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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의 추억을 찾아가다!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 청솔야학

인문쟁이 이재형

2019-07-11


고등학교 때 심훈의 ‘상록수’를 읽었다. 상록수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농촌 소설이다. 가난하고 낙후된 농촌이 그 공간적 배경이다. 심훈이 <상록수>에서 청석골이라 부른 마을은 지금의 경기도 안산시 본오동의 샘골마을이다. 지금과 달리 과거엔 상당히 낙후된 곳이었나 보다.


<상록수> 등장인물 중 채영신은 소설의 주인공이자 농촌 계몽 운동에 앞장서는 인물이다. 농촌 계몽 운동을 함께하던 박동혁과 연인 사이다. 채영신은 농촌 계몽 운동에 헌신한 실제 인물 최용신(崔容信)을 모델로 한 캐릭터라고 한다. 소설에서 채영신은 예배당을 빌려 야학(夜學, 야간 학교)을 운영해 가난한 농촌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농촌 문맹 퇴치 운동이다. 야학은 일제 강점기에 크게 발전했다.


해방 후에도 야학은 꾸준히 이어졌다. 가난해서 학교를 가지 못하거나 공장에 다니는 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운영됐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하는,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이다. 그러다 초등학교는 물론 중등 무상 교육 시행에 따라 야학은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야학의 주된 대상이던 근로 청소년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청솔야간학교 경기도교육감 지정 학력인정문해교육 프로그램운영기관

▲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에 있는 청솔야학 ⓒ이재형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달동네 야학(夜學)



하지만 야학의 명맥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은 달동네로 유명하다. 지금은 재개발로 상전벽해지만 산동네 풍경은 여전하다. 이곳에 청솔야학이 있다. 모란고개 정거장에 있는 건물 3층에는 ‘검정고시 무료수업’이란 글씨가 크게 붙어 있다. 건물 입구에도 학생 모집 현수막이 있다. 이제 고등학교까지 무상 교육을 하는 시대인데 야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과연 누구일까?

 

할머니 이거 무슨 글씨야~ 할머니 지금 바쁘다.

할머니 글자 모르나 할머니 지금 바삐 바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시픈 손자 사랑스럽고 이쁜 손자

지금 이 순간은 안 이쁘다. 내일 다시 이뻐지여나


_ 이숙향 학생의 시 <이쁜 손자>


시작 김춘자 파란 하늘 해맑은 시절 물지게 지고 뒤뚱뒤뚱 친구가 볼세라 허둥지둥 소끌고 꼴먹이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흰머리 휘날리며 그리운 책가방 청솔학교가 나의 선물 꿈을 이루리라. 이제 시작이다  책가방 메고 방글방글 웃으며 산다 친구야 학교 가자   세종상(시장상) 이쁜 손자 이숙향  할머니 이거 무슨 글씨야~ 할머니 지금 바쁘다. 할머니 글자 모르나 할머니 지금 바삐 바쁘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시픈 손자 사랑스럽고 이쁜 손자 지금 이 순간은 안 이쁘다. 내일 다시 이뻐지여나  나의 꿈 한영애 배움의 꿈은 아직 멀기만 한데 내 마음 긴 여로에 올라 배움의 꿈 한자락 키워본다 삶은 고해이고 꿈은 희망인데 더 부서지기 전에 갈고 닦아 청솔 푸른 숲에서 큰 꿈 이루워보련다 배움을 향한 그리움이 메아리 칠 때 배움의 꽃은 침묵하고 있어도 향기가 절로 피어나리라   시작 유윤숙 경기도의회 의장상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난 이 세상과 만났다 이때는 고달픈 나의 청춘이 시작될 줄 아무도 몰랐다 배움과는 멀어지고 청춘이 다 가도록 미싱을 밟아야 했다 배우지 못해 답답하고 서러워 울던 수많은 날들을 보내고 이제야 용기가 생겼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싶어 떨리는 마음으로 책가방을 챙긴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끝나지 않더라도 도전할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청솔야학 재학생이 쓴 시화 작품 ⓒ이재형


청솔야학에 들어가 보니 벽에 붙은 시화(詩畵)가 눈길을 끈다. 그 중 이숙향 학생의 <이쁜 손자>란 시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손자까지 둘 정도로 나이가 드신 분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도, 글을 배우느라 공부하는 순간은 안 이쁘단다. 손자를 잠시 멀리할 만큼 배움의 열정이 뜨겁다.


저녁 6시30분. 중장년 여성들이 청솔야학으로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초등반, 중등반, 고등반 교실로 들어간다. 책상에 앉아 책과 노트를 펼쳐놓고 밀린(?) 숙제하기 바쁘다. 청솔야학 늦깎이 학생들이다. 청솔야학은 현재 초등반 8명, 중등반 20명, 고등반 20명 등 전교생이 48명이다. 수업은 매일 7시부터 밤 10시10분까지 진행된다. 옛날 야학의 학생은 근로청소년이었는데 이제 그 대상이 바뀌었다.



배움의 기회 놓친 중장년 여성, 학생이 되다



P119 수소 산소 탄소 질소 규소 헬륨 염소 아이오딘 수은 네온 칼슘 나트륨 마그네슘 철 금 은 구리 알루미늄

▲ 청솔야학 중등반 수업 모습 ⓒ이재형

 

사십 년 전 편지

▲ 배움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청솔야학 학생들 ⓒ이재형

 

저녁 7시30분 중등반에 들어가니 김준일 교사의 1교시 과학 수업이 한창이다. 칠판에는 원소 기호가 한글로 적혀있다. 학생들은 노트에 원소 기호를 빼곡히 적으며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모드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모두 여성이다. 남성은 한 명도 없다. 중학교반 여성들은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옛날에 우리네 부모들은 가난해서도 그랬지만 ‘공부해서 뭐해? 살림이나 잘하면 되지~’ 하고 여자들은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그 때 배우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청솔야학에 온 것이다.


쭉쭉 읽어라

▲ 청솔야학 고등부에 다니는 차영선 씨 ⓒ이재형


고등부에 다니고 있는 차영선(60세) 씨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였다. 아이들 다 키워 출가시킨 후 가슴 속에 남아 있던 배움에 대한 열정이 꿈틀거렸다. 2017년 11월 야학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 45년 만에 중학교 문턱을 넘은 것이다. 1년 만에 중학교 검정고시 패스 후 지금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후에는 대학도 진학하고 싶다. 100세 시대인데 남은 40년을 위해 열심히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청솔야학은 성인문해 교육기관(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학력인정 문해교육기관(경기도교육청)으로 지정됐다. 야학이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교실은 물론 교무실도 있다. 지난 6월15일엔 수학여행도 떠났다. 국어시간에 정철의 ‘관동별곡’을 배우는데, 그 배경인 강원도 강릉으로 갔단다. 학생들은 소녀시절 학교를 다니지 않아 소풍 도시락 한 번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수학여행 때는 도시락을 싸갔다. 학교에서 내준 전세버스를 타고 떠나는 수학여행, 얼마나 좋았을까? 



야학 운영에 가장 큰 걸림돌은 학교 건물



교훈 참된 교육 바른 실천 생활 목표 습득하기 생활하기 실천하기

▲ 11년째 청솔야학을 이끌고 있는 노기현 교장 ⓒ이재형


야학은 교육비, 교재비 등 모든 게 무료다. 이런 비용은 어디서 나올까? 이 학교 노기현 교장은 대학 2학년부터 야학을 시작했다. 37년간 교사로 재직하다 은퇴한 후 청솔야학 교장으로 인생 2막을 열어가는 중이다. 11년째 야학을 이끌고 있는 노교장은 ‘요즘 야학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성인문해(文解)교육 차원에서 지원을 해준다. 그 돈으로 야학을 운영하는데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서 매년 11월 재학생과 졸업생의 '후원의 밤'을 통해 비용을 일부 충당한다. 야학을 운영하는데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임대료다. 국가에서 공공시설을 무료 또는 저가로 임대해주면 야학 운영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 대상의 무상 교육도 신경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솔야학은 1989년 성남성당에서 대학생 교사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처음에는 천막에서 시작했다. 그 후 이곳저곳 전전하다가 3년 전 지금의 건물을 임대해 이사를 했다. 야학 운영비 대부분이 임대료로 나간다. 다행히 야학 교사로 봉사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난다. 청솔야학의 교사는 직장인, 현직 교사, 은퇴 교사 등 약 25명이다. 예전에는 대학생이 많았는데, 요즘 취업난 때문인지 지원자가 많지 않다. 시대 변화에 따라 야학 교사도 대학생에서 다양한 직종으로 변했다.



평생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 야학 교사로



 

▲ 청솔야학 출신 박순애 교사(좌)와 노기현 교장(우) ⓒ이재형


청솔야학 출신의 교사도 있다. 박순애(67세) 교사는 봉제 공장에서 평생 일했다. 가난해서 공부를 못했다. 60살이 넘은 2003년 청솔야학에 들어와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2016년부터 초등부를 만들어 교사로 봉사한다. 원래 초등부는 없었는데 박교사가 노기현 교장에게 만들자고 건의해 개설된 것이다. 


박순애 교사는 ‘내가 이곳에서 배웠으니 나 같은 사람들에게 다시 그 배움을 돌려줘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지금 4년째 봉사 중인데 힘닿는 데까지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 노기현 교장과 졸업 앨범을 보며 추억에 젖는 박순애 교사 모습을 보니 사제지간이 아니라 오누이같다.


성인 초졸 중졸 고졸 검정고시 무료 수업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지정 청솔 초중고등학교 753-8995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지정 성인문해교육기관 성인 초졸 중졸 고졸 검정고시 무료

▲ 30년 역사의 청솔야학은 지금까지 700여 명의 검정고시 합격자를 배출했다. ⓒ이재형


무상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데 요즘도 문맹(文盲)이 있을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노기현 교장이 보여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않은 국민이 160만 명이다(「2018 성인 문해교육 지원사업 운영지침서」 : 교육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이들에게 무상 교육을 지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국가의 의무인데, 지금 야학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느낌이다.


“배움과는 멀어지고 청춘이 다 가도록 미싱을 밟아야 했다”

_ 청솔야학 유윤숙 학생의 시 <시작> 중에서


우리네 어머니는 배우지 못해 답답하고 서러워 울면서 수많은 날을 보냈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자식들 뒷바라지해서 출가시켰다. 그리고 이제야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간다. 그 어머니들을 품어주는 곳이 바로 야학이다. 소설 <상록수>에서 농촌 계몽 운동으로 문맹을 깨우치던 그 때처럼 말이다.



○ 공간 정보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성남대로 1189

전화번호 031)753-8995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hungsolyahak



사진 촬영_ⓒ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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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이재형

2018, 2019 [인문쟁이 4,5기]


이재형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17년째 살고 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생활을 했고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낸 후 요즘은 아내와 어디론가 여행 떠나기를 좋아한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말처럼. 은퇴 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발히 하며 ‘갑분싸’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생 2모작을 인문쟁이와 함께 하면서 여행과 인문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 세계에서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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