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다독다독 쌓인 대구문학의 시간과 발자취

대구문학로드

인문쟁이 김주영

2017-06-08


거리, 길, 路, 시간의 지층

우리는 때때로 무엇을 이루어야한다는, 어딘가에 도달해야한다는 목적을 위해 정작 그곳으로 향하는 과정은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목적을 달성한 짜릿하고 기쁜 순간보다도 그곳에 다다르는 과정에서의 작은 일화들이나 소소한 기억이 더욱더 깊은 잔상으로 남아 떠오를 때가 있다.

거리(路)는 어떠한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거리를 걷는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지나가면서도 정작 우리는 거리 그 자체보다 걸으면서 하는 다른 행위들에 좀 더 집중한다.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거나, 음악을 듣는다거나, 어떤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거리에는 이렇게 우리의 대화, 음악, 생각들이 켜켜이 내려앉아 있다. 그렇기에 거리는 우리의 시간과 기억들이 다독다독 쌓인, 보이지 않는 지층(地層)이다.


대구문학의 지층, 대구 북성로 향촌동 거리

대구 북성로 향촌동은 190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의 대구 문인(文人)들이 주로 활동하던 공간이다. 북성로 일대에서 동성로 일대로 대구의 중심지가 이동하면서 북성로 향촌동 거리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전후시기 문학을 꽃피웠던 문인들이 쌓아올린 지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구문학관에서는 문화해설사와 함께 근대대구문인들이 활동했던 거리와 주요거점들을 직접 걸어보면서 그들이 남긴 시간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도보여행 문학관광 프로그램 <대구문학로드>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대구문학로드 홍보구조물과 A코스, B코스 지도

▲ 대구문학로드 홍보구조물 / A코스와 B코스 지도

 

<대구문학로드> 프로그램은 총 2개의 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A코스는 향촌동 서쪽 일대를 돌아보는 것으로 대구예술발전소에서 출발하여 ‘수창보통학교 → 우현서루 → 근대문인생가 → 근대문인고택’을 거치며 대구근대문학이 태동했던 시기를 느껴볼 수 있도록 짜여 있다. B코스는 향촌동 동쪽 일대를 돌아보는 것으로 대구문학관에서 출발하여 ‘문성당 출판사 → 예술인의 옛거리 → 명금당 → 무영당 → 종군문인 거점지’를 둘러보며 한국전쟁기 문학예술의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향촌동 예술인의 옛거리 팻말대구문학로드 프로그램 진행 사진

▲ 향촌동 예술인의 옛거리 팻말 / 대구문학로드 프로그램 진행 사진


대구문학관에서 출발해서 조금 걷다보면 북성로 향촌동 입구가 나온다. 향촌동은 근대문인들이 자주 모이던 장소로, 당시의 문인들은 주로 이곳에 위치한 여러 개의 다방에 모여 서로 교류하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거리마다 조금씩 사이를 두고 청포도다방, 꽃자리다방, 백조다방, 모나미다방, 백록다방이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다방은 건물이 아예 사라지거나 혹은 그 터만 남아있는데, 이 중 꽃자리다방은 지금도 여전히 상호를 그대로 유지한 채 카페로 남아있다. 현대적인 카페로 변하긴 했지만 꽃자리다방이라는 이름이나 건물 외관에서 근대문인들이 남기고 간 시간의 흔적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꽃자리다방백조다방 터와 독립서점 더폴락

▲ 꽃자리다방, 백조다방 터와 독립서점 더폴락


백조다방의 건물 터는 꽃자리다방과 별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제는 다른 점포가 들어서서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다방이 있었던 자리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는 없지만, 신기하게도 이 건물 터 바로 옆에 현재 대구 독립서점 ‘더폴락’이 있다. 20세기 대구근대문인들이 서로의 작품을 나누고 문학의 미래를 이야기하던 바로 그곳에 21세기의 인문학이 피어나는 독립서점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향촌동 거리가 과거와 현재의 대구문학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하면서 말 그대로 하나의 ‘지층’이 되어 있는 모습이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대구에서 발간된 『죽순』은 해방 이후 발간된 최초의 시 동인지다. 또한 김춘수, 신동집 등의 걸출한 신인들을 배출한 문예지이자 해방 이후 문인들의 다양한 시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남다르다.

지금의 서문로교회 자리는 『죽순』을 만들었던 ‘죽순시인구락부’라는 단체가 활동했던 공간이다. 이곳은 그 당시 이윤수 시인이 운영하던 ‘명금당’이라는 시계방이었다고 한다. 1940년대 어느 한 시계방의 풍경을 상상해보자. 반짝반짝한 시계부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시계방 안에서 시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죽순』을 만드는 모습, 펜 끝을 물고 어떤 단어가 가장 적절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시인들의 모습.


시동인지 죽순명금당 터구 영남일보 터

▲ 시 동인지 죽순, 명금당 터, 구 영남일보 터


‘무영당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지금은 허물어진 구)영남일보 사무실 터가 나온다. 신문이 가장 파급력 있는 매체였던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기의 문인들은 『죽순』과 같은 문예지나 신문에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문학 활동이 크게 경제적 수익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문인들은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배경에서 구)영남일보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대구지역 문인들이 결성한 ‘종군 문인단’이 활동할 수 있었던 중요한 거점이었다. 비록 지금은 위치를 옮겼지만 지금도 영남일보는 계속해서 영남지역의 소식을 전달하는 신문으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어제를 보았던 오늘의 거리, 내일의 거리로

오늘은 또 다른 어제가 되고,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이 된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레 겹쳐지는 대구라는 도심 속 거리는 단단하지만 부드럽게, 천천히 대구문학의 지층을 쌓아가고 있다. 오늘의 우리가 북성로 향촌동을 걸으며 근대문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처럼 언젠가 찾아올 내일의 누군가 또한 북성로, 중앙로, 종로를 걸으며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해주기를, 그렇게 또 하나의 지층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해본다. 그렇게 오늘도 대구의 거리에는 또 한 겹의 시간과 추억, 이야기들이 쌓여가고 있다.



사진= 김주영

----------------------------

[공간소개 자세히보기] 대구문학관

 

*관련링크

홈페이지 www.modl.or.kr

(대구문학로드 프로그램은 대구문학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장소 정보

  • 대구
  • 대구문학로드
  • 북성로
  • 향촌동거리
  • 죽순
  • 대구문학관
  • 근대문인
  • 영남일보
김지영
인문쟁이 김주영

[인문쟁이 3기]


김주영은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구토박이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스트릿댄서이기에, 스스로를 ‘춤추는 문학인’으로 정의한다. ‘BMW’(Bus, Metro, Walking)를 애용하는 뚜벅이 대구시민이다. 책과 신문, 언어와 문자, 이성과 감성, 인문학과 춤 그 모든 것을 사랑한다. 인생의 목표를 취업에서 행복으로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인문쟁이로서의 나와 우리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전해져 작은 울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댓글(0)

0 / 500 Byte

공공누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다독다독 쌓인 대구문학의 시간과 발자취'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