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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에서 배움의 공간으로

부산, '세라비 LP음악감상실'

인문쟁이 임소정

2016-06-10

LP(long playing) 레코드는 턴테이블 위에서 1분에 약 33바퀴를 회전하며 음악을 재생하는 대표적인 아날로그 오디오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LP의 시대였다고 하지만, 이미 그 시대를 CD나 MP3 등의 디지털 오디오에 내어준 지 오래다. 최근 몇 년간은 LP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일부 가수들이 LP 음반을 발매하기도 하는 등 ‘LP의 부활’이라 여겨질 정도로 LP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턴테이블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제약 때문에 LP 음악을 즐기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여기서는 LP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작은 가게와 그 주인, 그리고 이들을 지키고자 모인 이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LP음악감상실 ‘세라비’

▲ 수영구 남천동에 위치한 LP음악감상실 '세라비'  ⓒ임소정


LP 음악을 찾다, 세라비(C'est la vie)를 찾다

 

5월이 막 시작된 어느 저녁, 귀 기울이면 파도소리가 닿을 듯한 광안리 끝자락에서 LP음악감상실 ‘세라비(C'est la vie)’를 찾았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 문을 열면, 20년의 가게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낡은 바가 보이고 그 뒤로 LP 음반으로 빼곡한 벽장이 가게 한편을 채우고 있다. 가게 안쪽으로는 테이블 두 개만이 놓여 있어 LP 음악을 찾아오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LP 음반으로 가득찬 세라비의 벽장

▲ LP 음반으로 가득찬 세라비의 벽장 ⓒ임소정


이제 막 문을 열어 한적한 8시, 한 두 사람씩 가게에 들더니 어느덧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한쪽 테이블을 가득 채운다. 이들은 LP음악감상실 ‘세라비’의 20년 역사와 함께 가게 주인 정병순 선생님의 70년 음악인생을 지키고자 ‘세라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첫 모임에 참석했다. 세라비 프로젝트는 온굿플레이스의 정연우 대표가 주최하여 소셜 플랫폼 ‘위즈돔’을 통해 참여자를 모았다. 서로 다른 나이와 직업을 가진 이들이 저마다 LP음악에 대한 애정, 세라비에 대한 관심으로 모임에 참여하였다.


정병순 선생님과 주최자 정연우 대표의 모습

▲ 첫 모임을 진행중인 세라비 프로젝트. 정병순 선생님과 주최자 정연우 대표의 모습 ⓒ임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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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t la vie : 인생이란 그런 것

-세라비 LP음악감상실 정병순 대표


Q. 세라비 LP음악감상실은 어떤 곳인가요?

A. 세라비는 단지 LP를 모은 곳이 아니라, 1910년대부터 100년간의 미국 대중음악을 모은 곳입니다. 마치 학문을 한다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모았지요. 사실 처음부터 세라비가 LP음악감상실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5년 처음 가게를 생길 때는 ‘재즈스타일95’라는 이름으로 CD 1200장만을 갖춘 곳이었어요. 이후 세 번 주인이 바뀌어 2009년에 제가 네 번째 주인이 되면서 세라비라는 이름이 되었고 지금은 LP 9700장을 갖춘 LP음악감상실이 되었습니다.

 


세라비 LP음악감상실

▲ 세라비 LP음악감상실 ⓒ임소정


Q. 세라비를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세라비가 ‘재즈스타일 95’라는 이름이었을 무렵, 근처 미술화랑에서 일했었는데, 6시에 퇴근을 하고 나면 이 가게에 출퇴근하다시피 했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재즈를 즐겼지요. 몇 번 가게 운영 제의를 받았었는데 이미 하고 있는 일이 있었기에 거절하다가, 화랑을 그만두면서 가게를 맡게 되었습니다. LP음악감상실이라는 것은 정말 음악이 좋아서 소일거리로 하는 것이지, 비즈니스적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사업이지요. 세라비를 운영하기 전에는 집에서 볼륨을 높여 재즈를 듣다가 이웃의 잠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된 적도 있는데, 이제는 좋아하는 음악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으니 비록 가게는 적자이지만 만족스럽습니다.


Q. 음악에 대한 애정이 크신 것 같습니다.

A. 18살에 밥 딜런의 곡을 듣고 마치 교조의 광신도처럼 그를 따르고, 그의 가치관을 추종했습니다. 당시에 세력을 강화하던 히피의 사상을 추구하여, 50년 전 당시에는 흔치도 않았던 청바지를 입기도 했습니다. 대학 시절, 자갈치 시장에서 청바지를 사서 무릎에 구멍을 내고는 했는데, 50년이 지나서야 젊은 친구들이 그런 바지를 입더군요. 당시에는 정상이 아니라는 취급을 당하기도 했지만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것을 좇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기껏해야 집 크기의 차이, 입는 옷감의 차이, 먹는 반찬의 차이 정도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욕망을 더 채우기에는 좋을지 모르겠지

만,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요.


세라비 안쪽에 놓여 있는 소품.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이 적혀 있다

 ▲ 세라비 안쪽에 놓여 있는 소품. ⓒ임소정


Q. LP가 9700장이나 있다고 하셨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LP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A. 예전에 롤링 스톤지(대중 음악 분야로 널리 알려진 미국 잡지)에서 영미의 최고 대중음악평론가들에게 최고의 명반을 설문한 결과, 95%가 1위로 꼽은 영국의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입니다. The Wall 앨범 중에서도 ‘Another brick in the wall’을 들려주고 싶군요. 79년 발표된 곡이지만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필적할 만한 곡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앞서서 세라비는 100년 간의 미국 대중음악을 모은 곳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대중음악을 통해서 미국의 역사라든지 다른 것들을 배울 수도 있을까요?

A. 물론이죠. 미국의 시대상, 사회상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195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했던 로큰롤의 경우, 그 강렬한 음이라든지 노골적인 춤 때문에 보수적이던 당시의 부모세대에 의해 반대 당했습니다. 미국에서 로큰롤 이전까지는 여성들이 바지를 입지 못했다는 것, 알고 있었나요?(웃음)


벽면 

 ▲ 앨범표지들이 붙어있는 테이블 옆 벽 ⓒ임소정


Q. 음악에 대해서 정말 해박하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이 배울 수 있나요?

A. 한 가지로 반세기를 해보세요. 한 우물을 파면 식견이 생기고 도사가 됩니다.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서 알려고 하는 학구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50년 전에는 락에 대해서 한국어로 배울 수 있는 책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군에 부탁해서 관련 원서를 읽다가 교수님께 혼이 나기도 했었지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또한 그와 관련된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통섭’이라는 말처럼요. 단지 음악에 대해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나 역사와 같은 것들도 모두 알아야 합니다.


Q. 21세기에 LP를 지켜나가는 의미가 있나요?

A. LP는 음악 재생 도구이자 방식입니다. CD로 대표되는 디지털 음악이 차가운 데 비해 LP는 아날로그 음악으로서, 표현 주파수 영역이 디지털 음악보다 크기 때문에 향수를 자극합니다. LP의 ‘시그럭’거리는 소리가 주는 정서를 느낄 수 있지요. 음악이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 효과 중에서, LP는 특히 옛날 어느 순간을 기억나게 하는 리마인드 효과를 주는 것 같습니다.


세라비, 작은 가게를 넘어 배움의 공간으로

세라비 프로젝트의 첫 모임은 세라비에 대한 소개와 정병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세라비가 LP음악감상실로서 가지는 가치에 대해서 공감하며, 세라비라는 문화공간을 유지하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정병순 선생님은 주기적인 음악 감상회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음악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구성원들은 그 뜻을 지지하여 음악 감상회의 진행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좋을지, 세라비가 어떤 환경을 갖추어야 하며, 음악 감상회를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방식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라비 프로젝트는 향후에 계속해서 소모임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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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안내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 3-58 B1'세라비'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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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라비
  • LP음악감상실
  • 아날로그
  • 음악감상회
임소정
인문쟁이 임소정

[인문쟁이 2기]


임소정은 경성대, 해운대, 서면 등 부산시내 곳곳을 배경으로 활동한다.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하고 모처럼 생긴 자유시간을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보내고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배움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사람의 성장에 관심이 많은데, 어떤 상황과 생각을 계기로 사람이 성장하는가가 가장 궁금하다. 인문학을 전공하고도 인문학을 아직 모르는 자신을 위해, 또 인문학과 친해지고 싶지만 인문학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인문쟁이에 지원했다. sojoung_@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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