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들고 노는 북성로 만의 문화

대구 북성로 축제

인문쟁이 양다은

2017-12-07

비 오는 북성로 거리를 좋아한다. 스무 살이 막 되고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일 곳을 기웃대다 찾은 곳이 북성로다. 문을 닫은 공구상 거리 사이에 불을 밝힌 포장마차에서 석쇠 불고기와 우동을 먹었다. 꼭 닫힌 철문을 보면서 공구거리의 낮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 하기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어두운 길이 더 많았던 북성로는 몇 년 사이 활기가 도는 풍경으로 변했다. 공구 박물관, 독립출판 서점, 지난 9월 열린 패션문화축제와 이번 북성로 축제까지, 북성로 에 공구를 사러 향하던 발걸음에 즐기기 위한 발걸음이 더해졌다.

해가 진 북성로 거리

▲ 해가 진 북성로 거리

북성로는 대구 읍성 4면을 따라 동서남북으로 뻗은 4개의 읍성로 중 하나이다. 1906년 일제에 의해 성이 허물어지면서 놓인 북성로는 일제강점기의 번화가 시절, 물자와 사람이 북적이던 한국전쟁 시절을 겪었다. 그 세월을 인고하며 자리한 터줏대감은 공구상이다.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없는 것이 없던 공구상의 모습도, 모여드는 사람들 중 예술가들이 애용하는 문화장소도 모두 북성로의 모습이다. 북성로 축제는 이 모든 모습이 어우러졌다.

북성로 축제 포스터 및 체험 일정

▲ 북성로 축제 포스터 및 체험 일정

올해 처음 개최된 북성로 축제는 북성로 공구박물관을 재탄생시킨 (사)시간과공간연구소에서 주관했다. 연구소 운영팀 및 진행요원은 안전모에 작업복을 입었고, 부스는 공사 현장을 알리는 안내판을 연상시켰다. 시민들이 체험하는 메이킹 클래스뿐만 아니라, 실제 공구상에서도 부스에 나와 취급하는 공구를 설명하고 시민들이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방 기기 드릴 사용 체험

▲ 소방 기기와 드릴 사용 체험

축제 사이사이 대구의 문화와도 버무려졌다. 15회째 국제오페라축제가 열리는 대구니 만큼, 포크레인과 철제가 꾸민 무대에서 공연장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오페라 공연이 열렸다. 북성로에 자리한 독립출판서점 더 폴락에서는 ‘아마도 생산적 활동’의 이름을 걸고 마켓, 백일장, 작은 전시회 등이 열렸다.

오페라 공연 모습 더 폴락의 아마도생산적활동 마켓

▲ 오페라 공연 모습과 더 폴락의 아마도생산적활동 마켓

‘반드시 느리게 걸을 것’이라고 적힌 북성로 지도를 하나 사들고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축제에는 다른 축제처럼 특산품도, 화려한 유명인도 없었다. 대신 북성로가 지내온 세월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북성로 거리 모습 북성로를 지켜온 사람들의 모습

그 길과 사람들의 일상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도 있었다. 다른 축제에서 흔히 걸려있는 어지러운 현수막보다 그 이야기가 더 눈에 들어왔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북성로의 세월과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전시 ‘메이드인 북성로’1 전시 ‘메이드인 북성로’2

▲ 전시 ‘메이드인 북성로’

축제를 설명하는 팜플렛에는 ‘깎고, 조이고, 만들자’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길에서 만난 시민들은 마치 그 문구를 실천하러 자리에 모인마냥, 공구로 깎아보고, 조여보고, 만들어 보면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

▲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

축제에 오지 않았다면, 참기름 기계가 어떻게 생긴지, 공구상 사장님들이 얼마나 오랜 세월 지켜왔는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자부하는 기술과 손으로 만든 것을 보여주는 사장님의 얼굴은 자신감이 넘쳤다. 찾아오는 시민들이 공구를 사가는 건 아니지만 사장님들의 표정에서 축제가 왜 열렸는지, 왜 축제를 찾은 자신도 즐길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손으로 만들고 시간을 쌓아온 북성로는 조금씩 또 새로움을 만나갈 것이다.

북성로를 지켜온 사람들의 모습 세월이 묻어있는 참기름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