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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서울은

서울생활사박물관

인문쟁이 김세희

2020-01-07


어린 시절 가수 조용필과 패티김의 노래는 엄마의 오랜 친구였다. 바느질을 하거나 만두를 빚을 때면 사랑과 이별의 리듬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어쩌면 해남에서 상경한 아버지와 공주에서 올라온 어머니의 노랫말이었을지 모른다. 기회의 땅인 서울에서 만나 ‘잘 살아보자’는 주문을 서로에게 걸며 자식들 시집 장가까지 보낸 베이비붐 세대. 그 두근거리는 서사가 한 소절, 한 곡조에 담겨 하나의 호흡으로 사라지던 그날의 공기를 가끔 떠올린다. 


서울생활사박물관 전경 / 건물 포스터 문구 : 서울생활사박물관 개관

▲ 태릉입구역(서울지하철 6,7호선) 부근에 위치한 서울생활사박물관 ⓒ김세희



서울, 사랑으로 남아



지난 7월 서울의 이야기를 사전처럼 담은 공간이 문을 열었다. 들어서자 나이 지긋한 중년 부부는 포니원 택시(Hyundai Pony Taxi) 앞에서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전시된 흑백 사진 속 청춘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예전 북부법조단지 부지에 재생된 복합문화공간이다. 서울 북부의 각종 사건과 송사를 담당했던 법원 및 검찰청 건물의 옹벽을 허물고, 시민과 교감하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박물관 건물은 본관과 별관 크게 2곳으로 분리되는데, 개인적으로 구치감 전시실인 ‘별관’을 먼저 둘러보길 추천한다. 서울의 기억과 감성을 테마로 삼은 ‘본관’에 빠져들기 전, 기존에 있던 구치감 전시실을 돌아보는 게 건립 순서상 나을 듯해서다.


구치감 전시실 모습

▲ 서울생활사박물관 별관에 있는 ‘구치감 전시실(1층)’ ⓒ김세희


별관의 ‘구치감 전시실’은 1974년부터 2010년까지 옛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재판을 기다리던 미결수들이 머무르던 곳을 재현한 테마다. 당시 교정시설에서 사용한 의복과 물품을 사용해 면회실, 독거실 등을 갖추고 공간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존 법조단지라는 역사적 가치를 시민의 목소리로 표현해 도시 재생의 전과 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다. 또한 구치감 전시실 안쪽으로 ‘서울의 근현대 골목길’이 작게 펼쳐지는데, 드라마 세트장 같은 분위기로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구치감 전시실 안쪽에 재현한 서울 옛 골목길

▲ 구치감 전시실 안쪽에 마련된 서울의 옛 골목길 ⓒ김세희


세월의 흐름에 따른 서울의 일상을 일목할 수 있도록 꾸민 서울생활사박물관의 본관. 1층은 한눈에 서울을 조망할 수 있는 풍경들로 가득하다.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서울이 지금의 현대적인 도시로 재건, 발전되기까지의 과정을 사진과 영상, 전시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마를 표현한 각종 설치물들이 오감을 자극한다. 물지게, 우유배급과 같은 ‘가난’과 세운상가, 반포 주공아파트, 명동 아가씨와 같은 ‘세련미’가 몇 장의 흑백 사진 속에 멈춰 있다. 어느 시민의 가보가 아닐까 싶은 손때 묻은 라디오와 5인치 텔레비전, 유물처럼 세워진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와 카폰, 시티폰, 무선호출기, ‘하이텔’ 단말기는 그 시절 서울의 속삭임에 언제라도 응답할 것만 같았다. 인구 90만 명에서 천만 명의 거대 도시로 성장한 서울의 기록은 영화감독, 사진작가, 평범한 시민들의 협조로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다시 생명을 얻었다.


서울생활사박물관  포니 택시와 맵시나 자동차

▲ 서울생활사박물관 본관 1층 전시실 테마 ‘서울 풍경’, 포니 택시와 맵시나 자동차 ⓒ김세희


2층은 본격적인 ‘서울 시민’의 삶을 풀어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사람’과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내기’라는 인구 증가 배경을 곰곰이 짚어볼 수 있다. 있는 집은 교육을 위해, 없는 집은 일자리를 위해 ‘무작정 상경’을 감행했던 시기. 그렇게 그들은 서울에서 가족을 이루고 ‘서울내기’를 만들어낸다. 그 서울내기가 공교롭게도 나 자신이었다는 점에서 묘한 공감대가 생겨났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가족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 곁에 마련된 레코드 코너에서 듣고 싶은 대중가요를 틀고, 부모님과 함께 사진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곳에서 부모님은 그간 들려주지 못했던 서울 추억을 꺼내들고, 달콤 쌉싸래한 맛을 삼키지 않을까 싶다.


2층 테마 '서울살이' 전시장 / 간판 문구 : 서울 가족 사진관, 시민 레코드

▲ 서울생활사박물관 본관 2층 전시실 테마 ‘서울살이’ ⓒ김세희


결혼식 웨딩드레스 전시

▲ ‘서울살이’ 전시실은 서울에서 만나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시민들의 일상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보여준다. ⓒ김세희


3층은 부모님뿐만 아니라 그 이후 세대인 우리의 모습까지 묶어놓았다. 꿈을 좇아 찾은 서울에서 가족들과 등 붙이고 누울 방 한 칸 마련하는 일은 어쩌면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한 소망이다. 서양식 생활환경을 동경해 지은, 소위 양옥집이라 불렸던 ‘불란서 주택’과 중산층으로 편입되고자 소망했던 이들의 꿈이었던 아파트 문화를 보며, 현재의 주택 문화와 자연스럽게 비교해본다. 80년대 후반, 서울 외곽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신도시가 조성되었다. 그곳에서 밀레니얼 세대, ‘신도시 키즈’로서 살아온 나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한 반에 80명, 2부제 수업으로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 속에서 치열한 입시전쟁을 치렀던 그때로 걸음을 옮기면, 학생 수만 줄어들었을 뿐 지금도 여전한 우리나라의 교육열을 포개어 돌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때는 지났다고 하지만, 옛말이 가진 희망을 그리 쉽게 놓을 수 없는 서울 사람들의 오늘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서울생활사박물관 본관 3층 전시실 테마 ‘서울의 꿈’

▲ 서울생활사박물관 본관 3층 전시실 테마 ‘서울의 꿈’ ⓒ김세희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는 1969년 시작해 지금도 방송이 계속되고 있다. 부모님과 우리 사이를 잇는 얼마 안 되는 연결고리 중 하나다. 잔잔하게 흐르는 시그널 음악은 여전하고, 사람들은 삶의 고단함을 DJ에게 잠시 맡긴다. ‘서울살이’라는 건 형태만 조금 바뀌었을 뿐,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 속 목소리와 닮았다. 무언가를 희망하는 반짝이는 눈빛과 축 처진 어깨는 지금도 서울의 거리에서 수없이 교차한다. 방문 전에 그저 과거 서울 이야기일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고단한 서울살이를 감내해온 부모 세대의 희로애락의 기록은 지금 세대의 마음을 가벼이 토닥여주고 있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을 떠나오면서 노래 한 자락이 입가에 맴돌았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동물원의 ‘혜화동’을 읊으며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하는 이유도 떠올려보았다. 


 흑백 사진 속 서울 사람들

▲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인상적이었던 흑백 사진 속 서울 사람들 ⓒ김세희




○ 서울생활사박물관 공간 정보

주소 : 서울 노원구 동일로174길 27(구 서울북부지방법원)

전화번호 : 02-3399-2900

운영시간 : 평일 09:00-19:00 / 주말 및 공휴일 09:00-19:00(3월-10월), 09:00-18:00(11월-2월)

휴관 :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 1월 1일

주의사항 : 관람시간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가능

관람료 : 무료


○ 관련 링크

서울생활사박물관 홈페이지 : https://museum.seoul.go.kr/sulm/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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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인문쟁이 김세희

2019 [인문쟁이 3기, 4기, 5기]


김세희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여행 콘텐츠 에디터로서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발빠르게 노마드의 삶을 걷고 있다. 낯선 이가 우리의 인문 기억에 놀러오는 일은 생각만 해도 설레고 두근거린다.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소망하고 함께 응원하는 온기를 뼈 마디마디에 불어넣고 싶다. 어떤 바람도 어떤 파도도 잔잔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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