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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거기에 있는 자연을 탐하는 방법

매곡리 자연학교

인문쟁이 양현정

2019-05-27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매곡리에 있는 자연학교는 목사님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주중에는 대구와 근교 어린이집 친구들이 찾아와 밭을 일구고 개와 고양이와 닭과 바람과 나무와 흙과 놀다간다.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토요일에는 로컬푸드 착한살림의 국짱님과 아이들 부모가 방문해 농사를 짓고 도예와 목공을 하곤 한다. 올 해는 주말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 십여 년 가까이 자연학교를 운영하며 쌓인 피로도 풀고 앞으로의 학교과정 정비를 위해서다. 학교의 안식년이다. 학교는 휴교상태지만 이곳을 찾았던 아이와 부모들은 늘 해오던 대로 매월 둘째 주 넷째 주 학교에 등교하기로 했다. 프로그램 없는 자발적 학교가 올해가 끝날 즈음 어떤 모습으로 진화하게 될지 궁금하다.



자연학교 가는 길



매곡리 자연학교까지는 대구 북구에서 안동 군위 방면인 5번 국도를 타고 30분 정도 걸린다. 물건을 가득 실은 대형트럭들이 위협하지 않는 국도를 따라, 산비탈에 서 있는 나무들과도 눈 한번 맞추고, 문득문득 보이는 전원주택에 대한 아련함도 한번 곱씹으며 천천히 달리면 된다. 가다가 무엇인가 눈을 잡아끄는 것이 있으면 잠시 멈춰보면 더 좋겠다.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을 발견하면 일부러라도 그곳으로 방향을 돌려보면 어떨까. 천천히, 한눈팔고, 해찰 부리는 일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목적지까지 빠르게 달려갔건 우회하여 갔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잘 따라왔다면, 400년은 족히 넘은 느티나무와 만나게 된다. 그 곳에서 좌회전하면 탱자나무로 벽을 친 과수원이 보이고 아이들이 그리고 써넣은 ‘매곡리 자연학교’ 벽화와 만나게 된다.


매곡리 자연학교 입구 등 ⓒ매곡리 자연학교매곡리 자연학교 입구 등 ⓒ매곡리 자연학교

▲ 매곡리 자연학교 입구 등 ⓒ매곡리 자연학교



자연학교 풍경



자연학교에 도착하여 일행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잡초를 뽑는 일이다.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는 이유는 땅에서 얻어낸 작물로 배를 채우기 위함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흰 구덩이가 나오고, 잠에서 덜 깬 청개구리가 호미질에 잠이 깨고, 울창하게 숲을 이룬 잡초들 사이에 우글거리는 좀사마귀와 대면하게 해주는 땅이지만, 어쩐 일인지 땅은 부드럽기만 하다. 손톱에 낀 풀물들, 흙가루가 붙어 지문의 결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는 손가락을 보고 있으면 땅이 나의 몸 어딘가에 인장을 찍고 자기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것 같다. 묵묵히 몸을 놀려 일을 하다보면 수다는 줄어들고 단조로운 몸놀림만 지속된다. 세상이 순간 고요해진다. 한없이 솟구치는 자만이 우두둑 땅에 쏟아지는 듯한 착각, 비로소 자연학교에 다니러오는 이유가 실감나는 때이다. 고작 잡초를 뽑는 일이 묵언 수행하듯, 득도의 과정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자연학교에서는 매번 하게 된다. 땅을 만지는 일은 직접 해봐야 느낄 수 있다.


▲밀 심는 사람들 ▲ 나무 그네가 있는 자연학교 풍경 ⓒ양현정▲밀 심는 사람들 ▲ 나무 그네가 있는 자연학교 풍경 ⓒ양현정

▲밀 심는 사람들, 나무 그네가 있는 자연학교 풍경 ⓒ양현정



자연학교 아이들



놀이터 디자이너 편혜문은 “그것이 놀이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가장 큰 경계는 돈이 드는지 안 드는지”라고 말했다. 이미 다 만들어진 공간에 가 노는 것이나 체험학습은 진정한 놀이가 되지 못한다고도 주장한다. 자발적 놀이가 아니라 수동적 놀이이기 때문이다. 자연학교도 준비된 공간에 아이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아이들은 웬만해선 자연학교를 벗어나지 않는다. 때로 목사님의 손을 잡아끌고 학교를 벗어나 물가나 논에 가자는 친구도 있지만, 쉽게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찾아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좀 더 끌리는 곳에 가 무엇이든 한다. 누군가는 줄타기를 하고, 누군가는 나무에 올라가고, 누군가는 흙을 만지고, 누군가는 지붕에 올라가려다 목사님의 호통에 끌려 내려 오기도 하며 각자의 놀이에 집중한다. 물과 밥만 챙겨주면 아이들은 종일 논다. 들판을 뛰어다니는 것이 좋은 아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좋은 아이, 동물들과 노는 것이 좋은 아이, 흙과 나무로 무엇인가를 만들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쉼 없이 움직인다. 바닥에 배를 깔고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있는 아이도 있다.


오래 전에 경기도에서 살고 있던 고등학생이 자연학교에 와 멍석에 누워 밤하늘을 보다 펑펑 울었다고 한다. 하늘에 별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고 고백하며. 학생이 왜 울었는지 구체적인 사연은 모른다. 그러나 학생의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 줄타기하는아이 ⓒ매곡리자연학교 ▲ 소원아, 어디가니? ⓒ양현정▲ 줄타기하는아이 ⓒ매곡리자연학교 ▲ 소원아, 어디가니? ⓒ양현정

▲ 줄타기 하는 아이 ⓒ매곡리자연학교, 소원아, 어디가니? ⓒ양현정 



내년의 자연학교는?



1999년 매곡리에 작은 교회를 세운 곽은득 목사님은 교회프로그램의 하나로 지역주민 선교차원에서 생명교육과 생태학습을 시작하였다. 이 프로그램이 발전해 2004년 대안교육위탁을 받아 자연학교를 개교하게 되었다. 한때는 유명세를 타고 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학교였다. 당시 자연학교에서는 서각실, 천연염색실, 도예실, 농기계공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도예실과 서각실만 문을 열어두고 있다. 자연학교를 처음 시작한 곽목사님은 한 번도 뵙지 못했다. 근처에서 농가민박학교를 운영하시고 계시지만 목사님 정년퇴임 후 새 세대가 일구어가는 자연학교이니만큼 일부러 그곳을 찾지 않으신다고 한다.


자연학교의 번영이 한참 지난 어느 시간에 연을 맺어 이 년째 이곳을 찾고 있다. 때때로 목공실과, 도예실 안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느끼곤 한다. 삶을 배우는 교육을 지향했던 곽목사님의 철학이 자연학교 곳곳에 스며있는 듯한 착각이 들고 과거의 시간이 이곳을 찾은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어떤 장소는 처음 가보는 곳이어도 내 안의 시간을 끌어내는데, 자연학교가 그런 곳이다. 자연학교는 이곳에서 보내지 않았던 누군가의 유년을 고스란히 꺼내어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밥 먹어라’라는 말이 들리기 전까지 해가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았던 공터와 골목의 시간들이 재현될 수 있는 곳이다. 공간은 욕망을 바꿀 수도 있다. 빈번하게 찾아와 이곳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획일적인 욕망을 쫓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피로를 씻는 것이며, 보다 자연과 가까운 삶이 주는 안락함을 맛보는 일이다. 그저 거기에 있는 자연을 탐하는 방법은 그곳에 가 자주 안기는 것이다.


현재 자연학교를 지키고 계시는 목사님 부부는 이곳이 그저 아무나 찾아와 머물다 가는 편안한 곳이 되길 바란다. 오래된 것들을 품고 있는 자연학교지만, 자연학교는 늘 새 세대를 꿈꾼다. 안식년은 새 시대를 열기위한 숨고르기다. 그럼에도 지금도 자연학교의 시간은 흐르고 있다.


▲ 서각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는 원목사님 ▲  아이들에게 모내기 시범을 보이고 있는 국짱님 ⓒ매곡리자연학교▲ 서각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는 원목사님 ▲  아이들에게 모내기 시범을 보이고 있는 국짱님 ⓒ매곡리자연학교

▲ 서각에 대해 설명하고 계시는 원목사님, 아이들에게 모내기 시범을 보이고 있는 국짱님 ⓒ매곡리자연학교



○ 공간 정보

주소 : 경북 군위군 효령면 용매로 814-9 매곡리자연학교


○ 사진 촬영_양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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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권 양현정
인문쟁이 양현정

2019 [인문쟁이 5기]


글로 스스로를 세우고 위로 받았듯 내 글이 누군가를 세우고 위로해 줄 수 있기 바란다 그들의 곁에 서서 바람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다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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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사진 이미지

박**

2019-05-27

매곡리 자연학교 만큼이나 감사한 글이네요^^ 글 잘읽었습니다. 어찌보면 쉽게 갈 수있는 시골 풍경이지만 기자님의 글덕분에 한결 더 소중한 곳이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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