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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역사가 보인다 : 피란수도 부산야행,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부산의 역사가 보인다 -피란수도 부산야행,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인문쟁이 임소정

2016-08-05


‘부산’을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도 해운대로 대표되는 멋진 바다와 해변이나 해마다 가을을 달구는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떠올릴 것이다. 부산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바다나 영화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보다 앞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부산’을 생각하자면 ‘피란수도’로서의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을 겪은 지 60년이 넘었지만, 피란수도로서의 흔적은 부산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예컨대 최근에 관광지로 호응 받고 있는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의 대표적인 피란민촌 중 하나이며, 동명의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국제시장 역시 한국전쟁 당시 군수물자와 구호품의 거래로 전국적인 규모의 시장으로 거듭나게 된 근현대의 산물이다. 뿐만 아니라 부산의 먹거리로 꼽히는 밀면과 돼지국밥의 유래도 한국전쟁에서 찾고 있으니, 한국전쟁과 피란이라는 주제를 빼놓고서는 부산을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피란수도 부산야행을 알리는 전시물

▲ 피란수도 부산야행을 알리는 전시물


지난 6월 3~4일 초여름의 더위가 막 시작되어 밤 공기가 더 시원하게 느껴지던 저녁, 부산 서구 일대에서는 ‘피란수도 부산야행’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문화재청의 ‘문화재 야행(夜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역사를 품고 밤을 누비다’라는 주제 아래, 임시수도기념관과 임시수도정부청사(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임시수도기념거리와 비석문화마을에서 진행되었다. 역사투어를 비롯하여 각종 공연 행사와 사진 전시, 체험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이부터 그 시절의 추억에 잠긴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령층의 참여가 이루어졌다.
여러 프로그램 중 역사투어는 해설가의 안내와 함께 피란수도 당시의 건축·문화자산을 둘러볼 수 있어 그야말로 ‘야행(夜行)’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참여자들에게 제공했다. 역사투어는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신청으로 참여가 가능했고, 임시수도정부청사를 중심으로 하는 A코스와 비석문화마을을 탐방하는 B코스, 두 가지 코스를 결합한 C코스 등 모두 3개의 코스로 구성되었다. 그 중 우리 이웃들이 살고 있는 골목을 역사·문화적으로 살펴본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B코스, 비석문화마을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석문화마을의 모습

▲ 비석문화마을의 모습


무덤 위에 지은 마을

아미동 산 19번지, 비석문화마을의 주소다. 부산말로 이른바 ‘산만디’라 부를 만큼 높은 고개 위에 있는 비석문화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내려 다시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작은 버스가 가파른 고갯길을 익숙한 듯 오르자, 창 너머로 알록달록한 감천문화마을의 집들이 보인다. 주말이면 방문객들로 가득하다는 감천문화마을과 어깨를 맞대고 있지만 비석문화마을의 첫인상은 동네주민들의 들뜬 축제 분위기를 빼고서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다. 부산야행 행사를 위해 임시수도기념관과 비석문화마을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몇 차례 다녀가자, 조용했던 마을은 어느덧 사람으로 가득해졌다. 야행을 기대했지만 길어진 여름 해 덕분에 여전히 환한 저녁, 드디어 역사투어가 시작되었다.


비석문화마을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항 개항 이후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은 원래 영주동 복병산에 그들의 공동묘지를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인의 거류지가 점차 넓어지면서 1907년에 영주동 복병산에 있던 공동묘지를 아미동으로 옮겨오게 되었고, 1909년에는 대신동에 있던 화장장까지 아미동으로 옮겨오게 된다. 일제강점기동안 일본인 공동묘지였던 이곳은,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인들이 급히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방치되어 버린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 발발하자 전국각지에서 전쟁을 피해 내려온 이들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이 부산이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피란민들은 아미동 산 19번지에까지 이르렀고, 이곳에서 무덤 위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묘지 상석을 걷어 유골함을 꺼내고, 묘지 기단 위에 나무판자와 미군 부대에서 나온 박스 종이로 겨우 벽만을 두른 채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묘지 기단 위에 지은 집해설사 정남서 선생님

▲ 묘지 기단 위에 지은 집 / 묘지 기단 위에 지은 집을 설명 중인 해설사 정남서 선생님


골목을 따라 과거를 걷다

비석문화마을에서는 예사롭지 않게 반듯한 돌들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묘지 상석과 비석이 집의 주춧돌이나 담장이 되기도 했고, 계단이나 문 앞의 디딤돌이 되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마을에서는 기모노 입은 귀신을 보았다거나 밤마다 게다(일본 전통 신발) 소리가 난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도 많이 돌았다고 한다. 어려운 상황 아래 어쩔 수 없이 무덤 위에 살게 되었지만 편치 않았던 주민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좁은 골목을 돌아 나온 안심카페 아래의 축대에는 비석 여러 개가 모여 있었다. 한쪽 모퉁이에 눕혀져 놓인 넓은 비석에는 ‘금만가령표(金滿家靈標)’라고 적혀 있어 가족납골당의 비석임을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비석의 한쪽이 비워진 이유는 남은 가족들의 이름을 적기 위해서라고 한다.
금만가의 비석 옆에 있는 또다른 비석은 시멘트가 발라져 훼손되어 있기도 했다. 이 비석처럼 시멘트가 발라진 비석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아미동 대성사의 주지스님이자 부산농악(아미농악)의 상쇠 예능 보유자이기도 한 김한순 선생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한다. 집의 문지방으로 쓰고 있는 비석에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花經)’이라 적혀 있어 그 의미를 묻고자 찾아온 것이다. 비석을 살펴보고 일본인의 묘비임을 알게 된 스님은 비석의 글귀를 시멘트로 메워버렸다. 그러자 스님의 부인의 말문이 막혀버렸고, 이에 스님이 다시 시멘트를 털어내자, 비로소 부인이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안심카페 축대의 비석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 안심카페 축대의 비석 /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


마을에서 만난 비석들에는 죽은 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생을 마쳤던 날이 기록되어 있었다. 비록 지금은 죽고 비석마저 타향에서 떠돌고 있지만,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었던 삶을 살았노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비석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도착한 투어의 마지막 장소는 하늘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옥상 위에 물탱크가 줄지어 있는 건물은 천주교아파트인데, 옛 아미동 화장터였다고 한다. 그보다 아래로는 애막골이라 하여 화장터로 오기 전 시신을 염하고 재를 올리던 곳이 있었고, 화장터를 지나 더 올라온 곳은 까치고개라 하는데 화장 후 추려낸 유골을 그곳에서 뿌렸다고 한다.
하늘전망대는 용두산공원 뒤로 부산항과 영도까지 보이는 탁 트인 풍경으로, 비석문화마을의 이야기를 넘어 부산의 근현대사까지 곁들일 수 있었다. 근대건축물로 지정된 복병산의 기상대, 제생의원(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으로 시작한 부산부립병원이 시립병원으로 분리되면서 남은 부산대학교병원, 1948년부터 있던 부산지방법원의 옛 건물을 이어가고 있는 동아대학교 법대 건물, 우리나라에 들어온 고구마가 처음으로 재배된 영도의 산기슭 등 보이는 것 하나하나에 역사가 서려 있고, 부산이 담겨있었다.


  최민식 갤러리의 작품

▲ 최민식 갤러리의 작품


역사투어를 마치며

투어는 끝났지만 비석문화마을에는 기찻집 예술체험장, 최민식갤러리, 한마음행복센터 등 다양한 볼거리가 남아있다. 특히 최민식갤러리는 대한민국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사진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전쟁 후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전쟁 속에서 죽음의 공간 위에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절박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가슴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이지만, 죽음 위에서도 꿋꿋이 삶을 써내려나간 이들이 있기에 지금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까만 밤에 거닐면 더 아름다울 ‘피란수도 부산야행’은 다가오는 가을에 또 한 번 열릴 예정이다.



사진= 임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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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임소정

[인문쟁이 2기]


임소정은 경성대, 해운대, 서면 등 부산시내 곳곳을 배경으로 활동한다.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하고 모처럼 생긴 자유시간을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보내고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배움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사람의 성장에 관심이 많은데, 어떤 상황과 생각을 계기로 사람이 성장하는가가 가장 궁금하다. 인문학을 전공하고도 인문학을 아직 모르는 자신을 위해, 또 인문학과 친해지고 싶지만 인문학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sojoung_@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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