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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흰여울문화마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영도 토박이·마을 전문가 진순여 통장

배은희

2018-08-17


바다를 접한 가파른 절벽이라 사람이 살지 않던 곳, 섬의 유일한 산인 봉래산에서 내려오는 물길 때문에 항상 물을 머금은 땅이라 집을 지을 수 없던 곳, 일본인의 공동묘지였다가 전쟁 중에는 이름 모를 사람의 무덤이 쌓여만 가던 곳에 마을이 생겼다. 지금은 바다와 접한 마을의 풍경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매일 같이 찾는 곳, 바로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이다.



역사와 개인의 추억이 깃든 곳


흰여울문화마을의 진순여는 영선2동 15통 통장이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이곳의 역사를 꿰고 있는 마을 전문가다.


진순여 통장


“피난 온 사람들이 천막에 살았지. 식구 수에 따라서 가마니를 받아서 깔면 거기가 내 집이라.

땅을 전부 다 갈고 터 잡아가꼬 지은 집들이라고 여기가. 교회 빈터에서 엄마가 천막 짓고 내를 낳았대. 내가 태어난 곳을 알지…….”

 

어린시절 사진(자세한 설명은 아래글에 있습니다)

▲ 집 앞에서 친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가파른 길의 옛 흰여울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흰여울문화마을은 부산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면 ‘이송도’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지역이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피난민이 밀려와 형성된 마을로, 한때 굉장히 많은 사람이 북적이며 살았다.


“우리 집이 온 동네 사람 사방팔방 다 모이는 데였어. 담벼락 없을 때 앞에 가마니 쭉 깔고 밑에서 홍합 긁어 와가, 씻어가, 삶아가

그거 까묵고 국물 마시고 기타치고 노래하고 완전 여기가 동네잔치 집이었어”


흰여울길 중간에 있는 일명 ‘파란집’이 통장님이 어릴 때 살던 집이다. 좋은 추억, 아픈 추억이 많은 곳이다. 어릴 때는 가파른 절벽 위의 마을이라 많은 사람이 떨어져 다치기도 했는데,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태풍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절벽에 축대를 쌓고 길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담벼락을 쌓은 후에는 통장님도 더 이상 태풍에 집이 쓸려가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파란집은 통장님의 요청으로 마을 공동체 사무국장이 임대해서 살고 있다.


“맏머리 샘터가 이 길 입구니까 창밖으로 아버지가 오시는지 안 오시는지 쳐다보면서 기다리고 그랬다. 태풍 왔을 때 집이 반똥가리 날아 갔어.

옛날에는 더 앞쪽으로 집이 넓었지. 흰여울 길이 엄청 넓었어. 추억이 많은 집인데 오빠가 팔아 삐고 넘 집이 된 거야.

그래서 아는 사람이 들어오면 좋겠다 싶었지. 한번 씩 디다 보구로.”


파란집

▲ 일명 ‘파란집’은 마을은 흰여울길 중간 쯤에 있다. 진순여 통장님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엄마, 아버지가 갈라 묵는 거 좋아해. 구두닦이 하나가 꼭 아버지 신발을 닦아줬어. 그라믄 아버지는 ‘밥 좀 주라.’ 하는데 그냥 밥만 덜렁 주면 혼나. 꼭 상을 놔아가꼬 밥을 줘야 돼. 김치 한 개를 주더라도 상에 줘야 돼. 그래서 친구들도 우리 집에 잘 모였지. 배고프다 하면 밥도 주고.”


어려운 시절에도 이웃과 나누기를 좋아했던 부모님의 심성을 이어받아 마을의 일을 맡아서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을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본래 흰여울문화마을의 통장은 30여 년 동안 진순여 통장님의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다른 일을 하게 되면서 한두 해 정도 통장 일을 대신하게 되었고, 남편이 퇴임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통장 일을 맡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흰여울 마을공동체를 결성해서 ‘주민이 살기 좋은 마을, 이웃과 정을 나누는 마을’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국밥데이’였다.


“첫 국밥데이 할 때는 도마, 통, 김치 딱 내려놓으면 할매들이 썰어주고 다 했거든. 김치가 모자르면 집에서 갖고 와서도 대주고 했다고…….

우리가 돈이 어디 있노. 집에서 그릇 가지고 오고 숟가락 가지고 오고 직접 시락국 끓여가지고, 밥은 대량으로 하기가 힘드니까

그냥 내가 돈을 내서 밥은 사서 했다.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했는데. 마을에서 살면서 몇 십 년 만에 처음이라고. 그때가 얼마나 좋았노.”


국밥데이

▲ 마을 주민들 누구나 두레박샘터 마당에서 국밥 한 그릇 할 수 있다. (사진 정남준)


그러던 어느 날 노인들만 남아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마을이 ‘문화마을’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흰여울 마을공동체는 지자체 행정기관들이 진행하는 도시재생사업, 마을공동체 사업의 주체가 되었다. 사진, 바리스타, 미술 수업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들어왔고, 밋밋했던 담벼락에는 벽화가 그려지고 타일로 꾸며졌다. 영화 <변호인>과 TV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마을점빵과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조용하던 마을에 사람들이 오가니 활력이 생겼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불편도 늘었다. 집 마당과 같은 흰여울길에 쓰레기가 늘고, 문 활짝 열고 살던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대규모 자본이 들어오고 집값이 오르면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집을 팔고 나가는 주민이 늘었고, 그 자리에는 카페가 자리 잡게 되었다. 


변화된풍경

▲ 마을에 부동산 광고 스티커가 늘었다.(사진 정남준)


특히 지난해 마을의 중심에 있던 종교시설이 7층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해서 공동체와의 갈등이 심했다. 지반이 약한 곳이라 이웃한 오래된 집이 위험해질 수 있고, 마을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겠다는 지자체가 이러한 건축을 허가해주는 이중적 태도에도 분노했다. 하지만 공사는 결국 진행되었다. 이번 여름 태풍이 왔을 때는 마을 위쪽에서 건물을 새로 짓겠다고 기존의 집을 허무는 공사로 인해 인접 도로가 무너지는 사고도 벌어졌다. 통장님에게는 이러한 현실이 재앙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한숨 자고 일어나 창가에 달빛을 보면서 미친 듯이 옥상에 올라가니 한숨만 나온다. 흰여울마을이 어디로 흘러가는 줄도 모르면서 누가 이송도를 흰여울 마을이라 명했는가!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하예서 흰여울 마을이라고 ~허허허 그래놓고 또 오데로 흘러 보내려고 교회신축허락인가 이송도라고 그냥 냅두지. 지키지도 살릴 수도 없는 힘없는 주민들. 둥글디 둥근 달빛에 오늘도 나는 달빛이 내리는 별을 보며 한숨만 내뱉는다. 못 배운 게 한스럽다.”

-진순여 페이스북 담벼락 내용 중


진순여 통장

▲ 종교시설 재건축을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는 진순여 통장(사진 정남준)



주민을 위한 마을 염원


통장님은 지난 2006년 처음 컴퓨터를 배우면서 사진에 동영상과 음악 효과를 얹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열심히 배우러 다니셨다고 한다. 공동체 프로그램에서 사진 촬영법도 배워 사진에도 빠졌는데 남편이 몸이 편찮아 지면서 더 이상 집중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도 창밖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오면 당장 옥상으로 올라가 달빛을 찍고, 평생을 살아온 마을이지만 시시각각 다른 풍광을 보여주는 마을을 핸드폰이나 디지털카메라로 찍기도 한다. 촬영 대상은 바로 살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을 진짜 사랑하지 않으면 관심이 없다. 몇 년 전에 흰여울산책로에 배가 떠밀려와서 좌초되고 기름으로 뒤덮였을 때, 관에서 기름닦은 후에 거기를 자갈로 덮을라고 그랬다. 옛날 여기 살던 제주해녀들이 ‘세 방구’라고 부른 세 개의 바위가 그것도 동네 사람만 아는 역사라고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자갈로 세 방구까지 덮어서 안보이게 하려고 해서 내가 내려가서 절대 안 된다고 하고 자갈을 파내서 방구 모양 그대로 살리라고 했지. 마을을 사랑한다면 지키고 보존하려고 해야지.”


통장님이 찍은 사진

▲ 진순여 통장님이 찍은 흰여울마을 앞 바다 풍경


진순여 통장님은 이제 도시재생사업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아, 현재는 통장직만 수행하고 있다. 원래 임기는 내년까지였지만 이번에 통장 정년이 67세로 바뀌어 2년이 더 연장되었다.


“통장은 주민들 심부름꾼이지. 요새는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젊은 사람이 더 가진 게 없어. 할머니는 김치라도 담가서 뭐라도 만들어 먹는데 할아버지들은 음식도 못 해먹잖아. 그렇게 사람들을 두루두루 살펴 가면서 일해야지.”


진순여 통장님은 제발 마을 주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아기자기하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행정 기관에 바라고 있다. 지자체의 도시재생사업이 진정으로 주민들을 위한 사업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은 개인적 사정으로 한발 물러서 바라만 보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마을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손도손은 저 멀리서 날 보라고 손짓하고 있네요. 우리의 꿈은 사라지고 마을이 온통 아귀다툼에서 서로 쥐어뜯고 있는 것 같네요.

좀 더 이웃을 바라보는 옛이송도 바람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진순여 페이스북 담벼락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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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배은희
배은희

사람, 문화, 예술, 장소, 지역을 기록하고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빨간집>의 집사이다. 청사포 해녀, 흰여울문화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구술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지금은 당감동 주민 구술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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