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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일상의 쉼표가 찍히는 공간

수원, 공공한옥

인문쟁이 진윤지

2017-09-04

 

수원 화성 화서문을 마주하고 담장도 없이 지나가는 이 누구나 맞아주는 한옥이 있다. 가지런히 얹힌 기와지붕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나무향이 가는 발걸음을 붙잡는 곳, 아직 이름도, 명패도 붙어 있지 않은 수원시 ‘공공한옥’이다.

화서문을 배경으로 행궁동에 자리 잡은 공공한옥은 마치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이 공간에 어울린다. 이곳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통문화 교육의 장으로 쓰이고 있다. 피리, 해금, 장구와 같은 악기 수업 이외에 판소리, 시조창 같은 우리 소리를 배우는 강좌도 열려 있으며 한학 강좌도 마련돼 있다. 주변 행궁동 공방들의 작품도 상설 전시되어 전시장의 역할도 담당한다. 주말이면 공방 체험 프로그램이 시민들을 맞이한다.


수원공공한옥수원공공한옥 내부

 ▲ 수원공공한옥 / 수원공공한옥 내부

 

우리 전통문화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 가치에 대해 누구나 동의해도 우리의 생활은 지극히 서구화되었고 쉽게 만날 수 있는 문화 역시 외래의 것이다. 전통문화를 접하거나 배우기 위해선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발품을 팔아야한다. 한옥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지만 만날 곳이 없다. 역사 유적지에서 만나는 한옥은 내부 출입이 금지된 공간이다. 아쉽게도 반쪽짜리 감상에 그치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광지에서 관광코스로 만나는 공간이 아닌 공공한옥의 존재는 더욱 반갑다. 한옥에 살아본 적도, 한옥에 사는 조부모님도 없는 딱 요즘 사람들에게 공공한옥은 일상의 영역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시도한다.


화성이 일상 배경인 행궁동에 ‘공공한옥’이란 화룡점정을 더하다  

 

화서문은 화성의 4대문 중에서 가장 일상적인 공간을 내어준다. 진입이 금지되지도 않았으며 문은 열린 채로 가장 일상의 공간에 접해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그저 통행로로 화서문을 수시로 지나다닌다. 야트막한 언덕 높이로 화성 성벽을 따라 사람들은 화서문을 위로 지나다니기도 하고, 평지인 문 아래를 통행로로 이용하기도 한다. 공공한옥이 이곳에 자리 잡은 건 우연이었을지 몰라도 정말 잘 맞춘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된 느낌을 준다.

 

수원화성 화서문

 ▲ 수원화성 화서문


이곳의 시간은 홀로 더디 흘러가는 듯 그저 평화롭다. 한옥의 너른 창문으로 보이는 창밖 풍경은 마치 벽에 걸린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화성 주변 행궁동 일대는 간판과 도로정비를 일찌감치 끝낸 터라 도심이어도 그 혼잡함에 심신이 고달프지 않다.

창밖으로는 페달을 밟아 화성을 관람하는 벨로택시가 유유히 지나간다. 창살 틈 사이로 부셔져 들어오는 햇살과 한옥의 진한 나무향, 평화로운 도시 풍경까지 일상의 쉼표를 여기에서 맞이한다. 


공공한옥에서 바라다 본 풍경벨로택시가 유유히 지나간다

 ▲ 공공한옥에서 바라다 본 풍경 / 벨로택시가 유유히 지나간다


한옥에서 만나는 이름만 ‘작은 음악회’

 

공공한옥에서는 주말마다 다채로운 국악공연이 선을 보인다. 지난 5월부터 7월 30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공연은 끝났지만 이후에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가야금 연주 외에도 실내악 3중주, 민요 연곡에 판소리 눈대목까지 무료공연으로 만나기엔 미안할 만큼 짜임새 높은 공연들로 채워져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엔 가야금 연주와 민요 연곡이 시민들을 만날 채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화서문을 배경으로 가야금 연주가 시작됐다. 한여름 오전부터 쨍한 날씨조차 잠시 잊게 만드는 청아한 음률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연주자가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벼우나 아름다운 손놀림으로 현 위를 넘나든다. 연주자의 몸짓만큼이나 고운 가락이 쏟아져 나온다. 


작은음악회작은음악회 가야금 연주

 ▲ 작은음악회 / 작은음악회 가야금 연주


두 번째 공연으로 민요 연곡이 이어졌다. 공연자는 더운 날 활기를 선사하려 뱃노래를 선택했다는 말을 전한다. 북과 가야금 연주에 맞춘 구성진 민요가락이 지나가는 행인마저 불러 세운다. 공연자의 재치 넘치는 입담도 한 몫 한다. 휴일 오전, 동네 마실 나온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구경하는 풍경이 유난히 정스럽다.

공연자는 ‘수원아리랑’을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요 수원 아리랑.” 관객과 주고받는 민요 가락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손뼉장단을 맞춘다. 화서문이 바라다 보이는 공공한옥 앞마당, 끈적하게 달라붙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풍경과 공연의 정취는 청량함마저 안겨준다. 


작은 음악회 민요연곡

 ▲ 작은 음악회 민요연곡


전통문화와 공예체험을 가까운 곳에서 만나다  

 

공공한옥에서는 한학, 판소리, 시조창을 비롯해 피리, 대금, 해금, 민요장구 등 다양한 전통문화교육을 받을 수 있다. 두 달을 한 기수로 하여 매주 한 번씩 두 시간의 강습을 갖는다.

전통문화교육을 가까이에서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에 강습은 인기가 매우 좋은 편이다. 수원시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이곳 강습은 1기 수강자들이 대부분 2기 수강을 이어가고 있고, 입소문이 제법 퍼져 조기에 신청이 마감된 강습도 몇몇 있다. 장구처럼 개인 소장이 어려운 악기는 이곳에서 대여를 해주고 있다. 한옥에서 만나는 전통문화 강습이라니 구미가 당기는 것도 사실이다. 간혹 ‘배움’에는 ‘장소’가 주는 특별함과 영감도 꽤 중요하단 느낌을 받는다. 


전통문화교육 공간인 공공한옥공예품전시공간

 ▲ 전통문화교육 공간인 공공한옥 / 공예품전시공간


이곳에서는 주변 공방의 공예품을 상설전시하고 있다. 주말에는 공방들이 돌아가며 공예체험 기회를 선사한다. 방문한 토요일엔 마침 한지책 만들기와 토분 꾸미기 체험이 한창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정신을 집중해 자신만의 공예품 하나를 탄생시킨다. 그 모습에 현혹되어 ‘백문이불여일견’ 아니 ‘백견이불여일행’이란 마음으로 털썩 의자에 앉았다. 색색깔 곱디고운 한지의 자태에 이미 눈을 뺏긴 터다. 보는 것보다 해보는 것의 묘미는 확실히 달랐다. 공방 예술가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나라 전통 오침안정법으로 나만의 한지공책을 만들어 본다. 원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서책 제본 방법은 다섯 군데 구멍을 뚫어 실로 꿰매는 오침안정법이라 한다. 서책 전체에 골고루 힘을 받기에 오침안정법이 가장 튼튼한 제본 방식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한 코 한 코 마치 바느질 하듯 책을 제본해본다. 이 공간과 시간에 사로잡혀서일까? 간단한 듯해도 새로움을 만나는 느낌은 또 다르다. 이렇게 또 하나를 보고, 접하고, 배워간다.


공예품전시1공예품전시2

주말공예체험한지책만들기체험

 ▲ 공예품전시 / 주말공예체험 / 한지책만들기체험


빼꼼히 들여다보는 관광지 한옥 이외엔 딱히 한옥을 가본 적도 없고, 살아본 적은 더더욱 없는 도시 촌놈이 이렇게 또 새로운 멋과 정취를 깨우쳐간다. 시간마저 평화로운 이곳에서 잊고 있던 일상의 쉼표가 새겨졌다.  




사진= 진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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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안내 

수원시 공공한옥 전통문화강습 안내 및 신청

☎ 070) 4212-7798,7799

매주 토, 일요일 11시~3시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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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진윤지

[인문쟁이 3기]


진윤지는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고, 커다란 통창 너머 햇살이 품어주는 동네 도서관을 사랑한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세상이 정의로워지는 것에 깊은 열의을 갖고 있다. 세상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열정 가득한 휴머니스트를 꿈꾼다. 인문학을 벗삼아 인생에서 성찰의 거울을 게으름부리지 않고 말갛게 닦고 싶어서 인문쟁이에 지원하게 됐다. 누군가에게 세상에 대한 생각 한 조각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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