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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도 씻는 '동래 온천', 부활을 꿈꾸다

중심시가지형 뉴딜사업지로 선정된 온천1동

인문쟁이 강태호

2019-11-05


동래구 온천동 풍경, 과거와 현대가 공존한다.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부산 동래구 온천동 ⓒ강태호


지난해 8월 부산의 7개 행정동이 뉴딜사업 사업지로 선정되었다. 그중 동래 온천1동은 중심시가지형 사업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상권이 없지도, 사람이 떠나지도 않았다. 게다가 2018년 부산통계지표에 따르면 동래구의 인구밀도는 ‘16.1(수영구 17.1, 1위)’로 부산에서도 3순위에 올라있다. 또 호텔농심, 허심청, 금강공원 등의 온천장 일원은 동래구에서도 상권의 중심이라 입지는 변함이 없다. 헌데, 왜 3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필요한 것일까?


이곳에 입욕수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천 년을 훌쩍 넘겼다. 신라 682년(신문왕 2) 제상 충원공이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누가 처음 발을 담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구전으로 알려진 백학과 노파의 이야기가 동래 온천의 시초라 믿고 있다. 


동래온천에 관한 설화에 등장하는 백학 조형물

▲ 온천 설화에 나오는 백학 조형물 ⓒ강태호


『동래 향토지』에 따르면 다리를 다친 백학이 온천 주위를 맴돌며 서서히 나았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주변에 살던 노파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자신은 절름발이 생활을 오래 했기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같은 처지의 백학은 날이 갈수록 절뚝거림이 사라졌다. 눈이 휘둥그레진 노파는 백학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백학이 가벼운 걸음으로 노파 앞을 서성였다. 조심스레 행방을 쫓던 노파는 그제야 신기한 현상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따뜻한 샘이 철철 넘쳐흐르고 있었다. 백학이 흐르는 물 위를 걷자 노파는 약천임을 알아차렸다. 그 후 노파 역시 절름거림이 서서히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의 입소문으로 약효가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신기한 물에 몸을 담그고자 찾아 왔다고 한다.


담벼락에 전시되고 있는 온천 옛 풍경 / 사진 문구 : 한국인이 이용하던 온천욕탕 일본인이 이용하던 온천욕탕

▲ 일제강점기 동래 온천을 이용한 일본인 사진 ⓒ강태호

 

온정개건비가 있는 용각 정문

▲ 온정개건비(溫井改建碑, 영조 42년)가 있는 용각 정문 ⓒ강태호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왕들이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동국여지승람』에는 온천의 온도가 계란이 익을 정도였으며 병자들이 줄을 지어 치료했다고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동래 온천의 효험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금 모습의 온천은 일본인이 개발한 것이다. 경마와 온천을 좋아하는 그들에게 온천장은 ‘쉬어가기’ 딱 좋은 곳이었다.


차왜(差倭) 평성태(平成太)* 등이 수행 왜인 50여 명을 거느리고 동래의 온천에 가서 목욕하였다. 신후재(申厚載)·정석(鄭晳)이 역관(譯官)을 시켜 타일러 말렸더니, 답하기를 ‘병을 빨리 치료해야겠다.’ 하고는 잇따라 닷새 동안 가서 목욕하였는데 신후재 등이 치계하여 아뢰었다. 이때 왜인이 날로 더욱 횡포를 부렸다. 

현종실록 19권, 3번째 기사 


*평성태: 조선 후기 동래 왜관 이전 교섭을 위해 조선에 온 일본 쓰시마 번의 관리


스파윤슬길 풍경

▲ 산들바람에 걷기 좋은 스파윤슬길 ⓒ강태호


온천장이 부산 시민과 친숙해진 건 60년대 이후다. 고관의 전유물인 ‘동래별장’은 명맥을 유지했으나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었다. 온천장을 지나 금정산으로 가려는 사람이 많아 부산사람에게는 만남의 장소로 알려졌다. 덕분에 금정산과 온천장 사이 금강공원도 생겨났다. 일본인 사유지인 정원이 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놀이공원도 들어섰다. 동물원과 케이블카를 타려고 경남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찾아 왔다. 당시 시외버스와 고속버스터미널이 동래에 있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부산시가 금강공원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하며 지역의 명소로 발돋움했다. 부산 소재 각 학교의 소풍 명소로 자리잡았고, 데이트 장소로 청춘남녀를 끌어모았다. 식었던 온천수가 ‘놀이문화’ 덕에 다시 따뜻해진 것이다.


온천4구역 조합원이자 온천장 토박이인 박모 씨는 “옛날 모습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 지금은 호텔이니 뭐니 해도 예전에 ‘시흥탕’처럼 공중목욕탕이 있었고 그곳에 사람이 넘쳐나 줄서기 바빴어. 그때가 진짜 사람 사는 것 같았지. 70년대 이후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았어”라고 말했다. 부산의 고도 성장기와 맞물려 90년대 중반까지 경기 상승이 이어졌다. 특히 시외버스정류장 위로 입점한 ‘세원백화점’과 온천시장 앞의 ‘스파쇼핑’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온천에서 시작하여 패션과 유흥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영광이다. 이제는 없다. 소풍 오는 학교도 없고, 데이트하는 청춘도 없다. 남은 건 미지근한 온천수와 유흥 그리고 재개발이다. 쇠퇴의 원인은 역시나 인큐베이터의 부재다. 도소매 및 음식점 수가 말해준다. 부산 사업체 자료조사에 따르면 2007년 온천1동의 도소매 업체 수는 765개였지만 10년 뒤 577개로 대폭 줄었다. 반면 옆 동네인 명륜동은 233개이던 업체가 365개로 상승했다. 서면이 위치한 부전1동은 10년 전 2000개를 넘었으며 수치는 지금과 비슷하다. 비교할 항목은 많겠지만 기간을 두고 살펴보면 온천1동은 대체로 하향곡선이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닥치며 지역의 자랑인 스파쇼핑이 부도를 냈고, 터미널이 부산 외곽 지역 이전이 지역 경제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장기 침체를 맞는 계기로 작용했다.


지금 동래 롯데백화점 자리에는 동부시외버스정류장과 세원백화점이, 미남역 반도보라아파트에는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었다. 옮기자는 말은 90년대 중반에 나왔으나 실행에 옮긴 건 2000년이었다. 시외버스와 고속버스를 한데 모으자는 의견으로 2001년 9월 20일 완공하며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 시대를 열었다. 그 뒤 터미널이 빠진 자리를 오랫동안 메우지 못했다.


동양 최대라 하는 온천탕, 허심청 건물

▲ 동양 최대 규모라 불리는 온천탕, ‘허심청’ ⓒ강태호

 

허심청 근처 무료 노천족욕탕에 모여 족욕하는 사람들

▲ 허심청 인근 무료 ‘노천족욕탕’에 발을 담그고 있는 시민들 ⓒ강태호


변하고 싶은 열망은 시련과 함께 생긴다. 다행인 것은 다른 원도심과 다르다는 점이다. 법원이 빠져나간 서구와 만석꾼들이 땅을 팔고 떠난 영도구와는 차이가 있다. 동래구민과 행정청의 부단한 노력이 없었다면 급격한 쇠퇴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래구청이 2005년부터 시도한 노천족욕탕, 스파윤슬길 등 ‘온천’을 활용한 상권 개발은 차츰 성과를 냈다. 깔끔하게 정돈된 거리와 더불어 온천 이용객도 꾸준히 증가했다. 행정안전부의 전국 온천 이용객 조사에 따르면 동래 온천은 2006년 1140명이었고, 2017년에는 2000명을 기록했다. 위기 속에서 온천만 괄목할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그래도 온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300억 원의 사업비는 상당한 규모다. 부산 동구의 범일골목시장에는 삼화고무, 극장가 등 옛 모습을 재현한 거리를 조성해 놓았다. 하지만 단체 관람객을 제외하면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마저도 사업비 9억 원이 들었다. 취지는 좋아도 쓸쓸한 결말은 피할 수 없었다.


지역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 최근 온천장 주변을 뷰티 특화거리로 만들자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는 ‘왜?’라는 이유를 깊게 고민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어떻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도시재생사업의 결과는 시간이 제법 흘러야 성패를 가늠할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지역주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동래 온천의 부활, 그 결말이 궁금하다. 




사진 촬영 _ 강태호


○ 공간 정보

주소 : 부산 동래구 금강공원로20번길 23 (호텔농심) 일원


○ 관련 링크 

홈페이지 : 동래구청 관광정보 ‘온천장 풍류길’ 링크


○ 기타 연락처: 051-550-4082 (동래구 문화관광과)


○ 참조 

다이나믹 부산 ‘백학과 동래온천’ 링크

조선왕조실록 ‘평성태’ 관련 발췌 링크

도서 『동래 한 바퀴 온천장편』-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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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인문쟁이 5기]


강태호는 인문학집필연구소 한주서가 대표 작가이다. 제10회 해양문학상에 입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입상작인 중편소설 <바다 몬스터>는 문장 아래 문장을 숨겨놓았다며 호평을 받았다. 대표 저서로는 《천 만 영화 속 부산을 걷는다》가 있으며 기획출판, 첨삭, 글쓰기 강의 등으로 ‘글’의 매력을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 또한 관광, 인권, 문화제 등 공기관에서 주관하는 SNS 기자단에 참여하며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자 노력 중이다. 망각된 역사를 알리려는 의지가 강해 인문학적으로 어떤 해석을 풀어낼지 앞으로가 기대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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