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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역사촌을 통해 탄광시절의 흥망성쇠를 기억하라

철암 탄광 역사촌

인문쟁이 천한얼

2017-03-08

 

 

탄광의 흔적 그대로를 간직한 곳

지나가던 개도 만원을 물고 다녔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석탄산업을 통해 큰 호황기를 누렸던 철암. 하지만 90년대 석탄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석탄은 사양화되기 시작했고, 급격한 산업쇠퇴로 발길이 끊어진 이곳은 그 시절 그대로 남아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철암 탄광 역사촌의 모습1철암 탄광 역사촌의 모습2

▲ 철암 탄광 역사촌의 모습

 

❝남겨야 하나, 부수어야 하나 논쟁하는 사이한국 근현대사의 유구들이 무수히 사라져 갔다.

가까운 역사를 지우는 작업이 계속 된다면다음 세대는 박물관의 이미지 자료나 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곳 까치발 건물들은 근대 탄광지역 생활사의 흔적으로 소중히 기억될 것이다.❞

-철암 역사 탄광촌


당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지어진 까치발 건물의 모습1당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지어진 까치발 건물의 모습2

▲ 당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지어진 까치발 건물의 모습

 

철암탄광역사촌은 지워져가는 석탄의 역사를 보존하고 후손에게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시 까치발 형태로 지어진 다섯 채의 건물을 재활용하여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까치발 건물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시절 좁은 주거 공간에 여러 세대가 살 수 있도록 하천 쪽에 기둥을 세워 증축했던 흔적으로, 광산 개발 당시의 환경과 철암의 삶과 애환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이제, 석탄산업의 부흥으로 인구가 2만 4천명에 이르기까지 번성했다는 철암의 그 시절을 만나보자.


당시 탄광촌의 일부 생활모습1당시 탄광촌의 일부 생활모습2

▲ 당시 탄광촌의 일부 생활모습

 

80년대 철암은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와 가족, 상인들로 가득 차 활기가 넘치던 탄광촌이었다. 당시에 광부의 월급은 위험수당을 더해 공무원의 두 배에 달하는 약 4만5천원이라는 높은 수입이었고, 더불어 철암시장은 늘어선 선술집과 함께 물건을 사고팔러 온 사람들로 넘쳐나는 호황을 누렸다. 역사촌 실내에는 실제로 주민들의 물품을 기증받아 당시 사용했던 간판과 물품을 그대로 전시하여 풍요롭고 정겨웠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광부의 모습1광부의 모습2

▲ 광부의 모습

 

광부의 삶

무엇보다 이곳의 호황과 번성의 원천이 석탄이었지만 그 내면은 철저히 광부들의 고귀한 노동과 희생에서 만들어졌다. 철암 일대는 전국 석탄생산량 30%에 달하는 제1의 광도였다. 그곳의 광부들은 새벽이 되면 어둡고 깊은 지하 갱도를 만들고 들어가 덥고 습한 환경에서 탄가루를 마시며 석탄을 캐는 고된 노동을 했다. 그들은 반복되는 고된 노동 속에 가족을 생각하면서,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서, 희망을 노래했고 그 가사 속엔 가슴 저미는 슬픔이 읽는 사람을 울컥하게 한다.

 

<광부아리랑>

태백산 기차 소리는 매봉산을 울리고, 깊은 막장 발파소리는 내 마음을 울리네.

가기 싫은 병방 생활 어느 누가 알겠나,​ 샛별 같은 자식 생각에 또 한 짐을 지네,

오늘 떠날지 내일 떠날지 뜨내기 인생복구멍에 검은 가래만 남아 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태백아리랑>

불원천리 장성 땅에 돌 벌러 왔다가, 꽃 같은 요내 청춘 탄광에서 늙네,

작년 간다 올해 간다 석삼년이 지나고, 내년 간다 후년 간다 열두 해가 지났네,

남양군도 검둥이는 얼굴이나 검다지, ​황지 장성 사는 사람 얼굴 옷이 다 검네,

통리고개 송애재는 자물쇠 고개인가, 돈 벌러 들어왔다가 오도 가도 못하네,

문어낙지 오징어는 먹물이나 뿜지, 이내몸 목구멍에는 검은 가래가 끓네,​

 

실내 전시장과 관광객의 모습1실내 전시장과 관광객의 모습2

▲ 실내 전시장과 관광객의 모습

 

관광지로 탈바꿈하는 탄광역사촌

바글대던 사람들이 떠나고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않는 자리는 어쩌면 쓸쓸하거나 흉물스럽다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탄광역사촌의 모습은 긴 세월을 지나 예쁘지 않고 번듯하진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옛 흔적을 담아 ‘그 시절, 이렇게 살았다’라는 꾸밈없는 모습을 통해 방문하는 이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실내공간의 리모델링으로 만들어진 5개의 전시관을 통해 실제 주민들의 물품과 사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예술작품들의 전시가 가득 메워져 있어 추억 이외에 여러 생활상과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광부의 모습철암 탄광 역사촌의 모습

▲ 여전히 탄광 생산작업이 이뤄지는 철암과 갱을 나온 광부의 모습

 

우리는 박물관에 가면 여러 유품과 작품을 통해 옛 선조들의 생활사를 들여다보고 즐거워한다. 분명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사라지고 지워져 볼 수 없는 것들이기에 신기하기까지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땐 얼마나 쉽게 이전 것을 잊어버리는가에 대해 탄광역사촌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공간으로, 우리가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소중한 곳이다.

 

 

사진= 천한얼

 

장소 정보

  • 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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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암
  • 태백산
  • 탄광역사촌
  • 보존
  • 광부아리랑
  • 태백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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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천한얼

[인문쟁이 2기]


천한얼은 수원에서 자취한지 5년차 된 강원도의 딸이다. 보통 욕심이 없지만 웃기는 것에는 집착한다. 언제나 내 삶을 위한 행복과 즐거움을 쫓아 살다가 이제야 부모님의 힘 빠진 어깨가 눈에 들어와 금전적인 독립이 목표다. 잘 사는 법에는 답이 없기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가꾼 세상을 배우고 싶다. 즐거움엔 큰 웃음을, 즐겁지 못한 자에겐 위로를! chhu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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