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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겨울의 기록

서초 남부터미널에서 우면산까지

인문쟁이 김은영

2020-02-04


비교적 작은 터미널이 있다. 높은 빌딩과 복잡한 도로와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서울에서 가장 큰 버스 터미널과 비교하면 그리 크지 않은 버스 터미널이 그곳에 있다.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남부터미널. 본래는 화물트럭이 정차하는 화물터미널이었지만 1990년부터 서울 밖으로 오가는 시외버스들이 정차하면서 일반 승객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때 지어진 임시 건물이 여전히 남아 있다. 북쪽으로는 강원도 주문진과 남쪽으로는 경상남도 통영까지 가는 버스들. 터미널과 멀지 않은 곳에 전국으로 향하는 고속버스가 즐비한 고속터미널이 있지만 이 작은 터미널은 이곳만의 정취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남부터미널 정문과 터미널 안 매표소

▲남부터미널 정문과 터미널 안 매표소 ⓒ김은영



예술의 전당으로 가는 마을버스



터미널 밖에는 가까운 거리를 순환하는 마을버스 정류장도 있다. 남부터미널역 앞에서 서초 22번 버스와 11번 버스를 타면 예술의 전당으로 향한다. 걸어서 가면 10분 정도이고 버스로도 두 정거장 거리지만 대중교통으로 예술의 전당에 가는 사람들은 주로 이 버스들을 이용한다. 버스는 여름이면 폭포처럼 물줄기가 쏟아지는 ‘아쿠아 아트 육교’를 지나 예술의 전당 앞에 도착한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와 디자인 미술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와 디자인 미술관 ⓒ김은영


몇 해 전 겨울에는 오페라 하우스 앞 광장에 꽤 넓은 스케이트장이 있었다. 낮이면 헬멧을 쓰고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신고 엉금엉금 걸어 얼음판 위로 미끄러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케이트장 밖에 있던 큰 난로와 시계탑 아래에서 스케이트를 신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다. 여름 내내 사람들의 탄성을 끌어내던 세계 음악 분수도 지금은 천막으로 덮여 있다. 겨울의 광장은 광장을 채우는 사람들이 드물어 그런지 더 넓고 빛나 보인다. 길게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 사이로 예술의 전당에서 사는 고양이가 천천히 걸어간다. 



생생한 관람과 지나간 예술의 흔적



아르코예술기록원 문헌정보실

▲아르코예술기록원 문헌정보실 ⓒ김은영


예술의 전당은 주로 관객들이 라이브로 상연되는 공연을 보거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찾는다. 혹은 전당 내 광장을 산책하거나 예술 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그런데 디자인 미술관 2층과 3층에는 조금 색다른 장소가 있다. 지금, 같은 공간,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라이브가 아닌, 한때 생생하게 펼쳐졌던 공연과 전시를 기록물 형태로 볼 수 있는 ‘아르코예술기록원’이 바로 그곳이다. 예술기록원은 우리나라의 예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기관으로, 1979년에 설립되어 현재는 예술의 전당 내 있는 서초 본원과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 위치한 분원으로 나누어져 운영되고 있다. 


참고-인문360 아르코예술기록원 소개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4hJFoNaZk0&t=1s


문헌정보실 내 서가

▲문헌정보실 내 서가 ⓒ김은영


한 번 상연되고 나면 다시 볼 수 없는 공연을 카메라 등의 매체로 기록해 그 시간, 그 장소에 없었던 이들도 그때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기록 본연의 목적이 아닐까. 마치 사진이나 일기로 과거의 일들을 다시 ‘지금’으로 불러오는 것처럼 말이다. 예술기록원 문헌정보실에는 다시 지금으로 불러올 수 있는 과거의 예술들이 머물러 있다. 서가에 꽂혀 있는 음악 · 미술 · 문학 등의 예술 서적들은 다른 도서관들의 자료들과 그다지 차이점이 없는 듯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예술’과 관련된 책들만 한정돼 있다는 것. 그런데 그 예술 서적들도 최신 신간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고 누군가 기증한 낡고 허름한 책들이 서가의 한 면을 채우고 있다. 그 ‘낡음’이 이곳의 특색이랄까. 나무로 만든 빛바랜 책장들과 저마다의 깊이로 꽂혀 있는 책들. 그 들쑥날쑥한 책들의 판형이 이 문헌정보실의 매력이다. 다른 도서관이라면 서고 깊숙이 잠들어 있을 옛 판형의 책들도 이곳에서는 비쭉 튀어나온 서가의 책으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예술기록원 영상음악실

▲예술기록원 영상음악실 ⓒ김은영 


2층 문헌정보실에서 한 층 올라가면 기록원의 영상음악실이 있다. 제각각이었던 문헌정보실 자료들의 겉모습과 달리 영상음악실의 자료들은 똑같은 형태의 상자에 담겨 같은 색의 라벨이 붙어 있다. 우리나라 무대에서 상연된 공연이나 외국의 공연 영상, 그리고 여러 장르의 음악 음반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영상자료뿐 아니라 공연의 팸플릿이나 포스터 이미지들도 열람할 수 있다. 


영상음악실 내 자료들

▲영상음악실 내 자료들 ⓒ김은영


영상음악실 복도에는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복도 끝 심포니실과 챔버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로 여럿이 함께 공연물을 감상하고 싶은 사람들이 대관료를 내고 이곳을 사용한다. 감상실 옆에는 ‘전망 좋은 방’이라는 이름의 휴게실도 있다. 휴게실에 앉아 있으면 주로 노년에 접어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동호회나 감상회 회원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은은하게 퍼지는 오페라 선율과 함께 빛나는 겨울 햇살이 실내를 채운다. 전망 좋은 방이란 이름답게 큰 유리창 너머로 전당을 둘러싸고 있는 우면산 산마루가 보인다. 


예술기록원 전망 좋은 방

▲예술기록원 전망 좋은 방 ⓒ김은영



겨울에 오르는 우면산


 

예술의 전당 광장과 우면산으로 가는 계단

▲예술의 전당 광장과 우면산으로 가는 계단 ⓒ김은영


다시, 밖으로 나간다. 음악당 뒤편으로 걸어가 계단을 따라 보이는 숲길로 향한다. 봄이면 하늘에 닿을 듯 뻗은 벚꽃 나뭇가지들이 무성한 길이지만 지금은 갈색빛의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겨울을 버티고 있다. 


우면산 둘레길

▲우면산 둘레길 ⓒ김은영


산길 옆 계곡물도 얼어 있다. 겨울 산을 오르며 봄을 떠올린다. 봄이 오면 얼음은 녹아 산을 따라 흐를 것이다. 갈색 잎의 나무들도 봄이 오면 연둣빛으로 바꿔 입고 딱딱한 흙길도 자라나는 풀잎들로 부드러워질 것이다. 산을 둘러가는 둘레길은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누어져 있지만 겨울은 늘 봄으로 향한다. 노란 생강나무 꽃이 피는 이 산의 봄과 함께 더 오래된 과거의 여름도 떠올린다. 언젠가 큰 비가 내려 산 일부분이 무너져 내렸을 때 산과 가까이 살던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산과 가까이 있던 예술의 전당에도 흙탕물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 후 산사태를 수습하며 그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산에 비석을 세웠다. 그 비석 앞을 지나자 세 갈래 길이 나타난다. 한쪽은 양재로 향하는 길이고, 다른 쪽은 사당으로 향하는 길이다. 제일 높고 험한 세 번째 길로 접어든다. 정상이라 해도 해발 300m가 채 안 되는 높이지만 그래도 산이고, 그래도 겨울이다. 춥지 않기 위해 껴입은 옷이 산을 오르며 땀으로 젖는다. 마음은 온통 봄이라 사각거리는 마른 잎 소리도 봄의 재잘거림으로 들린다. 


우면산 정상의 소망탑과 정상에서 내려다본 모습

▲우면산 정상의 소망탑과 정상에서 내려다본 모습 ⓒ김은영


정상의 소망탑은 이미 빼곡하게 쌓인 소망의 돌들로 돌을 더 얹을 수 없다. 마음에 작은 돌 하나를 그리며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산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모습은 어느 산이나 대부분 비슷하다. 빼곡한 돌처럼 붙어 있는 아파트와 빌딩들. 이 풍경에도 아름다움은 있다. 봄이 오면 산 밑의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봄 맞으러 가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그땐 지나온 겨울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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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김은영
인문쟁이 김은영

2019 [인문쟁이 5기]


서울에 살며 일하고 글 쓰는 사람. 비와 냉면을 좋아하고 자서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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