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문360인문360

인문360

인문360˚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인문쟁이 이재형

2019-12-10


명동에 위치한 한국은행 전경

▲ 서울특별시 중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이재형


어릴 적 부러운 친구가 있었다. 동네 구멍가게 아들이다. 그 친구는 당시 유행하던 ‘쫀득이’, ‘라면땅’ 등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집안 형편으로 한 달에 한 번 겨우 먹을까 말까 했다. 그 때 내 나이 7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돈만 있으면 세상에 못할 일(아니 못 먹을 과자)이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때의 생각이 지금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아무리 돈이 좋다 해도 사람보다 더 귀중할 수 없다는 속담이다. 사람이 주인이지 돈이라는 물질이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루를 아등바등 살아간다. 돈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때론 웃기도, 울기도 한다. 돈이 우리가 갖고 싶은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돈은 소비를 결정하는 중요한 수단



우리 화폐 도안에 쓰이는 인물, 그림들 / 이황 명륜당 계상정거도 이이 오죽헌 초충도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혼천의 혼천시계 신사임당 초충도 월매도 풍죽도

▲ 화폐 도안에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는 인물의 초상이다. ⓒ이재형


돈은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를 결정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민주주의의 이념이 자유, 평등이지만 돈 앞에 평등이란 개념은 없다. 프랑스 인권선언(1789년) 제1조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중세 봉건주의를 타파할 당시는 이 말이 맞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거치고 자본주의 시대를 맞은 지금은 어떨까? 인권선언 뒤에 “돈 앞에는 평등하지 못하다.”는 말을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원시시대는 돈이 없었다. 무리지어 함께 지내면서 채집을 하거나 사냥을 했다. 그리고 다 같이 나눠먹었다. 그러다 무리에서 힘 센 자가 지도자 행세를 하면서 채집이나 사냥한 물건을 더 많이 차지했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시대는 강자의 세상이었다.


신석기시대부터 물물교환이 시작되었다. 서로 필요한 물건을 바꿔 쓴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가진 쌀이 더 중요한데 옷감과 바꾸니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거래를 할 때 지불수단으로 화폐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화폐는 재화나 서비스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조개껍질 등으로 시작한 화폐가 오늘날 신용카드, 비트코인까지 발전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끼리 인터넷뱅킹, 모바일뱅킹으로 돈을 주고받는 시대다.


금융통화위원회 옛 회의실

▲ 옛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실 ⓒ이재형



돈이 현대적 의미의 계급을 결정짓는다



돈은 현대적 의미의 계급을 결정짓는 수단이기도 하다. 뼈대 있는 집안이 아니라 돈이 있는 집안이 양반이다. 돈 앞에 누구나 머리를 조아린다. 돈 앞에서는 형제도, 부모도 없다. 부모가 죽으면 재산을 두고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개인의 소비행위를 넘어 신분을 결정짓는 돈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이다. 이곳에 가면 역사책에서 볼 수 있었던 해동중보 등 진귀한 화폐도 볼 수 있다.


옛 한국은행 모습을 담은 모형

▲ 화폐박물관 2층에 있는 구 한국은행 모형 ⓒ이재형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화폐를 발행하는 곳이다. 한국은행 구 건물(이하 화폐박물관)은 국가중요문화재 사적 제280호다. 우리나라 초기 근대 건축물로 역사적인 가치가 크다. 1907년 일본 제일은행이 사용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은행으로 개칭되고 1912년 완공된 뒤에는 조선은행 본점 건물로 이용되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丼(우물 정)’자, 정면에서 보면 좌우 대칭이다.


화폐박물관 안에 있는 건물 모형을 위에서 보니 과연 ‘井’ 형태다. 우물처럼 돈이 샘솟는 곳이라 이런 형태로 지었을까? 건물 지하에는 대형 금고가 있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던 건물이라고 하니 이 역시 돈의 힘이 아닐까 싶다.


한국은행 영업장 내부

▲ 이탈리아 팔라조 내부를 보는 듯한 구 한국은행 영업장 ⓒ이재형


화폐박물관 2층 건축실에서는 약 6분 길이의 영상으로 건물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건물의 특징은 영업장 가운데서 보면 주변이 회랑으로 둘러쳐져 있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마치 이탈리아 팔라조(Palazzo)의 내부 마당에 서 있는 듯하다. 팔라조는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 시대에 건립된 정청(政廳)이나 규모가 큰 귀족의 개인 저택이다. 라틴어의 팔라티움(palatium)에서 파생된 말이다. 고대 로마 시대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팔라티노스에 궁전을 건축한 데에서 시작되어 대규모 주택 형식(왕궁, 궁전)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조선의 기술적 능력으로는 이렇게 큰 공간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화폐박물관은 당시 일본의 건축 기술로 이탈리아 팔라조 내부 공간을 참조해 구현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형태로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은행을 찾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영업장을 크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피해 입은 목조 지붕 / 자막 문구 : 당시의 한국은행의 사진을 보면 지붕이 다 날라가 있는 벽체만 서 있는 사진을 볼 수가 있는데

▲ 한국전쟁 당시 피해를 입은 목조 지붕 ⓒ이재형


1950년 6월12일은 한국은행 창립일이다. 창립 후 보름이 채 안되어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화폐박물관은 물론 서울 도심지의 많은 건물이 피해를 보게 된다. 특히 피해가 심했던 곳은 목재로 만들어진 건물들이다. 화폐박물관은 돌로 만들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화폐박물관 건물 중 나무로 지어진 부분은 목조크러스트 지붕이다. 전쟁이 끝난 후 1958년 복구과정에서 지붕은 원래 모습과 약간 달라졌다. 이후 한국은행 본점으로 계속 사용되다 건물 뒤편에 신관이 준공(1987년) 되었다. 그리고 2001년 한국은행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본점 건물을 화폐박물관으로 개관해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화폐박물관 전시실 / 문구 : 우리의 중앙은행, 물물교환과 물품화폐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전시실 ⓒ이재형



총 13개 전시실, 4개 구역의 화폐박물관



화폐박물관은 1층과 2층 총 13개 전시실, 4개 구역(존)으로 나뉘어져 있다. 1존에는 한국은행 설립 배경과 목적, 한국은행이 하는 일, 한국은행의 조직과 운영, 중앙은행제도와 관련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2존에는 화폐의 제조 및 순환 과정, 위변조 화폐 식별법, 손상 화폐 교환방법, 미래의 화폐 등 화폐의 일생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돼 있다. 3존에는 통화·금리·물가의 개념과 나라경제,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의 한국은행 역할 등을 살펴볼 수 있다. 4존에는 한국의 시대별 화폐 및 세계 각 국의 진기한 화폐 등을 전시 중이다.


해동중보 / 문구 : 해동중보(海東重寶) | 고려 숙종8년, 1103년 (高麗 宗 八年, 1103年) Hae Dong Jung Bo, Goryeo 12th

▲ 고려 숙종8년(1103년)에 만들어진 해동중보 ⓒ이재형


이중 눈에 띄는 전시물이 1층 화폐광장에 전시된 해동중보(海東重寶)다. 건원중보·동국통보·동국중보·해동원보·해동통보·삼한통보·삼한중보 등과 함께 고려시대 때 유통되던 화폐의 하나다. 고등학교 역사책에서 배우고 실물은 처음 본다. 모양은 엽전 형태로 둥근 바탕에 가운데에 직사각형의 구멍이 있다. 상·하·좌·우로 ‘海·東·重·寶’라는 4글자가 새겨져 있다. 천 년의 세월을 이어오면서 외관이 많이 훼손되었다.


모형금고 안에 있는 돈다발들

▲ 화폐박물관 2층 모형금고에 있는 현금 ⓒ이재형


2층 모형금고에 가보니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어릴 때 집안 형편이 가난해서 흑백TV에 돈이 나올 때마다 그 돈이 우리 집으로 쏟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설날이나 추석 때가 되면 정부가 시장에 자금을 풀었다면서 은행에 쌓아놓은 지폐 더미가 TV에 나오곤 했다. 화폐박물관에는 모형금고에 5억원의 현금을 쌓아놓은 모형이 있다. 10kg도 안되는데 5억 원이란다. 함께 방문한 아내가 “우와~ 이 돈 다 우리 집에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내 말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 외국여행 실컷 다닐 수 있겠다며 나도 맞장구 쳤다.



로또 돈벼락 맞고 싶은 현대인의 심리



모형금고에 쌓인 현금 더미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한다. SNS에 올리면 돈벼락 맞았다고 하지 않을까? 내 돈은 아니지만 금고에 쌓인 거대한 돈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서민들은 일평생 만져보지 못할 현금이다. 로또 복권을 맞으면 이런 돈을 만져보겠지만.


돈도 사람처럼 수명이 유한하다. 수명이 다한 화폐는 잘게 자르거나 녹이는 방법으로 폐기한다. 잘게 자른 은행권 폐기물은 건물 바닥재나 차량용 방진 패드 원료 등으로 재활용된다. 화폐박물관에는 잘게 자른 화폐를 이용해 만든 의자가 있다. 문자 그대로 돈방석에 앉는 기분이다. 이럴 때 앉아보지 언제 돈방석에 앉아보겠는가!


이 의자에 돈에 관한 경구를 적은 모형 책자가 있다. ‘돈보다 소중한 것이 많다’, ‘황금 천 냥이 자식교육보다 못하다’ 읽어보니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경고다. 이 중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의 돈(錢)에 관한 시가 자못 눈길을 끌었다.


수명 다한 지폐로 만든 의자. 돈에 대한 속담과 싯구가 적혀 있다

▲ 수명이 다한 지폐를 잘게 잘라서 만든 의자와 돈에 관한 경구 ⓒ이재형


周遊天下皆歡迎(주유천하개환영) - 천하를 돌고 돌아도 너나없이 환영하고

興國興家勢不輕(흥국흥가세불경) - 나라와 집안을 잘 살게 하니 그 위세 대단하구나.

去復還來來復去(거복환래래복거) - 온 것 같으면 어느새 가고 또 어느새 다가오니

生能捨死死能生(생능사사사능생) -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구나.


이 시는 돈에 관한 시다. 기생 매화가 돈에 팔려갔다가 퇴기*의 말을 듣고 돈의 위력에 새삼 놀란다. 돈으로 가문을 일으키기도 하고 몰락하기도 하는 세태를 김삿갓이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다. 원문에는 4줄이 더 있다. 추가된 4구절을 더 읽으니 예나 지금이나 돈은 똑같다.


*퇴기: 전에 기생을 하다 그만둔 여자


苟求壯士徒無力(구구장사도무력) - 힘센 장사라도 그(돈)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善用愚夫亦有名(선용우부역유명) - 바보라도 잘만 쓰면 세상에 이름을 날리며

富恐失之貧願得(부공실지빈원득) - 부자는 잃을까 두렵고 가난한 자는 얻기를 원하고

幾人白髮此中成(기인백발차중성) - 그런 가운데 몇 사람이나 늙었던가!



평범하게 벌어서 어떻게 부자 되겠어?



한국은행이 발행한 동전 더미

▲ ‘티클 모아 태산’이다! 한국은행 발행 동전들 ⓒ이재형


돈에 관한 영화도 많다. 지난 3월에 한국영화 <돈>을 관람했다. 일그러진, 우리 시대 돈에 대한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지방대 출신 조일현(류준열).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코스피 종목 코드를 모두 외우는 열성을 보인 끝에 여의도 증권가 입성에 성공한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부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몇 달째 수수료 0원을 기록 중인 해고 직전의 주식 브로커 신세다. 하루하루 신세한탄만 늘어간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전설의 작전 설계자 ‘번호표’와 연이 닿게 된다. 조일현은 선물옵션, 기업인수, 부실기업 공매도 등 돈의 맛에 빠져 위험한 거래를 계속 한다. 그러다 금융감독원 조사원이 예의주시하는 인물이 된다. 거부할 수 없는 검은 돈의 유혹에 조일현은 점점 빠지게 된다. 빠져들수록 아니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지는 늪처럼 말이다.


“평범하게 벌어서 부자 되겠어?” 영화 <돈>에 나오는 대사다. 누구나 이런 생각 해봤을 것이다. 누구나 조선시대 양반의 권세에 버금가는 21세기 양반이 되고 싶어 돈을 쫓는다. 하지만 돈은 욕망의 무지개다. 쫓으면 쫓을수록 힘만 빠진다. 돈은 쫓을수록 멀리 달아난다지 않은가! 돈에 욕심을 부리면 백발만 늘어간다는 게 김삿갓의 경고다. 돈의 무지개를 좇는 사람들은 위에서 소개한 김삿갓의 시나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見金如石)는 최영 장군의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 공간 정보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9 한국은행

1,2호선 시청역 7번 출구, 4호선 회현역 7번 출구

개관 시간: 화~일요일 10:00~17:00(월요일은 휴관)

홈페이지 https://www.bok.or.kr/museum/main/main.do

전화번호: 02-759-4881


○ 사진 촬영_ⓒ이재형

 

장소 정보

  • 서울특별시
  • 한국은행
  • 화폐박물관
  • 해동중보
  • 방랑시인
  • 김삿갓
  • 중앙은행
  • 최영장군
  • 로또
  • 돈벼락
  • 돈방석
  • 이탈리아
  • 팔라조
  • 건원중보
  • 엽전
  • 물물교환
  • 산업혁명
  • 프랑스인권선언
  • 물물교환
  • 비트코인
  • 국가중요문화재
  • 팔라티움
  • 한국전쟁
  • 영화돈
  • 류준열
이재형
인문쟁이 이재형

2018, 2019 [인문쟁이 4,5기]


이재형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17년째 살고 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생활을 했고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낸 후 요즘은 아내와 어디론가 여행 떠나기를 좋아한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말처럼. 은퇴 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발히 하며 ‘갑분싸’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생 2모작을 인문쟁이와 함께 하면서 여행과 인문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 세계에서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댓글(0)

0 / 500 Byte

공공누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보유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단, 디자인 작품(이미지, 사진 등)의 경우 사용에 제한이 있을 수 있사오니 문의 후 이용 부탁드립니다.

관련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