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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동 북 카페 ‘열음’에서 열린 그릇 전시회

그릇, 흙으로 배를 채우다

인문쟁이 김은영

2019-05-22

텃밭, 나의 채소일기


“저의 작은 전시회에 초대합니다.”

4월의 어느 날, 수줍은 초대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서울에 살며 생활 그릇을 만들어 판매하는 도예가. 그런데 전시회 초대장 사진이 특이하다. 사진에는 민소매를 입은 한 여자가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텃밭에서 길렀는지 앙증맞은 딸기와 둥글넓적한 오이, 허리가 굽은 보랏빛 가지도 보인다.


전시회 초대 메시지로 받은 사진

▲ 전시회 초대 메시지로 받은 사진 ⓒ이지은


텃밭에서 기른 작물들

▲ 텃밭에서 기른 작물들 ⓒ이지은


전시회에서 선보일 그릇의 모습들이 색다르다. 소박한 흙 그릇에 그려진 그림들은 가지, 양파, 쌈 채소, 고추와 같은 채소들이다. 작가는 봄을 맞아 그동안 만들어온 그릇들을 광장동의 북 카페에서 전시한다고 한다. 잘 여문 딸기와 가지 그리고 한여름의 텃밭 사진에 매료된 나는 어느새 전시회 장소를 찾아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릇과 텃밭 그리고 북 카페는 꽤 멋진 조합이 아닌가.



동네 사랑방 같은 북 카페


봄비 내리는 오후, 초행길이라 지도를 보며 느린 걸음으로 도착한 광장동의 주택가 골목에서 ‘책방 열음’을 찾는다. 전면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과 함께 탁 트인 실내가 펼쳐진다.


광장동에 위치한 서점 겸 카페 ‘책방 열음’

▲ 광장동에 위치한 서점 겸 카페 ‘책방 열음’ ⓒ김은영


고요하고 차분한 실내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의외로 안은 손님들로 꽉 차서 빈 테이블을 찾아볼 수 없다.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부터 희끗한 머리의 노인들까지. 그들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처럼 저마다의 음성으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벽에는 강연과 모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고, 빈티지한 철제 책상 위에는 동네 소식지와 함께 독립 출판 매거진들도 놓여 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천천히 북 카페를 돌아보다 보면 동네의 크고 작은 소식들을 다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잠깐, 전시회 그릇들은 어디 있지?


서가 옆에 놓인 그릇 진열대

▲ 서가 옆에 놓인 그릇 진열대 ⓒ책방 열음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시 진열장


컬러풀한 동화책들이 진열된 벽 쪽 서가 옆으로 키 작은 초록 잎들이 보인다. 흙빛을 머금은 둥근 실루엣의 그릇들이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자연스럽게 공간과 어우러져 있다. ‘텃밭, 나의 채소일기’라는 전시회 타이틀 답게 전시 소개 글도 일기장의 한 페이지처럼 꾸밈없고 소박하다.


「2012년 옥상에서 시작한 도시 텃밭의 삶. 흙을 고르는 맛, 식물을 기르는 맛, 고된 노동의 맛과 값진 수확의 맛. 나의 일부가 된 작은 텃밭은 내 도자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고추, 가치, 양파, 쌈 채소가 내 접시 위의 그림들. 재작년 겨울은 너무 추웠다. 작년 여름은 너무 더웠다. 내 몸도, 식물들도 모두 지쳤지만, 봄이 왔다. 다시 시작이다.」 


 허리를 굽혀 진열대의 그릇들을 살펴보니 재미난 그림들이 보인다. 그릇에 그려진 그림들은 양파와 가지, 그리고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듯한 고추들. 마치 아이의 작은 접시 위에 채소를 올려놓은 듯 파란색 그림들이 접시 위에 담겨져 있다.


접시 위에 그려진 양파 그림

▲ 접시 위에 그려진 양파 그림 ⓒ책방 열음


그릇 안에 심어져 있는 양파와 상추

▲ 그릇 안에 심어져 있는 양파와 상추 ⓒ이지은


창가로 비치는 햇빛을 듬뿍 받고 있는 위 칸의 그릇들 안에는 진짜 초록 잎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이건 양파 같은데? 이건 상추고, 근데 이건 뭐지?’ 도자기 안의 식물들을 보며 이름을 궁금해 하고 있을 즈음, 사진 속 ’텃밭의 여인’이 도착한다. 생활자기를 만드는 ‘지은그릇’의 대표이자 도예가 이지은 씨. 본인이 만든 그릇들처럼 편안하고 차분한 인상으로 인사를 건넨다.


그릇 만드는 사람, 이지은

▲ 그릇 만드는 사람, 이지은 ⓒ김은영



편안함을 담아내는 그릇


Q. 반갑습니다. 먼저, 이번에 전시한 그릇들과 식물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그릇은 총 열아홉 개이고요. 이전에 만든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식물과 관련된 그릇들을 모았어요. 제일 위에 놓인 포트는 초벌구이 때 금이 가서 그릇으로는 쓸 수 없었지만 이렇게 흙을 담으니 꽤 괜찮은 화분이 되었지요. 물을 주니 이끼들이 생겨 자연스레 식물과 어우러졌어요. 도자기에 심은 식물들은 위에서부터 말씀드리면 딸기, 방아, 양파, 파, 명이나물, 그리고 청상추와 적상추예요. 처음부터 화분을 생각하고 만든 것은 아니고, 그저 무언가를 담을 수 있게 만든 것인데 어쩌다보니 화분이 되었네요.


그릇 안에 심어져 있는 다양한 식물들

▲ 그릇 안에 심어져 있는 다양한 식물들 ⓒ이지은


Q. 직접 텃밭을 가꾸신다고 들었어요. 채소를 키우는 게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옥상에 있는 화분들로 시작했어요. 그땐 주로 관상용 식물이나 허브 종류를 키웠고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한 다음부터 땅에다 직접 심는 채소들을 기르기 시작했죠. 텃밭 일을 할 땐 크게 의식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보니 제가 접시에 가지를 그리고 있더라고요. 아마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릇 디자인으로 제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을 그리거든요.


가지, 양파, 쌈 채소를 그린 컵과 접시들

▲ 가지, 양파, 쌈 채소를 그린 컵과 접시들 ⓒ이지은


Q. 이번 전시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는지요. ‘열음’이라는 공간에 대한 설명도 부탁 드려요.


4월 5일이 식목일이잖아요. 그래서 식물을 콘셉트로 전시를 하면 시기와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이곳은 제 지인과 가끔 만나는 북 카페인데 저에게 여기서 전시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죠. 평소의 저라면 그저 웃고 넘겼을 텐데 그땐 웬일인지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마침 ‘책방 열음’의 사장님께서도 새로운 이벤트 겸 북 카페에 전시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터라 이렇게 작은 게릴라 전시가 성사 되었어요. 전시 진열장도 처음엔 테이블을 쓸까 고민했는데 마침 북 카페 지하에 저 진열장이 있는 거예요. 약간 낡은 듯한 느낌에 크기도 딱이라 제가 사장님께 써도 되느냐고 여쭤봤죠. 독서 모임이나 강연이 자주 열리는 곳이라 무엇보다 책과 잘 어우러지고 손님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꾸몄어요.


고추와 가지 그림이 그려진 흰 접시

▲ 고추와 가지 그림이 그려진 흰 접시 ⓒ이지은


Q. 푸른빛이 나는 그림이 인상적인데요. 작업하시는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푸른색 물감은 코발트 산화물이고 짙은 갈색 물감은 철 산화물이에요. 제가 주로 쓰는 그림 재료들이죠. 디자인을 그릴 땐 당시의 제 일상에 가장 익숙한 그림들을 그려요. 작업실이 집 안에 있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그릴 때도 있고요.제가 사는 곳은 종로구 옥인동인데 일명 서촌으로 불리는 곳이에요. 공방을 따로 구할 여유는 없어서 집을 찾을 때 작업실을 겸할 수 있는 곳을 찾았죠. 오래된 농가 주택이라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지만 마당이 있어 아이에겐 좋은 것 같아요. 저의 어릴 적 추억도 떠오르고요. 어릴 적 외가가 청운동이어서 명절 때 마다 한옥 마루에 앉아 놀았거든요.


종로구 서촌에 있는 작업실에서 했던 작업들

▲ 종로구 서촌에 있는 작업실에서 했던 작업들 ⓒ이지은



내 입과 내 손에 닿는 느낌을 기억하며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워크숍에서 ‘나만의 밥 그릇 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지은 씨. 사람마다 먹는 밥의 양이 다르니 양에 맞게 그릇을 만드는 게 워크숍의 주제라고 한다. 최근에는 ‘그릇 수선’에도 관심이 생겨 금이 가거나 이가 나간 그릇을 고치는 내용이 담긴 책을 보고 있다고 전한다.


“오래 쓴 그릇은 그릇에 담긴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 시간을 잊지 않고 간직한다는 게 좋더라고요.”


낡은 그릇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하는 이지은 씨. 금이나 얼룩마저 그릇의 일부가 되길 바라는 도예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본인은 도예가라는 호칭보다 그저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이 더 좋다고 한다. 그릇을 만들 때도 내 입에 닿고, 내 손에 닿았을 때의 편안한 느낌을 우선으로 한다고.


역시, 여러모로 전시된 그릇들과 참 닮은 사람이다. 아니, 그릇이 사람을 닮은 걸까. 그러고 보니 사람과 그릇, 그리고 식물은 공통점이 있다. 셋 모두 뜨거운 열을 견디는 단련의 시절을 지나야 더 단단하게 여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생을 마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같다.


흙을 채운 그릇 안에서 잘 자라고 있는 식물들

▲ 흙을 채운 그릇 안에서 잘 자라고 있는 식물들 ⓒ책방 열음


 

 

‘열음’에서 가진 인터뷰를 마친 며칠 뒤, ‘지은그릇’의 SNS에 반가운 사진이 올라온다. 전시 날짜가 흐를수록 그릇 안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고. 꽃대가 올라온 딸기와 봄볕을 맡으며 쑥쑥 자란 방아 잎이 북 카페 한 쪽을 조용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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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김은영
인문쟁이 김은영

2019 [인문쟁이 5기]


서울에 살며 일하고 글 쓰는 사람. 비와 냉면을 좋아하고 자서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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