 일본 수비대의 병기 수송을 위해, 목척교를 가설하게 된 것. 중심부인 충남도청에서 대전역까지 원활히 군수 물자를 나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바로, ‘다리(목척교)’였기 때문이다. 이후 일제는 더 견고한 다리를 얻고자 대대적인 보수공사와 콘크리트 공사를 진행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목척교’의 모습은 2009년 대전천 복원사업을 통해 모습을 갖추게 된다.


4.19혁명의 진원지였던 목척교

▲ 4.19혁명의 진원지였던 목척교


한편 ‘목척교’에는 우리가 몰랐던 현대사의 이야기도 숨어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선거가 극에 달하자, 천여 명이 넘는 대전지역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독재타도’를 외치게 된다. 수일에 걸쳐 뜨거운 항거를 한 ‘3.8민주의거’, 이를 기념한 곳이 바로 ‘목척교’다. 충청권 최초의 민주화 운동인 ‘3.8민주의거’는 훗날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민주화와 자유의 함성이 혼재되어 있는 ‘목척교’, 일제의 상흔 위에 덧댄, 이 뜨거운 울림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좌)으능정이 거리, (우)대전 대응동 성당

▲ 젊음과 문화가 어우러진 으능정이 거리 /  대전 대흥동 성당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음악 소리에 취할 즈음, ‘으능정이 거리’에 이르게 된다. ‘은행나무 골(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으능정이’는 젊음과 문화가 어우러진 ‘문화의 공간’이다. 젊은 예술인들이 모여 재능을 뽐내고, 그들의 문화를 즐기는 모습이 생기 있게 다가오는 곳이다.

으능정이 거리를 지나면, 1960년대 초기 성당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받는 ‘대흥동 성당’을 만나볼 수 있다. 고딕 양식을 현대적으로 설계한 ‘대흥동 성당’에서는 매일 낮 12시와 저녁 7시면 은은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전의 과거와 현재를 잇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본관)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외관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입구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대전역을 기점으로 이어지는 ‘원도심 길’의 종착지이자 대전 시내를 아우르는 곳에 위치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본관)’. 충남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이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1932년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지어진 근대 건축물(등록문화재 제18호)이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으로, 한국전쟁 중에는 임시 중앙청 건물로 사용되면서 육군본부와 미군 전방지휘사령부가 입주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도청사로 사용되다 2012년 12월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대전의 근현대사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중앙 홀

▲ 영화 <변호인>의 촬영 장소였던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중앙 홀


‘삐걱’ 소리와 함께 세월의 흔적이 드리워진 커다란 출입문을 열면, 시공간의 흐름을 거스른 듯한 공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룬 1층 중앙 홀은 감탄사마저 자아낸다. 여기에 대리석으로 견고히 쌓아올린 계단은 그 웅장한 분위기에 압도되기 충분하다.


*(좌)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복도, (우)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내부

▲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 본관)의 내부


동시대를 살던 신여성이 된 듯,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따라 오르다보면 모자이크 형식으로 대리석을 붙인 벽면과 화려한 샹들리에를 수놓은 건물 내부와 마주하게 된다. 생경한 디자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화려함은 배제하고, 절제미가 드러난 1930년 모더니즘 양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다. 약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반가움을 더한다.


도지사실대전근현대사전시관을 찾은 ‘시민의 메시지’

▲ 대전근현대사전시관(옛 충남도청)을 찾은 ‘시민의 메시지’


일제에 의한 억압과 수탈의 상징이었던 공간은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오늘을 잇고 있다. 아픔으로 점철됐던 대전 근현대사의 ‘기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기억’으로 각인될 것이다. ‘대전 원도심 길’을 걷다보니,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H Carr의 단순하고도 깊은 진리를 오늘에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역사와 문화가 마주한 ‘대전 원도심 길’이 주는 물음이자, 당신이 당장 ‘대전 원도심 길’을 걸어야 할 이유다.



사진= 한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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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대전근현대사전시관’ 팸플릿

2. ‘문화재청’ 홈페이지

 

장소 정보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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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한초아

[인문쟁이 3기]


20여년을 대전에서 살았지만, 그럼에도 ‘대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은 청춘(靑春) ‘한초아’이다. 바람과 햇살이 어우러진 산책, 꽃과 시와 별,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행간의 여유를 즐긴다. 신문이나 책 속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자칭 ‘문장수집가’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뜨거운 ‘YOLO'의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인문쟁이’를 통해, 찰나의 순간을 성실히 기록할 생각이다. 윤동주 시인의 손을 잡고, 가장 빛나는 별을 헤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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