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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청년들이 직접 만든 대학, 축제를 열다

창의적 공공지대를 꿈꾸는 '0대학 아무과 대잔치'

인문쟁이 양현정

2019-10-24


대구청년센터에서 주최하는 청년주간 ‘0대학 아무과 대잔치’ 마지막 날, ‘현타운동회’가 열리고 있다. 운동회 종목은 한숨 쉬기, 슬리퍼 높이 던지기, 분노의 테이블 샷건, 풀린 휴지 빨리 감기, 박 터트리기 등으로 현실 속 분노와 짜증,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 스트레스를 단순한 힘에 실어 유쾌하게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고 한다. 


 “이걸 왜 하고 있나? 흐음” 마이크를 잡은 심EO 사회자가 반복하는 말이다. 한숨과 함께 뱉어내는 말과는 다르게 심EO의 눈과 입은 싱글벙글 장난꾸러기 골목대장처럼 웃고 있다. 그런데 덥다. 억수로 덥다. 9월 8일 오후 2시 수창청춘맨숀 옆 광장에 모인 이들은 바늘처럼 내리꽂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나? 하아’. 현타가 온다. 그럼에도 운동회에 참석한 이들은 낯설고 이색적인 이 행사에 즐거워보였다.


현타운동회 현장. 슬리퍼를 던져 올리고 있는 학생들

▲ 당신이 쏘아 올린 삼선슬리퍼 ⓒ양현정 



청년기획단, 100인의 총장이 설립한 0대학 



‘0대학 아무과 대잔치’는 대구 지역 청년, 청년 동아리, 청년 활동가, 청년 기업가, 청년 단체 등이 모여 개최하는 청년 축제로 올해로 5회를 맞이하였다. 지역 청년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작년부터 ‘0’이라는 메인 테마를 설정하여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0’은 시작 혹은 젊음의 ‘young’을 뜻한다. 작년은 ‘0대구 제로팝업시티’, 올해는 ‘0대학’이 메인 테마다. 박성익 축제 감독은 청년 자체가 수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되어 보여주고 기획하는 것이 0대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전했다. 2006년 개봉된 <억셉티드>1라는 영화에서 실마리를 얻어 2박 3일 동안 대구 청년들이 만든 가상의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게 되었단다. 가상대학 설립을 위해 청년기획단 100인의 총장을 모집하고, 워크숍을 개최하는 등 구체적인 논의를 지난 6월1일부터 시작했다. 


1. <억셉티드> : 대학진학에 실패한 이들이 만든 가상대학이 실제 대학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총장 100인 워크샵 기념사진 / 문구 : 2019 대구청년주간 2019.09.06~08 3일간 수창청춘맨숀-예술발전소- 수창공원 2019대구청년구간 총장100인기획단 사전워크샵

▲ 총장 100인 워크샵 ⓒ청년주간 


‘우리는 강요된 노력 대신 선택적 노력을 한다', '우리는 돈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압박감 대신 낭만을 꿈꾼다', '우리는 타인에게 그 어떠한 평가도 받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청년기획단 총장들이 만든 0대학의 헌장이다. 이런 대학 헌장의 기치 아래 ‘퇴사학과’, ‘알바리스펙학과’, ‘말할수없는비밀학과’, ‘청년정책학과’, ‘쿨하게이별학과’, ‘4인용출판학과’, ‘파괴해볼과’, ‘백억드림학과’, ‘내지갑상담학과’ 등의 아무 과가 개설되었다. 대학 헌장과 아무 과들이 사용하는 문장과 단어만으로도 청년들의 세계가 주로 어떤 것에 머무르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손으로말하는학과’의 경우 점자 명함, 점자 스티커 등을 만들어 보는 체험을 통해 시민과 만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 창구를 마련하고 싶다는 의욕을 내비쳤다. 


9월 7일 어스름한 저녁 7시 청년주간 ‘0대학 아무과 대잔치’ 입학실이 열렸고, ‘핵인싸 교수’ 가수 하림의 첫 강연이 실외 메인 무대에서 시작되었다. 하림의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맞은편 예술발전소 앞 광장에는 아무과 부스들에서는 학생(청년, 시민)을 기다렸다. 


청년주간 0대학 아무과 대잔치 입학식

▲ 청년주간 '0대학 아무과 대잔치' 입학식 ⓒ양현정 



청년이 만든 재미난 대학 캠퍼스 둘러보기  



샛노란 몽골 텐트와 전구가 인상적인,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0대학 캠퍼스였다. 부스 진입로에서 영화 <빅피쉬>가 떠올랐다. 영화 속 인물 에드워드는 금지된 길로 들어가서 줄줄이 이은 전구로 밤을 밝힌, 날마다 축제인 유령마을에 도착한다. 자주 떠올렸던 그 이미지가 이식해준 환상에 젖어 0대학의 캠퍼스를 걸었다. 


캠퍼스 입구에 선 사람

▲ 캠퍼스 입구에 선 이의 뒷모습 ⓒ박정은 


태풍 링링의 영향권에 든 대구의 금요일 밤, 먼 바다에서 올라오는 거센 바람은 아직 대구에 당도하지 않았고, 가을 초입에 부는 선선한 바람만 광장을 지나갔다. 0대학의 늦은 입학식 때문인지 청년주간 첫날은 마실 나온 인근 주민이 많았다. ‘소미다미’ 팀이 운영하는 ‘컬러링키링힐링학과’ 부스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많이 몰려 부스를 운영자 두 사람이 진땀을 흘리고 있다. 그들은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을 감히 물리치지 못하고 밤 열시를 훌쩍 넘기고 문을 닫았다. 


사람들로 붐비는 부스

▲ 사람들로 붐비는 ‘컬러링키링힐링학과’ 부스 ⓒ양현정 


축제 두 번째 날은 태풍 때문에 외부 행사가 취소됐고, 특강이나 토크쇼만 계획대로 실내에서 이루어졌다. 축제 마지막 날 다시 축제장을 찾았다. 첫날 유난히 사람이 많았던 ‘컬러링키링힐링학과’ 부스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몰려있었으나 다른 부스는 어쩐 일인지 한산하였다. 청년주간 ‘0대학 아무과 대잔치’가 여타의 축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축제 기간 동안 청년정책포럼, 강연, 토크콘서트 등의 강의형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이다. 부스 체험보다 강의형 프로그램 위주로 청년주간을 보냈다는 직장인 young 씨를 만나 포럼에 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물어보았다. 


“직장인의 고민, 생각을 나누는 퇴사학과에 참여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또 여러 강연을 통해 청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었지만, 그 강연에 참석한 이들은 시민단체, 활동가 등 이미 자신의 길을 찾은 이들이 많았어요. <90년대 생이 온다>라는 책에 보면, 이 세대의 특징이 단순하고 재밌는 것을 찾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포럼의 진행 방식도 거기에 머무르고 있지 않았나 싶어요. 전 재미보다는 깊이를 추구하는, 이른바 ‘선비질’을 하는 쪽이에요. 단순하고 재밌는 것도 좋지만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도 필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청년 축제, 포럼 등이 이미 길을 찾아 정착하고 있는 10~20%의 청년들의 이야기보다 길을 찾지 못한 80~90%의 목소리도 끌어안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 정책 포럼 현장

▲ 청정넷과 함께하는 청년정책포럼 풍경 ⓒ양현정  


부스를 운영했던 東 씨는 “기획자의 의도보다는 부스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에게 자율권이 주어졌어요. 부스를 운영하는 동안 몸은 힘들었지만 자유로웠어요. 만족해요. 다른 행사에 가면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피곤함이 있거든요. 부스뿐 아니라 청년주간 행사 전반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겼다는 생각이에요. 그러나 청년 세대의 유입이 적은 것이 아쉽습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대게 사실만 말하지. 

그럼 복잡하진 않겠지만 재미는 없을 거다.”2  



사실 청년주간 ‘0대학 아무과 대잔치’라는 슬로건은 꽤 흥미로웠다. 단어들의 신선한 조합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청년축제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언어 사용법에 끌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업 등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청년 세대가 만든 축제라니! ‘유머의 은밀한 근원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마크트웨인의 말에 깊이 공감 하는 바, 축제를 즐기는 관람자의 입장보다는, 축제를 움직이는 그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청년이 알고 싶었다. 그들의 힘이 궁금했다. 


9월7일부터 8일까지 3일간의 청년 축제를 위해 설립한 가상대학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일종의 퍼포먼스일 거라고 짐작했었다. 그러나 축제가 다 끝나고 난 다음, 과연 이 축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들의 퍼포먼스가 그들이 보여준 언어 사용법만큼 이색적이었다면, 축제 기간 동안 캠퍼스 안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생각하느라 즐거웠을 것 같다. 


그런데 뭐랄까? 그 재기 넘치는 언어를 나눌 일상적 실체, 즉 길을 찾지 못한 청년, 혹은 시민을 축제에 초대하는 것에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2박 3일 도심에서 벌이는 축제라는 점에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위기감이 드는 통장 잔고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하고 있는 일에 자긍심을 가진 청년들이 모여 만든 축제다.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당신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말’을 들어줄 때가 아닌가? 


그럼에도 대구의 청년주간에 펼쳐지는 청년 축제가 세대를 아우를 창의적 공공지대로 거듭날 수 있는 초석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축제를 만들기 위해 함께 모여 의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며 대화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그 재미난 실험을 시간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東쪽에서 오는 귀인이 바로 그들, ‘young’이다. 


청년 세대가 특히 많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무엇일까, 박성익 축제감독에게 물었다. “여러모로 힘든 것은 사실이나 그들을 힘들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존재로 묶어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이라는 그 속에서 각자 느끼고 고민하고 활동하는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다”는 감독의 답변에 문득 부끄러웠다. 


이미 답을 예상하고 하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다. “전 아무 말도 안하겠습니다. 이미 결정하셨잖아요.”3라고 말한 <엑셉티드>의 B가 생각났다. ‘입시 중심의 교육과 취업난이라는 사회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 질병화하는 모습’4에 대해 경고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2. 영화 <빅피쉬> 중, 아버지 에드워드의 대사

3. 가짜 대학을 세우고 법정에 앉아 있는 B의 대답

4. 김석윤, <마음이 아픈 아이를 만나는 일>, 민들레124

 

0대학 졸업장 / 문구 : 졸업장 위 사람은 0대학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학과수업에 신나게 임하였으므로 이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2019년 9월 6일 0대학총장 100인 일동

0대학 졸업장 ⓒ양현정






○ 사진 촬영 : 양현정, 박정은, 청년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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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인문쟁이 5기]


글로 스스로를 세우고 위로 받았듯 내 글이 누군가를 세우고 위로해 줄 수 있기 바란다 그들의 곁에 서서 바람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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