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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년을 거슬러온 보물이 우리 안에 있다

국립광주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인문쟁이 김지원

2020-01-09


1323년 6월, 중국 닝보(寧波)에서 일본 하카타(博多)로 배 한 척이 출발했다. 이 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남 신안군 인근 바다에서 풍랑에 휩쓸려 침몰하고 말았다. 난파된 후 650년 동안 20m 깊이의 바닷속 개펄에 묻혀 있다가 1975년, 신안 증도에 사는 한 어부가 청자 꽃병을 끌어올리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고 652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 배를 ‘신안선(新安船)’이라 부른다. 인양한 보물 일부가 국립광주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에 전시되어 있다.


국립광주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입구

▲ 국립광주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입구 ⓒ김지원



신안선 유물이 알려주는 중세 동아시아인의 문화와 생활상



신안선은 길이 34m, 중량 200톤급으로 약 60명이 탑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발견된 도자기는 650여 년 전 중국 원(元)나라의 용천요(龍泉窯)라는 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로 밝혀졌으며, 이듬해부터 본격 발굴이 시작돼 1984년까지 10차례에 걸쳐 총 2만4000여 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안선 항로와 신안선에서 발견된 중국 도자기 생산지 / 문구 : 신안선 중국 도자기 생산지, 신안선의 항로

▲ 신안선 항로와 신안선에서 발견된 중국 도자기 생산지 ⓒ김지원


심연(深淵)의 바다에 잠들어 있던 보물선이 우리에게 왔다. 교역용 상품이었던 도자기와 금속기, 향목 외에도 배 위에서 선원이 사용했던 요리 도구, 놀이 기구, 예배용 악기 등 650년 전의 타임캡슐이 열렸다. 또한 신안선 발견을 통하여 중국에서 고려, 일본으로 연결되는 바닷길을 통한 대외 교류의 실상이 명확히 밝혀졌다. 발굴된 수많은 유물은 중세 동아시아인이 향유한 문화와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동아시아인이 공유한 삶의 취향과 심미관



신안선에 실린 도자기는 크게 식생활 용기, 의례 용기, 장식 용기로 구분된다. 수량이 가장 많은 것은 대접, 접시, 잔 주전자, 항아리 등의 식생활 용기다. 하지만 의례와 관련된 특수기형과 장식에 사용된 그릇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향로, 향병 등 향과 관련된 용기나 꽃병, 수반, 화분 등 꽃을 키우거나 장식에 사용한 화기(花器), 그리고 찻잔이나 주전자, 잔 받침 등 다기(茶器) 류가 많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다양한 도자기

▲ 신안선에서 발견된 다양한 도자기 ⓒ김지원


신안선에 실린 교역품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중국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차 마시기, 향 피우기, 꽃 완상(玩賞)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준다. 차, 향, 꽃을 향유하는 문화는 14세기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고려에서 유행하여, 당시 동아시아인이 공유한 삶의 취향과 심미관을 엿볼 수 있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옥색 항아리

▲ 항아리 ⓒ김지원

 

신안선 도자기 정병 모양의 꽃병

▲ 정병 모양 꽃병 ⓒ김지원

 

마늘 모양의 병

▲ 마늘 모양 병 외 ⓒ김지원


신안선 도자기 향로

▲ 향로 ⓒ김지원


색색의 화려한 유약을 바른 진귀한 도자기로 미루어 신안선 화물의 주 고객은 일본 귀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려 700년 묵은 공예품이지만 지금의 감각으로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세련미가 있다.



14세기에 유행하던 장식문양



신안선 도자기의 문양은 크게 용이나 봉황과 같은 상상의 동물 외에 화훼문(花卉文), 기하문(幾何文), 인물문, 동물문 등으로 비교적 다양하다. 가장 많이 보이는 화훼문은 모란, 매화, 연화, 국화가 있으며, 표현 방법을 달리하여 제작된다. 도자기의 표면에 문양을 그리거나 새기고, 찍어내고 붙이는 다양한 기법을 사용하여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였다.


국화 학 구름무늬 접시, 육각향로, 물고기모양 연적

▲ 국화 학 구름무늬 접시, 육각향로, 물고기모양 연적 ⓒ김지원


사자모양 향로, 봉황모양 연적, 사슴무늬 접시

▲ 사자모양 향로, 봉황모양 연적, 주전자, 사슴무늬 접시 ⓒ김지원


연꽃무늬 큰 접시

▲ 연꽃무늬 큰 접시 ⓒ김지원


용무늬 항아리

▲ 용무늬 항아리 ⓒ김지원


도자기에 나타난 여러 문양은 각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용은 전설 속 동물로 황권을 상징한다. 모란은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 숭상하였으며, 연꽃은 불교가 성행하면서 성스러운 꽃으로 여겼고 특히 도자기 문양으로도 유행하였다. 신안선 도자기에 나타나는 문양은 14세기에 유행하던 장식 문양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도자기



신안선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도기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도기가 선상 생활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수출용 특산품이 담겨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네 개의 귀가 달린 대형 사이호(四耳壺: 입구에 네 개의 귀가 달린 단지)의 용도는 저장용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다양한 도자기

▲ 화분, 네 귀가 달린 대형 도자기, 중소형 도자기 등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도자기들 ⓒ김지원


이보다 더 작은 흑유호는 신안선에서 600여 점이 넘게 발견되었다. 이 형태의 호들이 일본의 사원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어 사원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물품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주로 찻잎을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을 것이다. 가장 작은 크기의 소호는 원래 정향을 담는 용기였으나 일본에서는 다기의 일부로 활용되었다. 찻잎 분말을 담아두는 용기로 자연스럽게 재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서로 다른 크기의 호들이 제작되어 사용되었고, 중국에서 만들어져 수출된 후 일본에서는 사용자에 의해 다른 용도로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청백자아동수우형연적

▲ 청백자아동수우형연적 ⓒ김지원


청자도사형연적

▲ 청자도사형연적 ⓒ김지원

 

백자보살좌상, 청자보살상

▲ 백자보살좌상, 청자보살상 ⓒ김지원


청백자여인상 / 문구 :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 청백자여인상 ⓒ김지원



신안선의 보물과 국립광주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은 광복 이후 우리 손으로 세운 최초의 국립박물관으로 신안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신안 바닷속 진귀한 보물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자 당시 정부는 유물 보관을 위해 광주에 박물관(1978년 12월 6일)을 개관하게 되었다. 2016년 신안선 인양 4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을 열었을 때 2만여 점의 유물을 전시한 적이 있다. 그 규모에 비한다면 작지만 현재 전시된 유물의 면면만으로도 감탄이 나온다.


박물관 정원 연못에서 주말을 보내는 시민들

▲ 박물관 정원 연못에서 주말을 보내는 시민들 ⓒ김지원



발굴을 기다리는 우리 안의 보물



신안해저문화재실의 멋진 유물을 보며 우리 안의 ‘진짜’ 보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깊은 바다에서 머물다가 650년을 거슬러 온 신안선의 보물처럼, 우리들 심연에도 보물이 있다. 인지하지 못한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일깨워주기를, 찾아주기를, 발굴해주기를 기다리는,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 사람, 꿈, 사랑, 희망, 미래…. 여러 모습으로 이미 우리 안에 담겨 있다. 올해 경자년(庚子年)은 우리 모두 그 보물을 찾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참고 자료

국립광주박물관 신안해저문화재실 유물 설명문


○ 공간 정보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 북구 하서로 110 


○ 관련 링크

국립광주박물관 홈페이지 : https://gwangju.museum.go.kr/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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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권 김지원
인문쟁이 김지원

2019 [인문쟁이 5기]


쓰는 사람이다. 소설의 언어로 세상에 말을 건네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살고 싶은 마음과 길가 돌멩이처럼 살고픈 바람 사이에서 매일을 기꺼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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