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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수립 100년, 생각해볼 것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과 항일 독립운동’ 강연을 듣고

인문쟁이 강태호

2019-08-08

상해 임시정부 터 모습

▲ 상해 임시정부 터, 1993년 사진 / 출처: 국가기록원 


임시정부를 수립한지 올해로 100년이다. 수립 기념일은 4월 11일이지만 여전히 9월이라는 사람이 많다. 점조직처럼 퍼져있던 조직과 인물이 한 데 뭉쳐 통합 임시정부를 수립한 시기가 1919년 9월이기 때문이다. 그때야 기념일이 무슨 대수였을까. 오로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열망과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는 신념, 그것이면 충분했다.


자그마치 3000km다. 독립의 초석 하나 놓기 위해 일제의 눈을 피해 그렇게나 옮겨 다녔다. 독립투사들은 변장하고 가짜 부부로 위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폭탄까지 던져가며 ‘대한민국’을 되찾고자 했다. 목표는 하나였다. 조국 독립, 대한독립만세.


부산시립 중앙도서관 전경

▲ 부산광역시립 중앙도서관 전경 ⓒ강태호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과 항일운동' 강의실 전경

▲ 강의 시작 10분 전, 제1연수실 내부 ⓒ강태호


지난 7월 11일 부산광역시립 중앙도서관에서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과 항일 독립운동’을 주제로 강연이 있었다. 전성현(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 강사는 “최근에 전부는 아니지만 임시정부의 흔적을 쫓아서 중국에 갔었습니다. 대외적인 어려움 또 대내적인 갈등이 끊이질 않았던 그 순간을 보고 오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강의 중인 전성현 교수 모습

▲ 임시정부 거점을 설명하고 있는 전성현 교수 ⓒ강태호


강연 내용은 임시정부의 전반적인 흐름 및 ‘생각해볼 문제’ 순이었고,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두 시간, 마치 흥미진진한 액션 영화를 본 듯했다. 늦게 도착한 사람이 끊임없이 들어오며 몇 안 되는 좌석은 가득 차버렸다. 강사가 던진 질문은 청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강의가 끝나도 참석자들은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100년 전 독립을 위해 몸을 던진 선열들을 응원하는 분위기, 청중은 중국에 남겨진 독립운동에 관한 흔적이 지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9월 11일?



생각해볼 것 중 첫 번째가 수립시기이다. 국가보훈처는 2018년 학계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2019년부터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4월 13일에서 4월 11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13일은 《한일관계사료집》을 기준으로 한 것이나, 여러 사건이 복합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정확하지 않다는 역사학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11일은 국호와 임시헌장을 제정하고 내각을 구성한 날이며, 입헌기념식도 ‘대한민국 28년(서기 1946년)’ 4월 11일에 이루어졌다는 게 기념일 변경의 근거였다. 


하지만 4월 자체에 의문이 제기됐다. 4월 11일은 ‘상해’의 선포일 뿐, 각지에 흩어져 있던 조직의 통합일인 9월 11일이 기념일로서 보다 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크고 작은 조직을 포함해 3·1운동을 전후로 국내외에 7개의 임시정부가 존재했다. 그 중 실체가 있는 것은 서울의 ‘한성임시정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노령정부’, 그리고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독립’이란 공통의 목표를 위해 각 조직은 단일대오를 이룰 필요가 있었고, 국권 회복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대내외적으로 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의회를 갖추고 있던 노령과 상해가 주축이 되었고, 결국 국민회의에서 의원 5분의 4가 상해 의정원에 편입한다는 조건으로 통합할 수 있었다. 


1919년 9월 11일 중국 상해에 정부 소재지를 둔 ‘통합임시정부’ 형태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9월 대신 ‘4월’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수립일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도망자’ 김구, 중국 여인이 숨겨줘



1932년 1월 8일 도쿄에서 이봉창은 히로히토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암살에 실패한 이봉창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뒤이어 1932년 4월 29일,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리는 일왕의 생일연과 상해 점령 전승 기념 행사에서 윤봉길 의사는 폭탄을 던졌다. 위장한 폭탄에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거류민 단장 가와바타는 그 자리에서 숨졌으며, 함께 자리한 일본군 장교와 각계 요인들은 중상을 입었다. 슬프게도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붙잡혀 오사카로 소환된 후, 같은 해 12월 19일 흉탄에 유명을 달리했다.


윤봉길 의사를 처형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일본정부가 아니었다. 당시 일제는 배후로 지목된 김구를 잡고자 혈안이 되어있던 터라, 독립투사들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김구는 외국인 YMCA 간사인 미국의 피치 목사(George A. Fitch)를 만나 간신히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운하로 유명한 도시, 가흥이었다. 자동차 보다 배가 주요 이동 수단인 곳이라 몸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김구는 그곳에서 가짜 아내인 주애보를 만난다. 20대 처녀 뱃사공인 그녀는 김구를 광동 출신의 중국인으로 알고 헌신적으로 모셨다고 전해진다. 


"내가 남경서 다리고(데리고) 있던 주애보는 거기를 떠날 때에 제 본향 가흥으로 돌려보내었다. 그후 두고두고 후회되는 것은 그때에 여비 백원 만 준 일이다. 그는 오 년이나 가깝게 나를 광동인으로 만 알고 섬겨 왔고 나와는 부부 비슷한 관계도 부지중에 생겨서 실로 내게 대한 공로란 적지아니한 데 다시 만날 기약이 있을 줄 알고 노자 이외에 돈이라도 넉넉하게 못 준 것이 참으로 유감천만이다."


_ <백범일지> 초판본 330p 중에서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초판본에 근거함

 

가흥 피난처 복원 전과 후

▲ 가흥 피난처 복원 전후 / 출처 : 독립기념관

 

가흥에서 남경까지 함께한 주애보와 김구, 1937년 11월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의 폭격이 거세지자 김구는 주애보를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그것이 다섯 해를 보낸 ‘부부’가 정을 나눈 마지막 순간이었다. 1949년 김구는 안두희에게 암살당하며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잠든다. 


위장이라 해도 중국어가 서툰 남자를 보며 진짜 광동 출신으로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애보의 흔적은 김구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독립투사들의 행적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중요 사료다. 살아 있다면 여든이 넘은 나이, 그녀의 종적과 행방은 학계에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상해 임시정부 실제 모습과 재현관 사진 비교

▲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사진과 현재 모습 비교 ⓒ강태호


강의 말미, 전성현 강사는 이해를 돕는 몇 가지 자료를 제시했다. 남경을 비롯해 여러 도시를 거쳐 촬영한 사진을 가리키며 “임시정부라 해도 대규모 단체가 아니었기에 이렇게 좁은 방에 모여 의논하는 게 전부입니다. 소모임 정도죠. 이제 그러한 흔적도 보기 힘든 것 같네요. 도시개발로 음식점도 들어와서.”라고 말했다. 사실 중국입장에서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다. 독립운동 유적 1천 곳 중 절반 정도가 중국에 있어, 정부 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이 없다면 하나둘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임시정부의 역사를 복습하는데 두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강의 후 알던 내용도 재확인하고, 독립투사들의 활동사를 되짚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수십 년 전부터 국민을 위해 힘쓰겠다는 사람들 중에서, 24살 윤봉길 의사처럼 폭탄을 던질 사람이 있는지 문득 궁금했다. 이러한 질문은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그들이 진정 무엇을 이루고자 목숨을 바쳤는지 함께 생각해볼 시간이다. 




○ 참고자료

- 도서 ‘장강일기’ / 정정화 지음

- 도서 ‘백범일지’ 초판본 

- EBS 다큐 / '역사 빛 청년 4부 ‘무라이의 안경’

- 임정 수립일 관련 기사 / 링크

- 김구와 주애보 관련 기사 / 링크

- 중국에 남아 있는 임정 흔적 뉴스 보도 / 링크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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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강태호
인문쟁이 강태호

2019 [인문쟁이 5기]


강태호는 인문학집필연구소 한주서가 대표 작가이다. 제10회 해양문학상에 입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입상작인 중편소설 <바다 몬스터>는 문장 아래 문장을 숨겨놓았다며 호평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천 만 영화 속 부산을 걷는다》가 있으며 기획출판, 첨삭, 글쓰기 강의 등으로 ‘글’의 매력을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또한 관광, 인권, 문화제 등 공기관에서 주관하는 SNS 기자단에 참여하며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자 노력 중이다. 망각된 역사를 알리려는 의지가 강해 인문학적으로 어떤 해석을 풀어낼지 앞으로가 기대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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