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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100년 된 여인숙이 있었네!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금보여인숙

인문쟁이 이재형

2019-01-03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을 금지했던 ‘야간통행금지’라는 제도가 있었다. 밤 10시만 되면 라디오에서는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라는 방송이 흘러 나왔고, 밤 12시가 되어 사이렌이 울리면 거리는 고요해졌다. 요즘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이 제도는 1982년까지 치안상의 이유로 시행되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금보여인숙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에 있는 금보여인숙 ©이재형

 

그리고 그 옛날의 통행 금지와 함께 성장해온 곳이 바로 여인숙이다. 시간이 늦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막차를 놓친 사람들은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머물다 가곤 했다. 요즘은 모텔, 호텔 등 다양한 형태의 숙박업소에 밀려나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런데 경기도 수원시에 100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한 여인숙이 있다. 팔달구 북수동 팔부자거리의 금보여인숙이다.

 

이 거리의 이름은 정조가 화성을 지으며 전국 8도의 부호와 상인들을 성 내로 이주하게 한 데에서 유래한다. 그래서인지 여인숙 역시 ‘금은보화(金銀寶貨)’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팔부자거리는 벽화 골목으로 꾸며졌지만, 여인숙만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변함없이 품고 있다.

 

 100년이 넘은 금보여인숙에는 낡고 오래된 모습이 역력하다

▲ 100년이 넘은 금보여인숙에는 낡고 오래된 모습이 역력하다 ©이재형

 

이곳은 1961년까지는 우시장이, 1980년대 초까지는 청과물 시장이 크게 들어서던 곳으로, 저녁이 되면 술 한잔을 걸치고 여인숙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상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뒷골목의 아련한 추억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품팔이 노동자들이 이 여인숙을 따뜻한 둥지 삼아 살아가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들의 밤을 데워줄 연탄이 쌓여 있고, 12개의 반 평짜리 방들이 ‘ㅁ’자 구조로 빙 둘러 있다.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금보여인숙

▲ 연탄으로 난방을 하는 금보여인숙 ©이재형

 

품팔이 노동자들의 둥지가 되어준 금보여인숙

▲ 품팔이 노동자들의 둥지가 되어준 금보여인숙 ©이재형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묵묵히 팔부자거리에 있던 금보여인숙을 찾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오랜 주택을 개조하여 동네에 예술을 가져온 ‘대안공간 눈’의 ‘행궁동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브라질의 젊은 여성작가 라켈 셈브리(Raquel Lessa Shembri)는 오래된 여인숙의 모습에 매료됐다. 그녀는 금보여인숙의 담벼락에 물의 근원을 뜻하는 ‘수원(水原)’에서 헤엄칠 황금물고기를 그렸다. 3년여의 작업 끝에 완성된 황금물고기는 앞으로도 역사를 이어갈 동네의 미래를 상징하는 듯했다.


대안공간 눈에 보관된 금보여인숙 황금물고기 벽화

▲ 대안공간 눈에 보관된 금보여인숙 황금물고기 벽화 ©이재형

 

하지만 지난 2016년 10월, 행궁동 벽화마을의 벽화들이 붉은색 페인트로 훼손됐고, 황금 물고기 벽화도 훼손을 피할 수 없었다. 문화시설로 지정해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존해야 한다는 수원시와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개발을 요구하는 일부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번진 탓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벽화를 그렸던 라켈은 2016년 6월 출산 중 사망하였는데, 이는 마치 황금물고기가 그 뒤를 따라간 듯한 인상을 남겼다.


재개발 갈등으로 사라져 버린 금보여인숙 황금물고기

▲ 재개발 갈등으로 사라져 버린 금보여인숙 황금물고기 ©이재형

 

금보여인숙 보존대책이 시급하다

▲ 금보여인숙 보존대책이 시급하다 ©이재형

 

금보여인숙을 찾아갔던 날, 달방을 사는 60대 중반 아저씨를 만났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 돌아온 그는 오전이 되어서야 라면을 끓여 먹은 후 마당 수돗가에서 그릇을 닦았다. 사진을 찍는 내게 뭘 그리도 많이 찍냐며 핀잔 아닌 핀잔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금보여인숙은 단순히 오래되기만 한 건물이 아니다. 그 툇마루와 창틀에는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담벼락의 황금물고기는 예전의 황금빛을 잃었지만, 여인숙만큼은 옛 삶의 흔적을 간직한 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옛것들이 밀려 나가는 요즘, 금보여인숙은 우리의 귀중한 역사이자 재산이 아닐까 싶다.


사진=이재형


* 공간 소개 및 관련 링크

<금보여인숙>

장소 : 경기도 수원시 화서문로 72번길 11

문의 ☎ 031) 255-3514

장소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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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쟁이 이재형

2018, 2019 [인문쟁이 4,5기]


이재형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17년째 살고 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생활을 했고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낸 후 요즘은 아내와 어디론가 여행 떠나기를 좋아한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말처럼. 은퇴 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발히 하며 ‘갑분싸’가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생 2모작을 인문쟁이와 함께 하면서 여행과 인문 예술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그 세계에서 새로운 하늘,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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