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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빛과 영화의 어둠

종로3가 시네마테크 서울

인문쟁이 김은영

2020-01-02


극장에 간다. 눈발이 흩날리는 겨울, 코트에 손을 찔러 넣고서 종종 걸음으로 걸어 영화를 보러 간다. 극장이 가까워지자 종로3가의 귀금속 거리가 보인다. 오른쪽 코너의 은행을 돌아가면 좁은 인도 위에 '극장 풍경'이 나타난다. 길 위에 선 노점들. 군밤, 오징어, 땅콩과자, 계란빵을 파는 작은 가게들에서 흘러나오는 흰 연기와 냄새가 서울극장 가는 길의 풍경이자 징표이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라 그런지 극장 풍경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종로3가 '서울극장'가는 길

 ▲ 종로3가 '서울극장'가는 길 ⓒ김은영



종로3가의 거리



처음 서울극장에 온 건 열아홉 살이었다. 어떤 영화의 개봉 날에 맞춰 이곳에 영화를 보러 왔다. 당시엔 한국영화의 개봉 행사를 주로 서울극장에서 했다. 극장 옆 이층 카페는 영화의 주연 배우들이 앉아 있었고 길게 늘어선 관객들의 줄을 보며 배우들은 인터뷰를 하거나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 이층카페의 유리창이 지금은 겨울나무의 나뭇가지들로 가려져 있다. '임대'라고 크게 써 붙인 글씨는 몇 개월이 지나도 그대로다. 극장 앞을 길게 수놓았던 관객들의 줄은 실내로 옮긴 매표소와 함께 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서울극장에 올 때면 늘 카페가 있던 이층 창가를 올려다보게 된다. 긴장과 설렘이 섞인 얼굴로 창가에 서서 관객들의 줄을 바라보는 들뜬 배우의 얼굴을 떠올린다. 


'서울극장' 정면 모습과 극장 옆 상점

▲'서울극장' 정면 모습과 극장 옆 상점 ⓒ김은영


그때도 극장 맞은편 거리의 모습은 이러했을까. 조명 가게와 인쇄소, 간판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을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 당시엔 극장 주변의 가게들을 보지 못했다. 봤다 한들 그저 도시의 흔한 거리 모습으로 지나쳤을 것이다. 그 가게 안에서 기계를 만지고 손님을 기다리는 일상의 모습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넓은 도로가 있는 쪽이 아니라 반대편 좁을 길을 따라 가면 청계천과 세운상가가 나오고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작은 가게들이 있다는 것을 그 시절의 나는 몰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지만 내가 올려다보던 투명한 이층 카페의 유리창과 내 눈높이의 작은 가게들의 유리창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예전에 나는 몰랐다. 


극장 맞은편 거리의 가게들 모습

▲ 극장 맞은편 거리의 가게들 모습 ⓒ김은영



낙원의 시절 



오랜만에 서울극장을 찾은 이유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고전과 동시대의 독립 영화들을 비롯해 주로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를 상영하는 서울아트시네마는 2015년 봄, '시네마테크 서울'로 이름을 바꾸어 낙원상가 4층에서 서울극장 안으로 옮겨 왔다. 낙원상가에 극장이 있던 시절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찾아 영화를 봤다. 서울극장으로 옮겨온 지도 수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동안 극장을 찾지 않았다. 극장 관계자와 관련된 추문이 처음 극장과 마음을 멀어지게 했고 이후에는 낙원동 시절만 간직하며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멀어진 '아트 시네마'란 단어를 일부러 되찾지 않았다. 


서울극장 안 '서울아트시네마' 매표소 모습

▲ 서울극장 안 '서울아트시네마' 매표소 모습 ⓒ김은영


다시 찾은 아트 시네마는 낙원동 시절과 사뭇 다르다. 오래된 건물의 계단과 탁 트인 4층 높이의 야외 광장이 지난 시절의 극장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여러 개의 상영관을 가진 멀티플렉스의 건물 안에 있는 작은 공간이다. 아트 시네마가 아닌 서울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종종 매표소 앞에 와 상영관 위치를 묻는다. 매표소 안 쪽으로 있는 관객 라운지에는 그동안 아트 시네마가 꾸려온 영화 프로그램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크지 않은 볼륨으로 영화 O.S.T가 흐르고 있다. 12월에 상영되는 폴란드 출신의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Krzysztof Kieślowski) 감독의 영화 <세 가지 색: 블루(Trois Couleurs: Bleu)>의 배경음악이다. 수십 번을 들었음에도 들을 때마다 숨을 멈추게 하는 플롯의 선율과 합창 부분의 짙은 음색이 이곳이 보통의 극장과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라운지

▲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라운지 ⓒ김은영 



영화의 어둠



표를 끊고 로비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상영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마주한 성탄절 트리와 팝콘 냄새가 연말 극장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대형 멀티플렉스와 예술영화 전용관, 천만 관객의 블록버스터와 철학적인 사색을 하게 하는 예술 영화. 이 이분법의 대비가 불분명해지는 공간 구성이다. 그 둘의 차이를 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기엔 그 둘은 이어져 있고 섞여 있다.  


극장 안 로비와 '서울아트시네마' 상영관 앞 모습

▲ 극장 안 로비와 '서울아트시네마' 상영관 앞 모습 ⓒ김은영


상영관 안에는 관객이 많지 않다. 평일 늦은 오후 시간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주말 저녁에도 관객석이 꽉 차진 않는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데칼로그(Dekalog)>가 상영되는 12월에 나는 이곳을 자주 찾는다. 모두 열편의 TV 시리즈로 제작된 <데칼로그>는 가톨릭의 '십계명'을 모티프로 하여 1980년대 폴란드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두 편씩 이어서 상영되기 때문에 시리즈를 다 보려면 적어도 다섯 번 이상 극장을 찾아야 한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상영관 모습과 영화 <데칼로그> 포스터

 ▲ 영화가 시작하기 전 상영관 모습과 영화 <데칼로그> 포스터 ⓒ김은영


시리즈 모두 이미 두 번 이상씩 봤지만 스크린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이유로 시간과 비용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거나 확인받고 싶은 게 아닐까. 본 영화를 또 본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바보 같은 행동일지라도 말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일종의 바보 같은 행위를 의식적으로 하며 기쁨을 느끼는 것이기에. 같은 영화의 같은 장면에서 똑같이 눈물이 흐른다. 수십 번 들은 음악임에도 듣고 있으면 늘 같은 지점에서 숨을 멈추게 되는 것처럼. 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이어 붙여 모호하게 펼쳐 보이는 감독의 드라마적 설정과 이미지의 협화음처럼 흐르는 즈비그니에프 프레이스네르(Zbigniew Preisner)의 음악이 좋아하는 것의 이유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서울아트시네마' 간판과 극장 앞 노점

▲ '서울아트시네마' 간판과 극장 앞 노점 ⓒ김은영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온다. 아주 많은 말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지만 도리어 아무 말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게 하는 영화의 무게가 극장 밖으로 이어진다. 겨울이라는 계절 때문인지 어두운 거리의 노점 불빛이 더 밝게 느껴진다. 그제야 떠올랐다. 나에게 아트 시네마란 충분한 어둠 속에 충분히 잠겨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겨울엔 난방이 시원찮은 탓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 코끝이 얼어 있기 일쑤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어둠을 따듯하게 가슴에 품고 극장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많은 말을 만들어내지만 입 밖으로 말을 꺼낼 수 없게 만드는 영화의 어둠을 끌며 극장 풍경을 지났다. 답을 얻지 못하면서도 영화가 펼쳐 보이는 선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모호한 아이러니를 혼자 오래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 모호함은 분명해지지 않는다. 영화 음악의 애처로운 선율이 얼어붙은 겨울의 거리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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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김은영
인문쟁이 김은영

2019 [인문쟁이 5기]


서울에 살며 일하고 글 쓰는 사람. 비와 냉면을 좋아하고 자서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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